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후원하기 나의후원

대구

    • 02-03-07

    2001.12.16 법정스님 정기법회 법문

본문

.. 4년 전 이 자리에서 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 절과 교회가 거대하고 호사스럽게 치장하고 흥청거리는 것이 마치 이 시대의 유행처럼 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 길상사는 가난하면서도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었으면 하고 원했습니다.

어떤 종교단체를 물을 것 없이 그 시대와 사회에 모범이 된 신앙인들은 하나 같이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 믿음의 꽃을 피우고 깨달음의 열매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 절이 과연 가난하면서 맑고 향기로운 도량인지 다 같이 한번 되돌아보십시다.

가난과 맑음과 향기로움은 청정함을 낳습니다.

이 도량에 몸담아 있는 스님과 드나드는 신도들의 생각과 말씨, 행동이 청정하다면 이 도량이 맑고 향기롭고 또한 청빈한 도량으로서 빛이 날 것입니다.


가끔 소임보는 사람들에게 듣는 이야기인데 무슨 집을 짓고 고쳐야 되는데 경제적인 사정이 허락되지 않아 걱정스럽다는 말을 합니다. 그때마다 무리하지 말고 형편닿는대로 하라고 합니다. 절 일이란 돈 갖고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간절한 믿음으로 절이 세워지고 신행단체가 이루어졌습니다.

청정한 도량이라면 절로절로 되가고 예산 갖고 되지 않습니다.

이 절이 돈이 많은 절이라면 시비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동안 사찰분규 대부분이 절에서 넘치는 돈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이 절이 돈 많은 절이라면 서로 주지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스님이 굶지 않고 현상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고맙게 여겨야 합니다.

돈이 많이 들어오는 절은 스님의 눈빛이 다릅니다. 돈독이 들어서 그러거죠.


오늘날 수행자들에게 크다란 장애는 넘치는 물량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여기에 달려있습니다. 이것이 큰 과제입니다.

옛날에는 세상이 어려웠고 절살림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도시를 가나 산중을 가나 시물이 넘치고 있습니다. 받아쓰면서 감사할 줄 모르고 고마워할 줄 몰라요.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도 몰라요.

넘치는 물량은 맑고 향기롭지 않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들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다"


이 말을 곰곰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욕심을 내지 않고 분수에 맞게 산다면 이 지구가 오염될리가 없고 자원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탐욕에 의해서 생태계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필수품 이외는 탐욕에 의한 사치와 허욕입니다.

세계 전체 인구의 5 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사람들이 지구 자원의 삼분의 일을 독점하고 있는 미국입니다. 이런 불합리하고 이기적인 체제를 버리지 않으면 세계의 인류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미국인 환경론자 "죤 로빈슨"은 9월 테러 이후 이런 글을 {습니다.

"대략 6천 명의 사람들이 테러공격으로 죽었다. 그러나 그날 이들만 죽은 것이 아니고 삼만 오천 명의 아이들도 굶어죽었다. 그 비슷한 숫자의 아이들이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오늘도 삼만 오천 명의 아이들이 굶어죽고 있다"


미국에서 재배된 곡식 80 %가 사람의 식량이 아니고 가축사료로 쓰고 있다.

한쪽에서는 부지기수로 굶어죽고

한쪽에서 육식위주의 생활습관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쇠고기를 들여와 먹고 있습니다.


이웃나라와 번영을 나누지 않으면 그 어떤 나라일지라도 원한과 증오를 낳습니다.

이 자원은 조상대대로 내려온 우주의 섭리입니다.

쓸 만큼쓰고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20세기는 너무 혹독하게 착취하므로 자원의 고갈로 인하여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지나친 부를 갖고 있으면 이웃으로부터 원한과 증오를 받게 합니다. 개인이 사용할 수 잇는 것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이 세상의 원리입니다.

미국이 테러공격을 받은 것도 빈부의 격차 때문이라고 미국의 지성인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현재 자원은 함부로 낭비할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합나다. 우리 다음의 생애입니다. 미래의 사람들의 몫을 가로채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생활습관을 바꿔야 합니다.

나 하나 어떻겠느냐 세상사람들이 다 그러는데 할 것이 아니라 나부터라도 희생을 해야 할 것입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 고마워할 줄 알고 분수 밖의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가난과 미덕.

