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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 08-01-11

    하얀 눈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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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예보가 잘못되었다고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닌 오늘이었습니다. 서울에는 이번 겨울들어 오랜만에 눈이 제법 많이 내렸습니다. 아침 이른 시간에 차를 사용하려고 집을 나서니 어둠 속에서 무언가 내리는데 비인지 눈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오니 어둠속에서 내리던 것은 작은 눈이 되어 앞 유리창에 내려 앉았습니다. 눈은 금방 아스팔트 길 위에 쌓이기 시작합니다. 아내를 직장에 태워 주기 위해 차를 몰고 가며 나의 출근 시간에 늦지않게 다시 돌아 올 때까지 눈이 조금만 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몇 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도로에는 눈이 쌓여 차선이 보이지 않습니다. 대충 눈 대중으로 길을 잡아 차를 몰고 가려니 미끄러질까 가슴이 조마조마 합니다. 다행히 가까운 거리라 기다시피 했지만 다시 아파트로 돌아오니 출근시간에 늦지는 않았습니다. 아침 밥을 먹고, 옷을 챙겨입고는 출근 길에 나서는데 그 사이에 도로며 나무가지에는 하얀 눈이 제법 쌓였습니다. 하얀 눈을 맞으며 걷는 기분도 쏠쏠합니다. 뽀득뽀득 눈을 밟는 소리도 기분좋게 들립니다. 조금 전 차를 운전 할 때는 눈이 내리지 않기를 바랬는데 상황이 바뀌니 눈을 맞으며 걷는 기분과 눈을 밟는 기분을 내고 있습니다. 나는 늘 한 쪽만 바라보며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다른 면을 보고는 양쪽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몇 초를 가지 못합니다. 팔만사천 번뇌가 일어나듯 온갖 잡념에 금방 다른 생각을 하니까요. 생각이 참 잘 달아납니다. 붙들어 매고 싶은데 묶을 곳이 없습니다. 생각은 생각의 끈으로 묶어야 하는데 묶임을 당할 생각도 묶을 생각도 실체가 없으니... 지저분하던 도로가 하얀 눈에 깨끗하게 보입니다. 지저분함도 깨끗함도 실체가 없거늘 모두 내 생각이 지어낸 환상에 불과한데 나는 또 분별합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볼 줄 모르니 늘 생각에 끄달려 삽니다. 그래서 마음이 하얗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침에 눈 길을 걸으며 쓸데없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눈이 녹으면 없어지듯 아무 의미 없는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