법정스님 후원하기 나의후원

대구

    • 00-11-03

    가을은 나누는 계절

본문

가을은 나누는 계절


가을은 수확의 계절, 결실의 계절이라 한다. 하지만 수확


과 결실이라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인간문제이며 자연의 입


장에서는 거두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을은 나누어주는 계절이다.



내가 즐겨 읽는 <도덕경> 가운데 '하늘과 땅은 만물을 생


성하고 양육 하지만 자기 소유로 삼지 않고 스스로 이룬


바 있어도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지 않으며 온갖 것을 길러


주었어도 아무 것도 거느리지 않는다. 이것을 일러 현묘한


덕이라 한다'라는 대목이 있다. 우리는 이런 자연의 덕을


배워야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대 문명과 문화는 본질적으로 물질적


이고 감각적이다. 내가 얼마나 버는가, 잘났는가 등이 성공


의 척도로 보인다. 과연 이것이 성공의 척도일까. 이것으


로 사람이 행복할 수 있을까.



북인도 라자 지방에 사는 티베트 노인은 서양기자와의 문


답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바깥 세상에 있는 사


람들은 행복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었지만 많은 불행이


있다고 들었다. 그 불행의 원인은 당신들 재산이 기도하고


명상할 시간을 다 빼앗은 데 있다. 당신들이 가진 재산은


주는 것보다 빼앗는 것이 더 많은 것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문화에서는 전통적으로 성공의 척도를


자기가 얼마나 많이 소유했는가보다 얼마나 많이 봉사하고


나누어 주는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지금 자연 친화


적이고 물질 문명에 물들지 않은 인디언의 문화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인디언들은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때 생색을 내지 않고 눈


에 보이는 곳에 놓고 가며, 뜻을 달거나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왼 손이 한 것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한다'는 무주상보시이다. 가난한 사람, 고아, 나이든 사


람, 병든 사람, 홀로 된 부인을 먼저 돌보는 것이 인디언들


의 전통이며, 그들은 물고기를 잡거나 사냥을 할 때도 먹


을 만큼만 잡는다. 그들의 12가지 계율 중 9번째를 보


면, '큰 부를 얻으려고 탐욕을 부리지 마라. 자기가 있는


부족 중에 가난한 사람이 있는데도 지나친 부를 소유하는


것은 부끄럽고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10번째 계울엔 '그대


의 인생을 사랑하고 감사하라. 그대 삶의 모든 것을 아름답


게 가꾸고 그대 이웃을 위해 봉사하라'라는 대목이 있습니


다. 백인들의 우월주의에 비해 얼마나 자연 친화적이고 건


강한 삶인다.



나눈다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며 일상적인 것에서 얼마


든지 실천할 수 있다. 차선 양보와 같이 남을 배려하는 일


상적 예절에서 비롯된다. 봉사와 나눔의 보상이 만일 있다


면, 그것은 뿌듯하고 흐뭇한 마음에 있다 하겠다. 또한 그


런 마음은 남에게까지 전달되어 복과 덕으로 저절로 쌓이


게 된다.



그럼, 나눌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금강경>에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起心-어디에도 머물지 말고 그 마음


을 내라)이라는 말처럼 하면 된다. 집착함이 없이 기꺼이


나누어 갖는 것이 진정한 나눔일 것이다. 또한 <금강경>에


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자신의


한 일에 무심해야 하며 모든 생각의 자취에서 벗어나야겠


다. <화엄경>에 보면 보살들은 누가 와서 나눔을 청하


면 '내가 일부러 찾아 나서지도 않았는데 복과 덕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는 구나'라고 생각하며 감사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대지, 공기, 물, 흙 등 자연의 많은 은혜


를 받고 있다. 그러나 지금 식량, 물, 공기, 에너지 위기,


유전자위기가 오고 있다. 이는 지·수·화·풍의 모자람에


서 오는 위기가 아니라 인간의 탐욕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지구가 스스로 살아길 수 있는 자


정 능력을 빼앗아서는 안된다. 지금부터라도 낭비를 줄여가


면서 생각을 바꿔나간다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잇다. 하루


에 한가지라도 착한 마음으로 남을 도울 수 있다면 즉 나누


어 갖는 삶을 산다면, 그날 하루는 헛되이 살지 않는 날이


될 것이다.



(지난 10월 15일 길상서 대중법회에서 법정스님께서 설법하신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