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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 00-11-13

    토끼풀을 뽑아든 아이

본문

토끼풀을 뽑아 든 아이


法頂(회주스님)


며칠 전 한 친지의 병문안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주


택가 한쪽에 잔디밭이 있었는데 대여섯살 된 사내아이가 토


끼풀을 뽑으면서 한 손에 가지런히 들고 있었다. 그 아이


의 모습이 하도 귀여워 다가서서 물었다.


"누구에게 주려고 그러니?"


"여자 친구한테 주려고요."


이 말을 듣고 그 애가 너무 기특해서 그 곁에 쭈그리고 앉


아 '나도 여자 친구한테 줄 꽃을 꺾어야겠네'하고 토끼풀


을 뽑았다. 한 주먹 뽑아 들고 일어서니 내 토끼풀에는 꽃


이 없다며 자기가 뽑아 든 꽃에서 세 송이를 내게 건네주었


다.



유치원생 또래의 아이가 여자 친구한테 주기 위해 토끼풀


을 뽑고 있던 그 모습이 요근래 내가 마주친 사람들 중에


서 가장 감동적이었다. 내가 뽑은 토끼풀에는 꽃이 없다고


자기가 뽑은 꽃에서 내게 나누어 준 그 마음씨도 너무나 착


하고 기특했다.



이런 아이들이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곱게 자란다


면 이 땅의 미래도 밝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오전 나는 정기집회에서 나눔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


었다. 그런데 진정한 나눔이 무엇이라는 걸 그 애가 몸소


보여주었던 것이다. 나눔이란 이름을 내걸거나 생색을 내


지 않고 사소한 일상적인 일로써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끼어 들려는 차에 선뜻 차로를 양보하는 일, 엘


리베이터 단추를 눌러 뒤에 오는 사람이 탈 수 있도록 마


음 쓰는 일, 또 뒤따라 오는 사람을 위해 열린 문을 붙잡


아 주는 일 그리고 마주치는 사람에게 밝은 표정으로 미소


짓는 일, 이와 같은 일들이 다 나눔 아니겠는가. 나눔에는


무엇보다도 맞읕 편에 대한 배려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흔히 가을을 수확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이와 같은 표현


은 어디까지나 사람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자연의 입장에


서는 거두어들임이 아니고 나누어 줌이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고 여름날의 폭풍우와 뙤약볕 아래서 가꾸어


온 이삭과 열매와 잎과 뿌리를 ,곡식과 과일과 채소들을 무


상으로 나누어준다.



자연의 은덕을 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하늘과 땅은 만물을 생성하고 양육하지만 자기 소유로 삼


지 않고, 스스로 이룬 바 있어도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지


않으며 온갖 것을 길러 주었으면서도 아무 것도 거느리지


않는다. 이것을 일러 크나큰 덕이라 한다.'



죄다 나누어 줄 뿐 어느 것 하나도 차지하거나 거느리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공을 결코 내세우지 않는다. 이


것이 대지가 지닌 덕이다. 땅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우리는


이와 같은 대지의 덕을 본받을 수 있어야 한다.


나눔이나 봉사에 어떤 보상이 있다면 나누며 봉사할 때의


그 뿌듯하고 흐뭇한 마음일 것이다. 결식이웃에게 부식을


만들어 보내는 일을 하고 있는 '맑고 향기롭게 모임'의 회


원으로부터 지난 추것 무렵 편지를 한 통 받았는데, 편지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한 주에 한 번씩 남을 위해 봉사를 한다기보다는 그곳에


나가서 한 주 동안 흐트러졌던 마음을 가다듬고 작은 힘이


나마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음에 도리어 위안


과 기쁨을 안고 돌아옵니다.


무언가를 주러 가서 도리어 몇 갑절, 한 아름 안고 돌아오


니 이렇게 실다운 일이 바로 부처님 법인가 봅니다. 맑고


향기롭게 조리장에 모이는 정말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는


금요일을 만들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나눔에는 이와같이 위안과 기쁨과 고마움이 따른다. 나눌


때 내 몫이 줄어드는가? 물론 아니다. 뿌듯하고 흐뭇한 그


마음이 복과 덕을 쌓는다. 우리에게 건강과 재능이 주어진


것은 그 건강과 재능을 보람있게 쓰라는 뜻에서 일 것이


다. 당신에게 건강과 재능이 남아 있을 동안 그걸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어야 그 뜻이 우주에 도달한다.



돌이켜보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이웃에게 많은 은혜


를 입어 왔다. 뒤늦게 철이 들어 그 은혜 갚음을 하고 가야


겠다는 생각이 일고 있다. 몸은 고단하지만 여기 저기 나


를 필요로 하는 곳에 최소한으로라도 드러내는 이유가 여기


에 있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이 대지와 공기와 햇볕과 바람, 나무


와 물로부터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무상으로 입은 그 은


혜와 보살핌이 얼마이겠는가. 한 순간도 우리곁에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소중한 존재들. 먹고 입고 거처하는 의식


주가 모두 자연의 혜택 아닌 것이 없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이런 은혜와 보살핌에 대해서 나누


는 일로써 보답해야 한다. 이것이 이 지구상에 몸담아 사


는 인간의 도리이고 의무일 것이다.



인도의 현자. 비노바 바베는 학교교육이 아닌 어머니의 믿


음에 감화를 받으면서 성장한 사람이다. 어느 날 체격이 건


장한 거지에게 적선을 베푼 어머니를 보고 '저런 사람에게


적선하는 것은 게으름만 키워주게 되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은 그들에게도 좋지 않아요'라고 불만


을 토로한다. 이때 어머니는 차분하게 말한다.



'아들아, 우리가 무엇인데 누가 받을 사람이고 그렇지 못


한 사람인지를 판단한단 말이냐. 내집 문전에 찾아오는 사


람이면 그가 누구든 다 신처럼 받들고 우리 힘닿는대로 베


푸는 거란다. 내가 어떻게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겠느냐.'



꿀벌이 다른 곤충보다 존중되는 것은 부지런해서가 아니


라 남을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 남이란 누구인가?그는 무연


한 타인이 아니라 또 다른 내 자신 아니겠는가. 그는 생명


의 한 뿌리에게 나누어진 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