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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 07-03-08

    길상사 9주년 창건 법회 - 2006년 12월 10일

본문

길상사 창건 이야기




※지난 2006년 12월 10일,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 창건 9주년 기념법회에서 설해진 법정스님의 법문을 정리한 글입니다. (첫마음 회보에 다 담지 못한 내용을 담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함께 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올해로 길상사가 세워진 지 아홉 해가 됩니다. 더러 사석에서는 이야기 했었지만 공식적으로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개원 9주년을 맞아 길상사 창건과 그 이후 과정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불교교단에서 세워진 절은 시작부터 시주들의 보시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요즘 개인사찰처럼 특정 스님의 재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청정한 신도들의 시주에 의해 절이 세워졌다는 말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최초의 절은 죽림정사였습니다. 부처님의 수행자 시절부터 부처님께 귀의한 인도 마가다국의 빔비사라 국왕의 발심(發心)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자기 나라에서성불하여 부처가 되었기에 왕은 기쁜 마음으로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계실 절을 만들어서 불교교단에 헌납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빈터만 남아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사적인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불일암 시절, 겨울이면 손수 끓여먹는 자취생활이 지겨워서 1987년 겨울부터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송광사의 분원 고려사에 가서 서너 달씩 지내다 온 적이 있습니다. 물론 빈 몸으로 간 것은 아닙니다. 일거리를 들고 갔습니다. 번역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법회도 하면서 밥을 얻어먹었습니다.


그 때 고려사의 화주보살인 대도행 보살님을 통해서 대원각의 주인인 김영한 보살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김영한 보살님은 저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내 글을 읽기 위해서 <샘터>의 정기구독자가 되었노라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이 무렵부터 요정인 ‘대원각을 절로 만들었으면…’ 하는 말이 오고 갔습니다. 그러나 제 품성이 번거로운 일에 얽혀드는 것을 싫어해서 마음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강원도로 거처를 옮겨 살게 되었습니다.


어느 해 겨울이었습니다.


혼자 정진을 하다가 중이 시주밥만 축내고 있다는 사실에 몹시 자책이 되었습니다. 하는 일도 없이 산 위에서 혼자 이렇게 시주밥만 축낼 것이 아니라 내 역량이 허락하는 한에서 세상에 도움이 될만한 일이 하자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입니다.


우선은 종로에 사무실을 얻어 사용했습니다. 일이 하나 둘 벌어지게 되자 구체적인 도량이 있었으면 하는 염원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결국 대원각을 절로 만들자는 친지들의 뜻에 동의하게 된 것입니다.


절을 만들 때에는 제가 분명히 어떤 조건도 붙이지 않고 무주상으로 보시할 것을 주문하였고, 김영한 보살님이 이에 응해주셔서 다짐을 받았습니다.


모든 절이 불보살의 수호와 간절한 염원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지 어떤 조건을 달고 이루어진 경우는 없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사찰의 운영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에서 였습니다.


여기 계신 몇 분과 맑고 향기롭게 이사님들도 동참하였습니다. 김영한 보살님의 재산을 관리하는 측에서 절을 운영하기 위해서 이사와 감사를 두어야 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주식회사도 아니고 삼보에 헌납한 절에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이 저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었습니다.


그 때 전 ‘중이 할 일없어 그런 참견을 하며 절을 운영하랴’ 싶었습니다. 하여 저는 막간을 이용해 그 자리를 뜨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전통적으로 절 살림에 이사와 감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절에 사는 신도와 스님이 함께 의논해서 살림을 사는 것입니다.


그 후 전 또다시 절 세우는 일을 그만 두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 후 여러 스님들이 대원각에 마음을 두고 정치적인 용어로 물밑 작업을 해왔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김영한 보살님이 초지일관하여 저에게 이 터를 보시 하셨고 우여곡절 끝에 길상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게 개원한 길상사의 이후 여정도 순탄치 만은 않았습니다. 공개석상에서 이런 사정 이야기를 한 번은 해야겠다는 생각에 오늘 그 일을 밝힙니다.


절이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주하신 김영한 보살님이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재산관리자 측에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아무 조건없이 절로 돌리기로 한 땅에 대해 보살님이 돌아가시자 이의를 제기하고 소송을 건 것입니다.


현재 지장전 옆 주차장 자리를 돌려달라는 내용의 소송입니다.


그러나 재판결과 1심과 2심에서 모두 이유 없다고 기각 되었습니다. 이 일에는 김유후 변호사님의 숨은 공이 컸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서 밝힙니다.


