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한 승부
法頂(회주스님)
<산방한담>
대통령을 뽑는 선거의 열풍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승자와 패자의 서로 다른 모습을 보면서, 이런 것이 인간의 삶인가 싶어 착잡한 감회가 든다. 선거에서는 오로지 1등만이 있을 뿐 2등은 설자리가 없다. 비정한 승부다. 도박치고는 너무나 큰 도박이다.
누가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했는가. 승자 쪽에는 꽃이 될 수 있겠지만 패자 쪽에는 좌절과 회한의 상처뿐. 당선자를 축하하기에 앞서 낙선자를 위로해야 할 의무가 투표자들에게 있다.
영국의 수상이었던 처칠은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열 네 번 선거에 출마해서 싸웠다. 한 번의 선거를 치를 때마다 사람의 목숨이 한 달씩 감수되는 것 같았다. 우리의 짧은 생애를 두고 생각할 때 내 생애 중 이렇게 힘든 말싸움 때문에 14개월을 헛되이 소모했다니, 정말 우울해진다.”
출마자의 처지에서 보면 처칠의 지적처럼 선거는 ‘힘든 말싸움’이다. 지켜질 지 말뿐일 지 모를 공약을 상대편을 누르기 위해 끝없이 쏟아놓아야 하는 그런 말싸움인 것이다.
그리고 돈을 들이지 않고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 막대한 돈이 필요하듯이 선거에 지기 위해서도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 빚을 갚으려면 그만한 보상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여기 정치와 돈의 상관관계가 있다. 선거에서 승리한 쪽이 전리품으로써 높은 자리를 나누어 차지하는 제도는 우리가 이상으로 하는 바른 정치가 아니다. 하지만 현실정치는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정치에는 그림자처럼 늘 말썽이 따른다. 정치에는 ‘정치꾼들’이 우글거린다.
정치꾼들은 다음 선거에 대해서 생각하고 정치가는 이 다음에 올 시대를 생각한다. 누구의 말을 빌 것도 없이 좋은 정치가는 가장 인간적인 정치가여야 한다.
말이 나온 김에 불교에서는 정치를 어떻게 보는지 이야기하려고 한다. 초기경전인 <장아함 세기경 본연품>에 이런 대목이 있다.
‘논밭에 경계의 구별이 생기자 다툼과 소송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 일을 해결하고 판정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공통된 주(平等主)를 세워 인민을 보호하고 선에는 상을 주고 악에는 벌을 내리도록 하자고 했다. 그들은 각자의 수익 중에서 일부를 떼어 그것을 ‘공통된 주’에게 공급하기로 했다.
이때 군중 속에 신체가 건강하고 그 모습이 단정하며 위엄을 갖춘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우리들은 이제 그대를 세워 주(主)를 삼으려고 한다’라고 했다. 그는 이 청을 받아들여 인민의 주가 되어 상을 줄만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벌을 내릴만한 사람에게는 벌을 내렸다. 그를 가리켜 민의 주(民主)라고 한다. 그의 자손이 대대로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불교 경전에 나오는 왕족의 기원과 사유재산 제도의 성립에 대한 내력이다. 크샤트리야, 즉 왕족의 어원은 밭의 주인(田主)을 가리킨다. 고대 사회에서 국왕은 인민의 대리자였다. 인민이 그에게 급료를 지불하면서 그를 고용했었다. 일종의 사회계약인 셈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인민의 대리자인 그는 인민을 억압하고 전제 군주로 변한다.
“왕은 폭력으로써 지상을 정복하고 바다 건너까지 차지하려고 한다.”(장로게)
“그 때문에 왕들은 전쟁을 일으켜 인민에게 재난과 손해를 끼친다. 또 막강한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제멋대로 인민을 박해하면서 괴롭힌다. 이런 점에서 왕은 도적과 다름이 없다.”(자타카)
<화엄경 입법계품>에는 다섯 가지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기초라고 하면서 그 다섯 가지 두려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왕의 인품이 순박하고 정직해서 과세 방법이 공평함으로써 국왕에 의한 수탈의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
둘째, 군인들이 충직하고 현명해서 탐욕을 부리지 않음으로써 국왕의 측근들이 횡포를 부리는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
셋째, 공직자들이 그 직분을 지키고 친절하고 너그럽게 인민을 대함으로써 부패 공무원들로부터 피해를 입는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
넷째, 인민들이 모두 도리를 지키고 부지런하며 나라를 사랑함으로써 도둑들이 날뛰는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
다섯째, 이웃나라와의 관계를 원만히 하고 교류를 증진함으로써 침략의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
이 다섯 가지 두려움을 없애지 않으면 인민들은 항상 불안한 상태에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2천 5백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불안요인은 너무도 흡사하다. 과세의 공평, 군인들의 본분 지키기, 청렴한 공직자, 투철한 시민정신, 원만한 외교관계 등이 국정의 지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절한 지적이다.
불타 석가모니가 히말라야에 가까운 숲 속의 오두막에 머물고 있을 때, 어떤 것이 바른 정치인가를 명상하다가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바른 정치란 죽이지 않고 해치지 않고, 이기지 않고, 이기게 하지 않고, 슬프지 않고, 슬프게 하지 않고, 바른 법을 가지고 정의로써 다스림이다.”
이 때 한 어두운 그림자(악마)가 ‘그럼 세존께서 몸소 다스려 보십시오’라고 속삭인다. 부처님은 단호하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 히말라야를 황금으로 만들고 다시 그걸 곱으로 만든다 할지라도 통치자의 야망을 다 충족시킬 수는 없다. 인간들이여, 자신의 분수를 알고 떳떳하게 처신하라.”
그 ‘말싸움’대로 세상이 정말 살기 좋은 세상으로 달라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