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들어와 살면서 종이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원주스님이 장에서 이따금 마분지를 사다가 대중에게 한장씩 나누어주던 일이다. 종이를 받은 스님들은 그것을 오려 돌돌 말아서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뒷간에서 화장지로 {다. 마을 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일이라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시절은 요즘 같은 두루마리 화장지가 없었다. 꺼슬꺼슬한 갈색 마분지이므로 위생적으로는 깨끗하지 못했지만 나무이파리보다는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절에서는 예전부터 글씨가 씌여 있는 종이나 글자가 박힌 신문지며 책장을 뒷간의 휴지로 쓰지 못하도록 했다.
문종이를 새로 바를 때도 헌 창호지를 결코 버리지 않았다. 물을 뿜어서 문종이를 불린 다음 고스란히 떼어서 말린다. 그리곤 그것을 오려서 노를 꼬아 촛농에 담갔다가 촛불이나 등잔을 켤 때 불을 옮겨 붙이는 용심지로 {던 것이다. 또 헌 창호지로 노를 꼬아 방석이나 염주함을 만들기도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옛날의 수도승들은 아무 것도 지닌 것 없이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추운 겨울철이면 문창호지로 속옷을 만들어 입기도 했다. 기록에 보면 여럿이 한 방에서 정진할 때 일어서거나 앉을 때 종이옷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어지간히 신경들이 씌였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두툼한 속옷으로 추위를 모르고 지내는 요즘 사람들로서는 미칠 수 없는, 성성적적한 선정삼매의 기쁨을 누리면서 살았었다.
내 생활공간을 빙 둘러보니 종이가 차지한 몫이 적지 않다. 책을 비록해서 원고지, 노트, 메모지, 두루마리 화선지, 장지, 편지지, 봉투. 또 무엇이 있느냐. 그렇지. 창호지와 벽지, 천정지와 장판지, 화장지와 종이상자 그리고 달력도 벽에 걸려 있구나. 이 밖에도 찾아보면 종이로 이루어진 물건이 더 있을 것이다.
종이는 이와 같이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한때는 종이의 소비량에 의해서 그 나라의 문화수준을 재기도 했었다.
이와 같은 종이는 어디서 왔는가. 물론 종이의 원료는 펄프이고 펄프는 나무로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종이는 나무에서 나온 것이다.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나무는 태양에너지를 유기물로 바꾸고 공기를 정화 시킨다. 그리고 나무는 사람을 비롯하여 모든 생명체에게 한순도 없어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산소를 제공한다. 사람도 컴퓨터는 절대로 산소를 만들지 못한다. 이 대지에서 나무와 숲만이 생명의 산소를 만들어낸다.
전문가들의 계산에 의하면 종이 1톤을 만드는 데에 30년생 나무 17그루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나무를 베어낸 그 빈자를 다시 채우려면 또 30년 이상의 오랜 세월이 걸린다. 그것도 산불이나 병충해의 재해가 없을 경우다.
나무를 베어서 종이를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물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따라서 환경을 오염시키는 유해 화학물질이 많이 배출된다.
우리 나라에서 한 해 소비되는 종이는 700-800만톤 수준. 한 해 동안 소비되는 온갖 종이를 순전히 나무로만 만든다면 30년생 나무 1억 1천-1억 3천 그루가 필요하다. 다행히 전체 종이소비량 중 3분의 2가량이 한번 쓴 종이를 재활용해서 만든 재생지로 충당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 손으로 매년 4천만 그루의 나무를 종이소비를 위해 벌목하고 있는 샘이다.
일반 가정에서 버리는 쓰레기 중에서 신문지와 골판지 그리고 잡지 같은 것을 분리 수거한 그 덕으로 1997년의 경우 국내 폐지사용량은 453만톤, 국내 종이소비량 대비 56.8%가 재활용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이런 상황이므로 우리가 몸 담아 사는 이 지구를 맑고 푸르게 하기 위해서는 더 말할것도 없이 종이를 아껴서 써야 한다. 한 번 쓴 종이라도 뒷면에 여백이 있는 것은 다시 써야 하고, 다 쓴 종이를 재활용해서 재생지를 만들 수 있도록 분리해서 내놓아야 한다.
재생지는 결과적으로 나무의 벌목을 줄이게 되고 재활용하면 제지과정에 드는 막대한 에너지와 물을 아낄 수 있다. 재생지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 나라는 해마다 전체 폐지필요량의 4분의 1수준인 150만 톤의 폐지를 수입한다. 이 말은 우리 가정에서 폐지를 따로 가려서 내놓으면 외국산 폐지 150만 톤을 수입하지 않아도 되고, 바꾸어 말하면 한 해에 150만 톤의 종이를 우리 땅에 묻거나 태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산림조합 중앙회에서 펴낸 '산림'지에서 종이 소비에 대한 글을 읽고 자신을 되돌아볼 좋은 기회를 가졌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또 책을 만들어 내는 나는 종이를 많이 소비하는 축에 든다. 그전에는 글을 쓰다가 파지가 나오면 구겨서 버리던 나쁜 버륵을 이제는 고치게 되었다. 한 장의 종이가 나무와 숲의 희생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종이를 대할 때 자꾸만 살아 있는 나무와 숲이 떠오른다. 나무와 숲이 사라지면 무엇이 우리 생명의 원천인 산소를 만들어낼 것인가.
그리고 거듭거듭 묻는다.
내가 쓴 글이 과연 이 대지에서 수많은 나무들을 베어 넘어뜨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종이를 아껴야겠다.
종이를 함부로 버리지 말아야겠다.
나무 종이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