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에 양로원 봉사활동을 하던 시기에는 양로원을 방문하게 되면 무의탁 노인들이 가족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일가친지들과는 떨어져 있어도 자유스럽고 평화로워 보였다. 자유스럽게 외출도 자주 하고 소일거리로 밭일도 하는 노인들이 있었다. 그런대로 사람으로서 가치를 부여받고 여생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 양로원의 이름이 바뀌어 법인화되면서 요양원의 건물은 정부의 보조로 건물은 대형화되고 외형은 웅장한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또한 양로원을 운영하던 사람의 명칭이 회장이니 이사장이니, 관리소장이니 하는 직책이 주어져 있었다. 관리자들이 목과 어깨에 힘을 들이고 쏟아내는 말은 권위를 지니고 위압적이 되었다.
양로원과 치매요양원을 겸하게 되고부터 치매가 없는 노인들도 치매노인과 마찬가지로 통제되고 행동반경이 하루 종일 건물 안에서만 행동하는 모습이 보였고, 이것은 감옥이나 다름없다. 의료를 하는 사람이나 요양원 직원이나 노인들의 감시역할을 하는 모습으로 비치었다. 요양원 건물이 점점 대형화 되고 현대식 건물을 갖추기 시작하고부터 내부에 수용하고 있는 노인들의 삶의 질이 좋아졌는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현대식 건물로 바뀌기 전에는 무의탁 노인에게 국가에서 지급되는 약간의 용돈도 지급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노인들이 약간이나 한 달에 받던 용돈도 지급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어떤 노인은 내가 양로원을 방문할 때면 얼마의 용돈을 부탁하곤 했다. 노인들에게 돈은 주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있었지만 노인들도 가끔 남모르게 용돈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었다. 어째 살아있는 사람이 자기만이 쓸 약간의 용돈도 없어서 궁색하게 되겠는가? 또 금연구역 외는 담배를 피울 권리도 있다. 어째 모든 사람이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한다는 근거는 어디 있으며 법적인 규제가 있는가? 나는 그래서 담배를 요구하는 어르신에게 금연구역 외에서 피우도록 권하며 담배를 주거나 사준 적이 있다. 이런 것은 한 사람의 인권 문제다.
나는 양로원에 계시는 노인(이렇게 쓰면 어르신이라는 언어로 사용해야 되는데 편리하게 노인으로 사용한다. 왜냐하면 처음 우리는 노인이라고 불렀을 때가 더 노인들이 자유스러웠고 평화스럽게 생활하고 있었는데, 언제부터 관리자들이 노인이라 부르지 말고 어르신이라고 불러야한다고 강요했다. 그러나 어르신이라고 사용할 때는 그들이 더욱 노인들에게 감시가 심하고 외부인이 보지 않을 때는 더욱 어르신들을 욱박지르는 모습이 내 눈에 띠지 시작했다)
우리는 요양원 관리자들이 노인들을 위한다는 형식으로 외부에 보이기 위하여, 봉사자들은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지, 실질적으로 무의탁 노인들이 여생을 편안히 지내고 있는지, 관리자들의 이익목적에 부합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지 살펴볼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고령화 사회를 핑계해서 노인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해야 할 일 중에, 무의탁 노인들이 하루 종일 건물 안에서 먹을 음식만 제공받고 우리 속에서 사육되고 있는지, 자유스럽게 출입을 할 수 있고 자유스럽게 권리를 주장하고, 인권을 누리고 있는지 우리가 잘 살펴보아야 하며, 만약 노인들의 권리가 제약되고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무의탁 노인들의 인권을 찾아주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