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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 01-01-08

    무 말랭이를 말리면서....

본문

다시 겨울이 왔다. 사계절 중에서도 가장 차분한 때다. 나


무들은 할 일을 다 마치고 안으로 귀를 기울이면서 대지와


함께 숨결을 고르는 그런 때다. 봄 여름 가을을 지나오면


서 움트고 펼치고 떨구면서 살아 온 제 그림자를 내려다보


고 있을 것이다.



개울물도 숨죽여 흐른다. 가장자리에 얼음이 반쯤 덮였


다. 남쪽에서 불어온 부드러운 바람 결과 따뜻한 햇볕에 풀


렸던 지난 봄의 그 해빙이 다시 얼어 붙는다.


외풍을 막기 위해 쳐놓은 휘장에 새벽 달빛이 차갑게 비치


는 것을 보고 올 겨울 이 산중에 사는 노루와 토끼등 산짐


승들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돈에 눈이 먼 밀렵군들 등쌀에


얼마나 불안해 하며 떨고 있을 것인가. 요즘에는 그 얘들


이 잘 내려오지 않는다. 눈이 깊게 내려야 그 얘들의 소식


을 알게 될 것이다.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을 보고.



오두막 윗목에 종이를 깔로 무말랭이를 말리고 있다. 낮으


로 햇볕이 들어오는 곳이다. 겨울 동안 내가 즐겨 먹는 부


식인데, 그 어떤 찬거리보다도 이 무말랭이를 나는 즐겨 먹


는다. 얼마 전에 장에서 무를 한 배낭 가득 사왔다. 그때


그 무게가 아직도 내 왼쪽 어깨쭉지에 남아 있다. 개울물


에 씻어서 물기를 말린 뒤 난롯가에 앉아서 삭둑삭둑 썰


때 울리는 도마 소리가 잔칫집 같았다. 산중에서 벌어지는


겨울 잔칫집. 말린 무말랭이를 바구니에 담아 두고 필요할


때 꺼내어 한 단지씩 채워 진간장을 부어놓는다. 가끔 작


은 주걱으로 뒤적여 간장이 고루 배어들도록 해야 한다. 간


장이 충분히 배어들지 않으면 질기다. 꺼내 먹을 때 고춧가


루와 참기름과 깨소금 그리고 입맛에 따라 설탕을 조금만


치거나 치지 않아도 된다.


무말랭이는 조근조근 씹을수록 깊은 맛이 난다. 나처럼 성


질이 급한 사람도 무말랭이 먹을때만은 천천히 씹어 그 특


유한 맛을 믐미한다. 송나라 때의 왕신민이란 학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사람이 항상 나물뿌리를 씹어 먹을 수 있다면 백 가지 일


을 이룰 수 있다.'


기름지게 먹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말이 무엇을 뜻


하는지 죽을 때까지 알 수 없겠지만 담백하게 먹는 사람들


은 이 말뜻을 이내 알아차릴 것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우리 몸에 들어가 살이 되고 피가 되


고 뼈가 된다.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눈에도 보이지


않지만 그 음식물이 지닌 업까지도 함께 먹어 그 사람의 체


질과 성격을 형성한다.


이를테면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기를 먹을 때 고기


의 맛과 더불어 그 짐승의 업까지도 함께 먹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짐승의 버릇과 체질과 질병, 그리고 그


짐승이 사육자들에 의해 비정하게 다루어 질 때의 억울함


과 분노와 살해될 때의 고통과 원한까지도 함께 먹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식생활과 환경, 건강의 연관성에 대한 세계 일급 전문가


인 존 로빈스가 쓴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


를 읽으면서 인간의 잔인성을 보고 치가 떨렸다. 한편 담백


한 내 식성에 대해서 다행하게 여겨졌다.


가까운 친지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그는 콜레스테롤의 수


치가 낮아 약으로 계란을 먹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얼마 전


에 존 로빈스의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때부터 계란을 입


에 대지 않는다고 했다.


닭공장(양계장)에서 계란을 만들어내기 위해 닭들에게 가


하는 짓이 너무도 잔인하고 비정해서 인간의 양심상 도저


히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달걀 제조공장에서는 병아리가


부화되자 마자 병아리 감별사들에 의해 수컷은 필요가 없다


고 산채로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좁은 공간에 갇힌 닭들은


서로 쪼지 못하게 부리가 잘려지고 알을 많이 낳게 하기 위


해 첫 2주 동안은 하루 24시간 내내 눈부신 전등불 아래서


잠을 잘 수 없게 한다. 그 다음은 2시간마다 불을 켰다 껐


다 반복한다. 이와 같이 6주쯤 지나면 닭들은 거의 미쳐버


린다는 것이다.


닭고기 뿐 아니라 돼지고기와 쇠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르


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에 대해서 그는 현장답사를 통


해 소상하게 알려주고 있다. 인간이 살아 있는 생명을 어떻


게 이토록 잔인하고 무자비 하게 대할 수 있는가. 인간이


돈벌이를 위해 얼마만큼 타락할 수 있는 가를 속속들이 드


러내고 있다.



육식의 대안으로서 저자는 우리 몸과 정신에 좋은 콩과 야


채와 곡류, 과일, 견과류를 들면서 심장에 유익한 식품과


양질의 단백질이 든 식품을 믿을 만한 통계 수치로써 자세


히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미국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육식에서


채식으로 그릇된 식습관을 바꾸었다고 한다. 채식으로 바꾸


고 나서 에너지와 활력이 그전보다 더 넘치고 전체 컨디션


도 더 좋아졌음을 여러 연구 사례들이 보여주고 있다. 물


론 병원을 찾아가는 발길도 한층 뜸해졌으리라고 나는 믿


는다.


<톨스토이, 내 아버지의 생애>를 쓴 알렉산드라 톨스토이


는 채식가인 아버지에 대한 한 일화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 고모는 먹는 것을 좋아하는 식도락가였는데 어느


날 야채 일색의 식탁을 대하고서는 크게 화를 냈다. 자기


는 이런 허접 쓰레기 같은 것은 못 먹겠으니 고기와 닭을


달라고 했다. 다음 번에 식사를 하러 온 고모는 자기 의자


에 매여 있는 살아 있는 닭과 접시에 놓은 부엌칼을 보


고 '이게 뭐야"라고 놀라서 물었다. '누님이 닭을 달라고


했잖아'하고 아버지가 대답했다.


"우린 아무도 그걸 죽일 생각이 없거든. 그래서 누님이 직


접 하라고 미리 준비해 둔거야."


살아 있는 생명을 괴롭히거나 살해하는 것은 악덕 중에서


도 가장 큰 악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