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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 03-12-26

    집착에서 벗어나려면 1

본문

어제는 비가 내린 끝에 활짝 개어 서쪽 바닷가 산타모니카 비치에 나가


수평선으로 해가 잠기는 일몰을 지켜보았다.


일몰을 보고 있으면 하루의 끝을 실감하는 한편,


우리에게 허락된 삶의 그 하루도 끝이 났구나 하는 허무감이 든다.


저녁 노을 앞에 설 때마다 우리들 삶의 끝도 그처럼 담담하고 그윽할 수 있을까 묻고 싶어진다.


온갖 집착에서 벗어나 꽃이 피었던 그 가지에서 무너져 내리듯이,


삶의 가지에서 미련없이 떠나 대지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불교를 믿는다는 한 청년이 불쑥 이런 질문을 하였다.


“불교 경전 가운데 깨달음에 이르는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되어 있습니까?”


아마도 그 젊은이는 자기 자신이 불교경전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모양이다.


있었다 하더라도 건성으로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그 젊은이 뿐 아니라 대개의 불교도들은 다른 종교의 신자들에 비해 경전에 대한 이해나


탐구적인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


‘마음이 곧 부처요, 마음 밖에서 구하지 말라’ 고 한 그 뜻을 잘못 받아들여,


부처님의 교법을 아예 무시한 채 불교를 이해하려는 모순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중아함 염처경>에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구체적으로 이와같이 가르치고 있다.


“중생의 마음을 깨끗이 하고 걱정과 두려움을 건지며,


고뇌와 슬픔을 없애고 바른 법을 얻게 하는 뛰어난 길이 있다.


그것은 곧 사념처법이다.


과거 모른 여래도 이 법에 의해 최상의 열반을 얻었고,


현재와 미래의 여래도 이 법으로 열반을 얻을 것이다.


여기서 열반이란 죽음을 말한 것이 아니다.


온갖 번뇌와 갈등이 사라져 평온하고 청정하게 된 깨달음의 경지를 가리킨 말이다.


니르바나란 번뇌의 불꽃이 꺼져버린 상태, 그래서 적멸이라고도 번역한다.


그 열반에 이르려면 다음 네가지 즉 몸과 느낌과 마음과 현상에 대해서 똑바로 관찰하고


꾸준히 정진하여 바른 생각과 지혜로써 세상의 허욕과 번뇌를 끊어버려야 한다.


관찰이란 안으로 면밀히 살피는 일이다.


선(禪)은 물론 인도에서 싹텄지만 그 발달은 중국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선은 중국불교인 셈이다.


그 이전에는 안으로 면밀히 살피는 관법이 수행의 보편적인 방법이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닦으신 것도 이 관법이었디 중국의 선불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