사찰은 종단의 공공시설이기 때문에 결코 개인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런데 절이 되고 나니까 여기저기서 도와 달라는 편지가 자주 옵니다.


마치 이 절이 내 개인 재산인 줄 아는 모양입니다. 이 도량에 대해서는 여기 상주하는 스님과 신도들이 운영관리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절에 어떤 개인의 지분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보셨습니까.


절을 세우는데 공이 있다 하여 제지분이 달라는 말은 일찌기 없었습니다.


부처님 계율에는 승가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승가물에는 스님들이 함께 쓰는 교단의 공유물, 예를 들면 그 절의 방사, 전답 등을 일컫는 ‘사방승물’(四方僧物ㆍ모든 수행승들이 함께 사용하는 승단의 공유물)이 있고 현재 스님들이 시주로부터 보시 받아 사사로이 쓰는 ‘현전승물’(現前僧物ㆍ한 사원에 현재 머물고 있는 수행승의 개인 소유물)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찰 재산은 사방승물과 현전승물로 나눠져 있습니다.


이 중 사방승물은 현전승이 개인적으로 나누어 쓰거나 처분할 수 없다고 율장에 밝혀져 있습니다. 사찰공유재산은 어떤 개인도 사사로이 쓰거나 소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처님 당시 때부터 전해져오는 것입니다. 공사를 분명히 가리는 청정한 승가정신이기도 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저는 이 곳 길상사에 내 개인의 방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처럼 이 절에 나올 때면 주지실에 잠시 머물다 갈 뿐입니다.


지금껏 저는 이 절에서 하룻밤도 묵은 일이 없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음악회에 참석 하느라 늦게 서울을 떠나는 날에도, 심지어는 밤 12시 가까이 늦어져 피로 때문에 제 처소까지 가기 어렵다 싶으면 근처 모텔에 머물더라도 이 절에서 자지 않고 갑니다. 이것은 제 개인의 질서입니다.


제가 만약 이 절에 기대게 되면 절 살림이 이원화됩니다. 그 것은 송광사에서 지내면서 보고 느낀 겁니다. 주지가 엄연히 있는데 방장스님이 계시면 주지가 제 노릇을 못합니다.


절은 주지가 모든 책임이 집니다.


대중이나 재산을 관리하고 지킬 책임이 모두 주지에게 있습니다.


만약 제가 이 도량에 살게 되면 저는 간소하게 살고 싶은데 이부자리를 해온다 옷가지를 해온다 해서 번거로운 일들이 많이 생기기도 할 것입니다.


제가 이 도량에서 방을 차지한다는 것은 부처님의 법에 어긋납니다.


더군다나 맑고 향기롭게 살고자 하는 염원으로 이루어진 도량이라면 부처님의 가르침과 교단의 전통적인 규범에 어긋나서는 안됩니다.


중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게 사는 겁니다.


길상사라는 절 이름은 이전에 프랑스 파리에 송광사 분원으로 길상사라는 절을 만든 일이 있습니다.


그 때 절 이름을 길상사라 하니 참 좋았기에 여기도 같은 이름을 쓴 겁니다. 체인점 이름이 아닙니다. 송광사의 옛이름이 길상사이기도 해서 그 인연으로 지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절은 세웠졌습니다만 그간 절로써 자리 잡히기 전까지 솔직히 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빚은 잔뜩 져있고, 스님들도 들랑날랑하고, 개인 사조직의 신도들이 술을 먹고 와서 행패를 부리는 일까지도 있어 속으로 몹시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 끝에 이런 발원을 했습니다.




“길상사가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게 하소서.


도량에 몸담아 사는 스님들과 신도들,


이 도량에 의지해 드나드는 신도들까지도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이 흐리고 거친 세상에 맑고 향기로운 도량을 이루게 하소서.


좋은 스님들과 신도들이 모여서 여법하고 길상스러운 도량을 이루게 하며,


안팎으로 외호하는 불자들이 불보살의 가호 아래 복된 나날을 이루게 하소서.”




이 축원을 전 오늘 아침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내가 살아있는 한, 이 길상사가 존속하는 한 저의 이 염원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오늘의 길상사가 있기까지 알게 모르게 염려하고, 애써주시고, 수호해주시며 소임을 본 스님들과 여러 신도들의 음덕임을 그 누구보다도 이 도량의 수호신들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여러 불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