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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 00-12-05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오다

본문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오다

法 頂 (회주 스님)


지난 동안거 결젯날, 절에서 늦게까지 일을 보고 내 거처


로 돌아올 때였다. 오전에 비가 내렸다가 오후에는 개었는


데, 경기도를 벗어나 강원도 접경에 들어서자 예전 표현으


로 맷방석만한 보름달이 떠올랐다. 보름달을 안고 돌아오


는 길이 너무 충만해 마치 달을 향해 우주비


행을 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늦은 시간이 아니었더라면 그와 같은 환상적인 우주비행


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날의 피곤이 말끔히 가실 만큼


산뜻한 귀로였다.


늦은 시간에 돌아오니 적막강산에도 달빛이 철철 넘치고


있었다. 뜰은 달빛으로 인해 눈이 하얗게 쌓여 있는 것 같


았다. 서둘러 난로에 장작을 지펴 잠든 집을 깨웠다.


이 넓은 세상에서 내 몸 하나 기댈 곳을 찾아 이런 산중에


까지 찾아드는가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이 또한 내가 일


찍부터 익힌 업이 아닐까 싶다. 다리 밑에서 거적을 뒤집어


쓰고 사는 거지도 제 멋에 산다고 하니까.


한 어머니는 가로, 세로 1미터 80센티미터 한 평의 공간에


서 요즘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아들이 공부하러 떠나


고 난 뒤 그가 거처하던 방을 이리저리 정리하고 보니 눈


을 번찍이게 하는 틈새공간이 생겼다는 것이다. 평소 그토


록 가지고 싶었던 '나만의 공간'을 마련했다고 한다.


맨 먼저 기도실을 만들어 불화를 걸고 향로와 촛대를 올려


놓고 화병에 꽃을 꽂아 아침마다 그 앞에서 기도를 한다.


시간과 남의 이목에 신경쓸 것 없이 기도하면서, 시시각각


으로 변하는 감정의 변화를 염불이나 독경 소리에 담아 삭


여버린다.


두 번째는 화실 만들기, 컴퓨터 프린터가 있는 책상의 한


쪽을 이용해서 화판을 올려놓는다. 그 위에 스케치북과 화


구를 놓아두니 열 평의 화실이 부럽지 않은 공간이 된다.


그 어머니는 아들이 남겨 준 한 평의 공간에서 이렇듯 조


촐한 행복을 만들어가고 있다. 작고 비좁은 곳에서도 살


줄 아는 사람은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



북인도의 오지인 라다크지방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한


티베트 노인은 현대인들이 불행한 이유에 대해서 이와같이


말한다.


' -아마도 당신들은 당신들이 갖고 있는 좋은 옷과 가구


와 재산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거기에 시간과 기운을 빼앗


겨 기도하고 명상하면서 차분히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이 없


을 것이다.



당신들이 불행한 것은 가진 재산이 당신들에게 주는 것보


다도 빼앗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현대인들의 가슴을 찌르는 명언이다. 물건과 재산만으로


사람이 행복할 수 있을까. 현대인들은 예전에 비해 많은 물


건과 편의시설 속에서 영양분도 많이 섭취하면서 잘 먹고


잘 입고 번쩍거리면서 산다. 그러나 만족할 줄도, 행복할


줄도 모른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율도 높다.



티베트 노인의 말처럼 현대인들이 불행한 것은 모자라서


가 아니라 너무 많아 넘치지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


는 데 어째서 그토록 넓고 크고 많은 것이 필요한가. 넘치


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옛사람들의 지혜를 오늘 우리


는 다시 배워야 한다.



이 세상에서 내 자신의 인간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얼


마나 높은 사회적인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다. 내가 내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


되어 있는가에 의해 내 인간가치가 매겨진다. 따라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결정적인 힘을 부여하는 것은 나 자신의 사


람됨이다.



새 천년이 온다고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벌집을 쑤셔 놓


은 것처럼 떠들썩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한 장밖에


남지 않은 12월이다. 저마다 오던 길이 되돌아 보이는 길


목.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왔는가


를 스스로 묻는 그런 계절이기도하다. 그래서 12월을 가리


켜 말수가 적어진 침묵의 달이라고도 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몇몇 곳에 다녀온 일이 떠오른다. 몽골


의 황량한 사막지대와 동토의 땅,시베리아를 지나 우랄산맥


을 넘고 볼가강을 건너는 길을 봄, 가을 두 차례 오고 갔


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태평양을 건너 옛 인디언의 땅 미


대륙의 동부를 다녀오기도 했다.



가는 데마다 우리말과 우리 음식과 우리 생활습관이 있어


지구가 한 동네임을 실감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


고 움츠려 살고 있다. 어째서 그런지 그 까닭이 화두처럼


다가선다.


무릇 인간관계란 신의와 예절로써 이루어진다고 평소에 생


각해 온 바이지만 우리는 신의와 애정이 모자란다. 그것도


수준이하로 많이 모자란다. 그래서 남들은 우리를 선뜻 신


뢰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 경제상태가 다시 어려워진 것


도 정부와 기업뿐 아니라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 모두


가 신의와 예절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는데 그 까닭이 있


을 것 같다. 우리는 이 겨울, 겸허한 마음으로 다시 첫걸음


부터 내딛어야 할 상황에 이른 것 같다.



1959년 티베트에서 중국의 침략을 피해 80이 넘은 노스님


이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에 왔었다. 그때 기자들이 놀라서


노스님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 나이에 그토록 험준한 히말라야를 아무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넘어올 수 있었습니까?"



그 노스님의 대답이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왔지요."


자신의 발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서 왔단다. 그에게는 뚜


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일도 이와 같다. 순간순간 한 걸


음 한 걸음 내딛으면서 산다. 문제는 어디를 향해 내딛느냐


에 있다. 당신은 지금 어느 곳을 보고 한 걸음, 한 걸음 내


딛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