생사윤회의 근본은 탐욕에 있다고 성현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탐욕은 지나친 욕구, 개인 밖에 모르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탐욕을 이기려면 이웃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만나는 사람나다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전에는 법문을 조사어록에서 배웠지만 이제는 조사어록 보다도 제 몸을 통해서 통해서 듣게 됩니다. 경전이나 조사어록은 관념이고 내 몸을 통해서 생노병사가 어디에 있고 나와 어떤 상관관계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알몸으로 절에 들어와서 부처님 덕분에 아는 듯 모르는 듯 집과 옷과 음식과 탈 것 등의 은혜를 받았는데 이에 보답을 하고 있는가 생각하면 부끄러워질 때가 있습니다. 남은 생애에 시은을 갚고 가야하는데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자비니 사랑이니 말을 할 것이 아니라 만나는 이웃은 물론 새, 나무, 짐승, 바위 이 모든 것에 친절하게 대해야 할 것입니다.


선종사에 진목주라고 9세기 때 황벽 스님의 수좌로 있섰는데, 임제 선사를 발굴하신 분입니다. 임제 선사가 뛰어난 그릇이라는 것을 안 것이지요. 그래서 임제 선사에게 황벽 스님을 찾아뵙고 어떤 것이 불법인지 물으라고 했습니다. 확벽 스님은 임제 선사를 보자 무조건 몽둥이로 쳤습니다. 그것도 세 번 씩이나요. 그래서 임제 선사가 도저히 여기에 있을 수 없으니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하자 가기 전에 황벽 스님에게 인사드리라고 말했지요. 목주는 황벽 스님에게 미리 가서보통 인물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임제 선사를 대우 스님에게 보냈습니다.

대우 스님이 임제 선사더러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황벽 스님에게서 왔는데 무슨 법문이 몽둥이로 때기기만 했어 왔습니다 했더니 "황벽이 친절히 가르쳐 주었군" 이 말에 임제 선사는 깨우쳤습니다.

"너의 스승은 황벽이다" 이래서 임제 선사는 황벽 스님에게 돌아갔습니다.


목주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길에서 검객을 만나거든 칼을 뺄 것이요.

시인이 아니면 시를 말하지 말라.


여우는 사자의 무리에 들 수 없다.

등불은 해와 달의 광명에 견줄 수 없다.


목주는 고향에서 개원사 주지를 했습니다.

늙으신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서였지요.

낮에는 사중 일을 보고 밤에는 짚신을 삼어 곡식과 바꾸어 어머니를 봉양했습니다. 절 시물을 축내지 않기 위해서지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짚신을 삼아 새벽에 남몰래 지고 나가서 큰 길가 나무가지에 걸어놓고 길손들이 신고 가도록 했습니다. 남을 도우신 것이지요. 그래서 진호혜(왕골 호 신 혜)라고들 했지요.


돈과 거창한 법문으로만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내 자신이 목격자이기도 한데..

시골에 환갑이 지나신 노인이 누가 무엇을 버리면 욕심사납게 뭣이든 긁어모아 집 뒤 선반에 모았다가 다른 사람이 쓸 수 있도록 고쳐서 아무나 가져가도록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남을 도우는 것은 돈만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난 내면 할 수 있습니다.그 분은 보살이라는 이름 없이 보살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을 도우는데 거창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조그마한 것이라도 도울 수 있으면 됩니다.

자선남비 옆에서 목탁을 치며 시주를 받던 스님이 마지막에 시주통을 털어서 자선남비에 넣는 일도 있지요.


법구경을 다같이 외워봅시다.


착한 일은 서둘러 행하고

나쁜 일에 마음을 멀리하라

착한 일하는데 게으르면

그의 마음은 벌써 나쁜 일을 즐기고 있다.


누가 만일 착한 일을 했다면

항상 그 일을 되풀이 하라

그 일을 즐겁게 여기라

착한 일을 쌓는 일은 즐거움이다.


선한 일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방울물이 고여서 항아리를 채우나니

조금씩 쌓은 선이 큰 선을 이룬다.


한 생각을 일으키면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 이웃에게 착한 일을 하도록 생각하십시오.

소모되는 생명을 이웃과 함게 하십시오.

내일로 마루지 마십시오, 내일은 내가 그 곳에 있지 않을 수도 있고 내 마음이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날그날 하십시오.


한해를 보내내면서 내가 살아온 날을 스스로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