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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 04-03-04

    책에 읽히지 말라

본문

法 頂 스님

지나온 자취를 되돌아보니, 책 읽는 즐거움이 없었다면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싶다.

‘책에 길이 있다’는 말이 있는데 독서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교훈이다.

학교교육도 따지고 보면 책 읽는 훈련이다.

책을 읽으면서 눈이 열리고 귀가 틔인다.

그 또래가 알아야 할 보편적인 지식과 교양을 익히면서 인간이 성장하고 또한 형성된다.

따라서 인간 형성의 길에 도움이 되지 않는 독서(지식이나 정보)는 더 물을 것도 없이 사람에게 해롭다.

육조 혜능스님의 회상에 <<법화경>>을 독송하기 7년이나 되는 한 스님이 있었는데,

그는 경전을 그저 읽고 외웠을 뿐 바른 진리의 근원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런 경우 경전 자체에 허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전을 읽는 그 사람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먼저 마음의 안정이 없으면 경전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경전의 가르침을 자기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설사 <<팔만대장경>>을 죄다 외울지라도 아무 의미가 없다.

옛 스승의 가르침에 ‘심불반조 간경무익(心不返照 看經無益)’이 란 말이 있다.

경전을 독송하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으로 돌이켜봄이 없다면

아무리 경전을 많이 읽더라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자칫 빠져들기 쉬운 것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에 읽히는 경우다.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책이 나를 읽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객이 뒤바뀌어 책을 읽는 의미가 전혀 없다.

이런 때는 선뜻 책장을 덮고 일어서야 한다.

밖에 나가 맑은 바람을 쏘이면서 피로해진 눈을 쉬게 하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기분을 바꾸어야 한다.

내가 책에서 벗어나야 하고 또한 책이 나를 떠나야 한다.

표현을 달리하자면,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비로소 책을 제대로 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선가(禪家)에서 불립문자(不立文字)를 내세우는 것도 아예 책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책을 대하되 그 책에 얽매이지 말고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지혜는 문자가 아니지만 문자로써 지혜를 드러낸다.

이렇게 되어야 아직 활자화되지 않은 여백(餘白)의 글까지도 읽을 수 있다.

좋은 책을 읽으면 그 좋은 책의 내용이 내 자신의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때 문자(文字)의 향기와 서권(書卷)의 기상이 내 안에서 움트고 자란다.

새 봄에 내 책상 위에는 두 권의 책이 놓여 있다.

프랭크 스마이드의 <산의 영혼>과 팔덴 갸초의 <가둘 수 없는 영혼>이다.

프랭크 스마이드는 영국의 등산가이며 저술가인데

그는 등산을 운동이나 도전으로 생각하지 않고 명상하기 위한 산책이라고 한다.

그는 산을 걷는 명상가이다.

팔덴 갸초는 티베트 라마승인데 중국이 티베트를 침략한 후 30여 년 동안 그가 겪은 고난의 기록이다.

그는 어떤 고난에도 스승과 영혼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고 강인한 정신력을 지켰다.

그에게는 감옥이 곧 사원이고 족쇄와 수갑이 경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