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밖에서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 안에서도 봄은 움튼다. 천지에 봄기운이 넘칠 때 우리 마음속에서도 스물스물 봄기운이 기지개를 켠다. 남쪽에서 묻어오는 꽃소식에 맞추어 응달의 잔설을 접어둔 채 내 둘레에 봄맞이 채비를 했다.
삼월 한 달을 일꾼들과 어울려 집일을 했다. 지난 겨울이 너무 추워서 허물어진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 저기 눈에 꺾인 설해목이 있어 그걸 잘라서 끌어들이느라고 애를 많이 썼다.
일꾼들과 함께 일을 하다 보면 그 사람이 지닌 솜씨와 더불어 그 인품까지도 엿볼 수 있다. 이번에 새로 사귄 박씨는 참으로 믿음직한 일꾼이다. 아버지 때부터 미장일을 해왔다는 40대 후반인 그는 지금까지 내가 겪은 일꾼 중에서는 첫째로 꼽힐 만큼 뛰어나다. 그리고 아주 성실하다.
몸은 많이 고단했지만 일하는 재미에 실려 어느새 2월이 가고 3월이 저물었다. 내 손결이 상어껍질처럼 거칠어졌다.
얼마 전에 교도소에 복역중인 한 젊은이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았다. 신문에 실린 내 기사를 보고 문득 2년 전의 기억이 떠올라 내게 편지를 쓰게 된 것이라고 했다.
‘저는 부끄럽게도 흉악한 범죄자였습니다’라고 운을 뗀 다음 남의 재산을 훔친 절도죄로 3년형을 받고 복역중인데 지금은 어느 개방교도소에 있다고 했다.
그의 편지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개방교도소는 가석방 대상자들에게 사회적응 훈련을 시키는 곳으로 일반교도소와는 많은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높은 담장도 없고 여느 교육연수원처럼 수용자에게 자율이 보장된 곳이다. 신문과 방송도 접할 수 있는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이다.
그는 20일 후면 사회에 복귀하게 된다고 하면서 기대와 설레임도 있지만 한편 미래에 대해서 두려운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처음 범행을 저지르고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되었을 때의 심경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그때는 아무런 미래도 희망도 없었습니다. 남은 것이라고는 혐오스런 제 모습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이모저모로 생각해보아도 제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삶의 의욕을 상실한 채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살을 결심한다. 다음 세상에서는 더러운 오명을 쓰지 않고 착하고 아름답게 살아가자고. 이렇게 결정을 하고 나니 두렵기도 했지만 편안하게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 목을 매달 수 있도록 끈을 준비해 놓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이렇게 하루 이틀 기회만을 엿보던 중에 우연히 「버리고 떠나기」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버리고 떠나기」라는 책 제목이 자신의 그때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에서 읽게 된 것인데, 책을 읽어 가는 동안 그의 심경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모든 일을 제쳐놓고 한 번 읽고 다시 한 번 정독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어리석게 살아온 제 자신을 숨기고 싶었습니다. 한 순간이나마 자살을 결심했던 사실이 너무나 창피했습니다. 그리고 눈물겹도록 고마웠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삶의 의욕이 생기고 용기가 불끈불끈 솟아났습니다.’
그는 이어서 말하기를 그때의 감동은 지금까지 자신이 쉬지 않고 부처님 말씀을 따르게 된 에너지가 되어 주었다고 했다. 그 후로 그는 암울했던 과거를 말끔히 씻어내고 기쁘고 행복한 수용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편지에서 그는 이런 말도 하고 있다.
‘제가 이곳에서 얻은 것은 너무나 큽니다. 부처님 앞에서 눈물범벅이 되도록 참회하면서 지난 날의 부끄러웠던 과거를 뼈저리게 반성했습니다.’
그는 자기 인생의 전 과정으로 볼 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한 생각 돌이키니 그 곳이 교도소가 아니라 국립선원이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교도소 안의 규제와 제약을 구속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행복과 안전을 지켜주는 부처님 법이라고 생각하니 그대로가 자유라고 그는 말한다.
‘일체 만물을 부처님으로 모시고 사랑할 것을 다짐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라고 그의 편지는 맺는다.
남쪽에서 전해 오는 꽃소식에 못지 않게 이 봄에 듣는 훈훈한 봄소식이다. 그는 지금쯤 자유의 몸이 되어 꽃향기가 밴 밝은 햇살을 한 아름 안고 새봄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한 생각 돌이키니 교도소가 국립선원으로 바뀌더라는 그의 체험담은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리고 둘레의 규제와 제약이 그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을 지켜 주는 부처님 법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니 값진 체험이다.
천당과 지옥은 어디에 있는가. 결코 먼데 있지 않다. 내가 지닌 그 한 생각에 천당과 지옥이 달린 것이다.
지혜가 딴 데 있지 않고 어리석음이 사라진 그 자리이며 사랑 또한 미움이 가시고 난 바로 그 자리다. 그래서 번뇌가 보리[도]를 이루고, 생사가 열반[해탈]에 이르는 디딤돌이라고 한 것이다.
이 봄에 당신은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