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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 02-03-25

    2001년 6월 17일 법정스님 법문

본문

나는 이렇게 들었다.


그동안 잘들 지냈습니까.


햇볕에 계신 분들께서는 그늘로 들어오십시오. 가뭄이 드니 사람도 가뭄


을 타고 있습니다. 지수화풍(地水火風) 즉 땅, 물, 햇볕, 그리고 공기가


없으면 사람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의 은혜를 잊고 지내


고 있습니다. 물-. 우리 몸의 삼분의 이가 물이라고 하죠. 요즘과 같이


가뭄이 닥쳐와서야 물의 고마움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단식투쟁하는


사람들도 물은 마셔야 합니다. 물은 생명 그 자체입니다. 오늘은 물의 은


덕에 대하여 다 같이 생각해봅시다.


첫째 물은 자신의 몸을 더럽히면서 남의 더러움을 씻어주고 있지요.


둘째 동력(에너지)을 만들고 있지요.


셋째 쓰레기를 치워주고 있지요. 폭우가 쏟아지고 홍수가 필요합니다.


산과 들에 있는 쓰레기들은 크다란 물로만 치워질 수 있습니다.


넷째 어떤 형태이든 그릇의 모양을 따라줍니다. 곧 보살의 마음이죠. 상


대의 형태대로 따라주는 것이죠. 곧 자신을 필요로 하는 만큼 응해주는


것이죠.


다섯째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르고 있지요.


노자(老子)에 의하면 이 세상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겸손한 것도 없다.


그러면서도 굳세고 강한 것을 쳐서 이기는 데는 물보다 나은 것이 없다.


부드러운 것처럼 강한 것이 없다. 아무리 큰 물건도 흘러가게 하고, 낙수


물이 굳은 돌을 뚫을 수 있고 물은 제방도 무너뜨릴 수 있고 또 모든 것


을 다 포용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천하에 어떤 물건을 가져오든지 이


것과 대치할 수 없다.


물은 생명을 잉태하는 여성적인 모성입니다. 우리가 재난에서 벗어나려


면 어머니의 저력, 슬기를 발휘해야 합니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


는 모성적인 지혜 말입니다.


강물은 항산 흐르면서 또 언제나 그곳에 있으며 순간마다 새롭습니다.


그러면서도 없습니다. 시간도 흐르는 강물 같습니다.


여러분은 두 달 전에 여기에 모였습니다. 그때 그 시간은 어디로 갔습니


까. 두 달 전의 우리는 오늘의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새롭게 살 고 있


습니다.


부처님께서 보살은 수천백억의 모양으로 나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물은 안개, 서리, 비 또는 폭포 등 사람마음까지 감싸주는 흰눈으로 변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물을 물보살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옛절에 가면 언제나 호랑이와 용의 그림이 그려 붙여놓았습니다.

왜냐 ?


호랑이의 뜻은 산에 지천으로 늘려있는 나무라도 함부로 땔감으로 낭비


해서는 안되며 아무리 흔한 물이라도 아낌없이 사용하면 물을 관장하는


용이 노한다는 표현입니다.


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의 훌륭한 덕은 만물을 이롭게 하며 다투지 않


는다. 물은 도에 가깝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여러 강물이 바다에 이르면 이름을 잃어버리고 한 맛이 된다. 각자 모든


사람들이 수행자가 되면 같은 불자이니라.


물의 여덟가지 공덕은 달고, 차고, 부드럽고, 가볍고, 맑고, 냄새가 없


고, 마실 때 목구멍이 시원하고 뒷탈이 없는 것이지요. 우리의 온 몸과


영혼이 그런 물을 원하고 있는데 이런 물을 오늘날 누가 망쳤습니까 ?


물과 토양이 맞나 않맞나 차를 끓여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당나라 때 전다숙문헌에 보면 이계형이란 사람이 지방장관으로 부임하


는 도중 우연히 유구라는 차(茶)의 명인을 만나 같은 숙소에 들게되었습


니다. 이계형은 유구에게 차의 맛을 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유구는 차를


끓이려면 양자강남녕의 물이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관리가 남녕의 물을


길러왔는데 유구는 물을 보고 강기슭의 물 같네 하고 말했습니다. 물을


길러온 관리가 펄쩍 뛰었습니다. 내가 강 가운데로 배를 타고 나가는 것


을 모든 사람이 다 보았습니다. 하니 유구는 물통의 물을 반을 부어버리


고 그리고 남은 물을 보고 이것이 남녕의 물이라고 하니 관리가 사실은


가운데 물을 퍼오다가 반은 쏟아져 그만 기슭에 와서 반을 채웠습니다


하고 이실직고했습니다.


구십년만의 가뭄! 지구의 온난화! 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문득 내 자신의 저수량은 얼마나 될까? 내 자신의시간의 잔고는? 각자


자신의 저수량을 생각해보십시오. 오늘 하루가 지나면 시간의 잔고는 줄


어듭니다. 쓰지않고 한번 지나가면 흐르는 강물처럼 되돌릴 수 없습니


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남의 생명을 빼앗는 것과 같습니다. 시


간 도둑, 상습적인 시간 도둑 말입니다. 시간을 소중히 여겨 시간을 살리


는 사람이어야지 시간을 죽이는 사람은 좋은 친구가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가 기우제(祈雨祭)가 되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