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일암 추억 (佛日庵 追憶)
-법정(法頂) 스님에게-
불일암(佛日庵) 별고 없겠지요?
구산(九山) 큰 스님도 안녕하시고요?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샤워장(場),
(안에서는 밖이 보이지만
밖에선 안보이는 초현대식
이 세상에서 가장 운치있는 목욕간 말예요)
겨울철이라 요즘은 이용이 안 되겠군요.
제가 갔을 땐
소쩍새 울음도 들을 수 있었는데,
빗방울 후두기는
파초 잎도 볼 수 있었는데.
어스름이면 이내 폭 포시시......
소리를 내며, 수 십 수 백의 달맞이 꽃이
하얗게 피어났죠. 불일암(佛日庵) 뜰은
삽시간에 달빛바다, 화엄경(華嚴境)이 되더니만.
지금은 온통 백설(白雪)의 바다겠죠?
적설(積雪)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우지끈하고 가지 부러지는 소리도 나는.
나뭇새 싱그럽던
뒷간의 틈 사이로 보이던 댓잎,
청개구리나 다람쥐들도
잘 과동(過冬)을 했으면 좋으련만....
스님, 아무쪼록 몸조심하세요.
방금 저는 재치기를 했습니다.
조계산 계곡물도
천한 이 몸 안에 들어와서는
콧물 눈물로 둔갑하는 모양예요.
참, 자정국사(慈靜國師) 묘광(妙光)의 부도비도
잘 있겠지요?
<출처: 박희진 시집「연꽃 속의 부처님」p.6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