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었나? 4월이었나? 그때가?
날씨는 좀 을씨년스러워 아직 완연한 봄기운은 없었다. 그런대로 들에는 개나리가 필까말까 하고 다기지게 묻는 것 같았다. 나는 제발 온 천지를 노랗게 물들여다오. 그러면 뒤따라 핏빛 같이 정열을 담은 진달래가 앞 다투며 피어나지 않겠니?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바람은 차서 몸을 옴츠리게 하는 날이었다. 그렇지만 리무진 관광버스 안은 보살님들과 거사님들과 중학생도 있었고 청년들도 있었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따뜻하고 맑고 향기로운 기운이 샘솟아 훈훈했다. 더군다나 우리가 존경하는 어른 스님과 같이 첫 출발하는 맑고 향기롭게 모임의 첫 사회봉사 시작이 아닌가? 출발의 이벤트!
야트막한 집 두 채가 이어져 이곳에 무의탁 노인들 약 50명이 오순도순 살고 있다니 이를 운영하는 분이 스님이라니 기특하고 훌륭하게 보였다. 운영하시는 스님께서 우리를 환대하는 모습이 겸손하고 자비심이 충만하게 보였다.
우리는 싣고 온 갖가지 묘목들은 집을 가운데 두고 넓은 벌판을 돌아가며, 자작나무 묘목은 어디에 심고 이 종류의 묘목은 여기에 심고, 의논을 해가면서, 어른 스님께서도 삽으로 땅을 파고 직접 묘목을 심으셨다. 이 나무들이 자라서 이곳이 아늑한 푸른 동산이 되어 무의탁 노인들께서 맘껏 여생을 보낼 수 있는 곳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앞날의 이곳 풍경을 상상했다.
우리는 그 후 그곳에 갈 때마다 묘목들이 잘 자라고 있는가 하고 발걸음 덤벙덤벙 걸으며 세고 둘러보곤 했다. 조금만 더 크면 가슴까지는 오겠지 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어느 날, 들판의 흙을 퍼 나르는 덤프트럭이 들락거리고 얼마 후 새로운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마당 가운데 원래 있던 큰 살구나무도(7월이면 우리는 살구를 따 먹기도 했다) 장소를 옮기더니만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우리들이 심은 각종 묘목들이 살아남을 수 없고, 묘목을 심은 곳은 건물과 아스팔트를 깔은 작은 차도로 탈바꿈했다. 우리는 곧 죽여 버릴 묘목을 심었다. 묘목의 묘지를 만들었다. 얼마 세월(몇 년)도 가지 않아 우리의 첫 이벤트는 기억에도 자리 잡지 못할 그냥 이벤트로 끝났다.
이벤트는 이벤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