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현장이 곧 도량”… 법정스님 동안거 해제 법문
박영대 기자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학교와 직장이 바로 도량(道場·불교에서 도를 얻으려고 수행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특정한 장소에 집착해 어디에 가야만 수행이고 기도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이는 비본질적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4일 서울 성북구 성북2동 길상사에서 열린 동안거(冬安居·음력 10월 15일∼이듬해 1월 15일) 해제 법회에서 법정(法頂·사진) 스님은 “우리가 처한 삶의 현장이 곧 도량”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법정 스님은 “어수선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이 혼돈스러운 세태에서 도량이 없으면 세태의 물결에 휩쓸린다”며 도량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분별과 집착을 떠나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리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 곧 도량”이라는 것이다.
법정 스님은 법문 내내 “도량은 장소가 아니라 마음”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유마경(維摩經·일상에서 해탈을 체득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담은 경전)의 일화를 예로 들었다.
“한 스님이 조용히 공부하고 싶어 도량을 물색하던 중 유마 거사와 마주쳤습니다. ‘도량에서 오는 길’이라는 유마 거사에게 스님은 ‘도량이 어디냐’고 물었지요. 유마 거사는 이렇게 답합니다. ‘곧은 마음(직심·直心)이 도량이지요.’”
이어 법정 스님은 20년 전 인도에서 성지를 순례하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스님은 당시 아잔타 석굴로 가는 기차를 탔는데 지저분한 데다 비집고 들어설 틈조차 없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화장실 앞에 자리를 잡았지만 승객들이 화장실을 끊임없이 드나들어 냄새가 진동했다.
스님은 슬며시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지만 자정이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스님은 “옛 구법자들은 오로지 두 발로 성지를 순례했고 다른 승객들은 먼지 가득한 바닥에 앉아 있는데 나만 이 상황을 못 받아들일 것 없지 않는가 하고 생각했다”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법문을 끝맺었다.
“모든 것은 관념의 차이일 뿐이었습니다.
나는 그때 어느 성지에서도 느낄 수 없는 희열을 화장실 앞에서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