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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 00-07-29

    나무들 이야기-법정스님

본문

나무들 이야기


나무들은 여름철에 자란다. 특히 기온이 높고 습기가 많은


장마철에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란다. 내 거처의 둘


레에서 함께 살고 있는 소나무와 전나무, 가문비나무들이


이 여름에 두 자도 넘게 그 우둠지가 자랐다. 자작나무도


그 가지와 잎을 무성하게 펼쳐냈다. 이토록 왕성한 생명력


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사람은 산소를 만들지 못하고 맑은 공기를 더럽히기만 하


는데, 이런 나무들이 산소를 만들어내고 더러워진 공기를


정화한다.


나무들은 메마른 대지에 그늘을 드리우면서 초록과 생기


를 내뿜어 쾌적한 환경을 이룬다. 그리고 뿌리에 물기를 머


금었다가 그때그때 나누어준다. 말하자면 수자원의 구실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나무의 집합체인 숲이 이 지구상에서 점점 사라


져 가고 있다. 서양 사람들에 의해 잘못 길들여진 육식 위


주의 식생활과 과도한 소비 때문에 이 지구의 숨통인 열대


우림이 소멸되어 간다. 두려운 일이다.


어떤 수종이 됐건 우람하게 서 있는 거목을 보면 외경스럽


다. 늠름한 그 기상과 신령스러운 기운 앞에 조심스럽다.


수 백년 묵은 고목 앞에서 치성을 드리던 옛사람들의 그 마


음을 이해할 것 같다. 어찌 그것을 미신이라고 몰아붙일


수 있겠는가.




내 오두막 뒤 개울 건너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한 그루 외


롭게 서 있는데, 이 나무를 바라볼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


을 하게 된다.


영하의 추위와 폭풍우에 시달리면서도 의연하게 우뚝 서


있는 나무. 그는 추위와 더위, 눈 비와 바람을 거부하지 않


고 묵묵히 받아들인다. 어느 해 겨울 눈보라에 한 쪽 가지


가 반쯤 꺾여 나갔다. 설한풍에 한 쪽 팔을 잃고서도 나무


는 여전히 정정하다. 척박한 자갈땅에서도 새 가지를 펼치


고 솔방울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피나는 인고


의 작업이다.


나무마다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쓴 몸짓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의 상처를 지니고 있다. 이것이 그 나무의 얼굴


이고 삶의 흔적일 것이다. 그 나무가 어떤 세월속에서 얼마


만큼의 고통을 겪었는가는 거죽만 보고서는 잘 알 수 없


다. 나무에 숨이 멎은 뒤 그가 남긴 나이테를 통해서 그 세


월과 고통의 응어리를 짐작할 수 있다. 이건 나무만이 아니


라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살아 있는 나무에는 함부로 손을 대지 말아야 한다. 폭풍


우에 가지가 꺾였더라도 꺾인대로 두어야 한다. 공연히 거


기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 '자연'을 훼손하게 된다. 사람의


눈이 어찌 자연만 하겠는가.


내가 전에 살던 암자에는 한 아름이나 되는 후박나무가


두 그루 뜰에 서 있다. 옛터에 암자를 새로 지을 때 손수


심은 묘목이라 내 눈길과 함께 자란 나무다. 그리고 암자


뒤에는 백년도 더된 굴참나무가 우람한 가지를 펼치고 있었


다. 그 가지에 여름이면 꾀꼬리와 소쩍새가 깃을 쳤다.


한 번은 그 암자에 들렀더니 후박나무 가지를 3분의 1이


나 베어낸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윗가지만 남기고


아랫가지는 모조리 쳐낸 것이다. 그토록 아름답고 의젓하


던 나무의 모양이 형편없이 초라해지고 말았다. 집 뒤에 우


람하게 서 있던 굴참나무도 그 가지들을 잘라내어 볼품없


이 만들어 놓았었다. 땔감으로 쓰기 위해 가지를 베어낸 것


임을 알고 나는 더욱 놀랐었다.


자연의 얼굴인 나무가 어찌 줄기만으로 존재할 수 있겠는


가. 뿌리와 줄기와 가지가 한데 어울려 생명의 조화를 이룬


다. 나는 그때 가지를 잘려 풀이 죽어 있는 후박나무와 굴


참나무를 보고 한없이 미안하고 죄스런 마음이었다. 내가


현장에 없어 그런 참화를 입게 했구나 싶으니 나무들을 대


할 면목이 없었다.




내가 몸담아 사는 곳이면 나무와 화초를 즐겨 심고 가꾸었


다. 지금은 게을러져 그런 열기가 많이 식었지만 그전에는


열심이었다. 50년대 말 해인사에서 통도사로 잠시 살러갈


때에는, 절 아래에 있는 여관 연못에서 얼음을 깨고 들어


가 수련 뿌리를 캐어 가지고 가서 꽃을 피웠다 다래헌 시절


에도 연못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꽃을 즐겼다.


지난 봄 온양 인취사에서 분양 받은 백련 뿌리를 겨울동


안 신세진 동해안의 거처에 기념으로 심었었다. 커다란 자


배기에 밭흙을 담아 양지바른 곳에 두고 물을 끌어 대었다.



며칠 전 궁금해서 그 집에 가보았더니 너울너울 자라 오


른 연잎 사이로 꽃봉오리가 두 송이 우뚝 솟아 있었다. 너


무 반갑고 기특해서 탄성을 질렀다. 연못이 아닌 곳에서도


꽃을 피우는 연이 참으로 대견했다.


남쪽에서 옮겨다 심은 파초도 무성하게 자라 청청한 잎이


바닷바람에 너울거리고 있었다. 그 때 인취사에서 함게 얻


어온 흰 백일홍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이 바닷가 오두


막에 백련과 흰백일홍이 꽃을 피우면 볼만할 것이다.


모처럼 만난 집주인과 마루에 마주 앉아 차를 마셨다. 새


로 든 이집 주인은 풍류를 아는 분이라 파초잎을 꺾어다 찻


상 위에 깔고 그 위에 다기를 차려 놓으니 차를 마시기 전


부터 맑은 기운이 차향기를 돋우었다.


뒤꼍에 심어 놓은 다섯 그루 소나무도 자리가 잡혀 새움


이 많이 돋았다. 칡넝쿨이 감고 올라 낫으로 그것을 걷어


내었다. 심어 놓은 나무들이 제대로 자라는 걸 볼 때마다


대견스럽고 생명의 신비 앞에 숙연해진다.


내가 외떨어져 살기를 좋아하는 것은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서가 아니라 내 자신의 리듬에 맞추어 내 길을 가기 위해서


다. 그리고 사람보다 나무들이 좋아서일 것이다. 홀로 있어


도 의연한 이런 나무들이 내 삶을 곁에서 지켜보고 거들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들이여, 고맙고 고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