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산에서 그를 만나다
...비오는데 뭐하러 왔어?
-산 중에 봄비가 내리는 날, 법정 스님은 암자를 찾았다.
...수고하십니다. 올라가지.
“소리가 달라져요. 이 바람결, 겨울바람하고 봄하고 소리가 달라요.
훨씬 부드러워지고 봄되면 난 그래요.
체질적으로 자다가 밤중에 자꾸 깨요. 잠이 적어져 밤중에.
대개 산에 살면 가을이라든가 봄이 되면 바람결에서 느껴요.”
-봄이 오는 소리를 몸으로 듣는다고 했다.
(계절이 바뀌고) 오랜만에 찾은 암자에 오르는 동안에도
스님은 산중의 작은 변화를 찾아냈다.
-법정스님은 일년에 두세 번 불일암을 찾는다.
-안거가 끝나고 각자 선방에서 정진하던 상좌스님들과 만나기 위해서다.
-암자는 28년전 스님이 손수 지었다.
-지금은 불일암을 떠나 다른 곳에 살고 있지만
이 맘때가 되면 암자의 매화 소식이 먼저 궁금했다.
- 주인없는 암자에서 혼자 꽃을 피운 것이 기특한 듯
스님은 매화를 한참 바라보았다.
-문향, 스님은 매화 향기를 맡지 않고 듣는다고 했다.
-냄새를 맡듯 매화 향기를 얻으려 하는 것은 어렵게 피어
난 꽃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처음 여기 1975년 4월 19일날 여기를 왔거든.
그때 비가 내리더라고, 텅 비어있고 쓰러져있고.
그런데 벚나무가 이렇게 크지 않고 조그만했는데 활짝 피어있더라니까.
그러니까 아주 정답더라고.
아 이 벚꽃 나하고 같이 살아야겠구나.
물에 가서 물맛을 바가지로 떠서 먹었더니 아주 물맛이 좋아
그래서 아 이곳이 살만한 곳이구나."
-스님은 불일암에서 혼자 사는 삶을 선택했다.
홀로 있어야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에 오로지
정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홀로 자신과 마주하며 자연에서 보낸 시간을
기록하여 ‘무소유’를 비롯한 많은 책을 세상에 전했다.
미련없이 자신을 떨치고
때가 되면 푸른 잎을 틔우는 나무를 보라.
찌들고 퇴색해가는 삶에서 뛰쳐나오려면
그런 결단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버리고 떠나기 중)
언젠가 한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무소유 중에서)
-산사의 봄은 아직 쌀쌀하다.
잔솔깨비로 군불을 때는 모습에서도 스님의
간소한 삶이 보인다.
"나무 탈 때 바람이 많이 들어가면 열기가 많이 빠져나와요.
살짝 이렇게 가려놓으면 열기가 덜 빠져나가서 보온이 잘돼.
카메라에 잘나오려면 이렇게 열어 줘야겠네.
이러면 이제 물만 끓어요.
잘된 아궁이는 불이 탈 때 저 고래 등이 환히 보여야 돼요.
바람이 많이 들어가면 굴뚝으로 열이 많이 빠져 나가요."
-혼자 사는 삶에도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다.
-가장 큰 원칙은 간소하고 간소하게 사는 것.
방안에는 방석 하나와 어둠을 밝히는 호롱불이 전부다.
"자기 어떤 주거공간 같은 것이 될 수 있으면 단순해야 한다고.
주거공간이 단순해야 어떤 광할한 정신공간을 줄길 수 있어요.
가구같은 것이 많으면
그 안에 들어박혀가지고 개운치가 않지않아요.
눈에 띠는 것이 많아가지고.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빈방에 있으면
전체적인 자기, 온전한 자기를 누릴 수가 있다고.
어떤 의미에서 출가 수행자를 가장 표현을 이렇게 할 수도 있을거야.
가장 욕심이 많을 것.
보통 것 가지고는 성에 차지 않으니까
아무것도 같지 않음으로써 다 차지하려는 것이지.
무엇인가를 가지게 되면 거기에 붙잡힌다고.
말하자면 가짐을 당하는 것이지.
그런데 가진 것이 적으면 그만큼 홀가분해요.
매인데가 없으니까. 텅빈 상태에서 충만감을 느끼는 거에요."
-비가 그친 암자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차는 홀로 마실 때 가장 신비롭다.
차를 아는 친구랑 마시면 즐거워요.
그대신 차 모르는 사람하고 마시면 영 차맛없다고.
뭐든지 차 뿐 아니고. 술도 그럴거고.
노동의 7환시가 있잖아요.
한 잔을 마시니 목구멍과 입술이 축축해지고,
두 잔을 마시니 외롭고 울적함이 사라지면
석 잔을 마시니 가슴이 열려 5천권은 문자로 그득하고,
넉 잔을 마시니 가벼운 땀이 나서 평소 불평스럽던 일이 죄다 땀구멍을 흩어지네.
다섯 잔을 마시니 살과 뼈 맑아지고,
여섯 잔을 마시니 신선과 통하게 되네.
일곱 잔을 마시려고하니 양겨드랑이에서 맑은 바람이 솔솔 일어나는 듯 하는구나.
봉래산이 어디멘고.
나 옥천장 이 맑은 바람 타고 훨훨 그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노라.
이런 시가 있어요.
내가 좋아하니까 가끔 읊는데."
-차를 아는 사람과 함께 나누는 차 한 잔은 그것만으로도 기쁨이다.
"내가 차마시고 차 찌꺼기를 여기다 늘 묻어주고 했더니 아주 건강해.
(이거 아직 앉아도 안 무너집니까?)
괜찮아요.
내가 와서 저기 부엌 바닥에 최초로 만든 의자라.
최초로 만든 의자인데, 처음에는 이것 장작으로 했었어요.
지압은 되는데 아프더라고.
이것만 갈았어. 오래돼 가지고 이제 덜렁덜렁하네.”
-스님은 승려가 되지 않았으면 목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의자는 간소하고 간소하게 살고싶은 스님을 보여준다.
그리고 스님이 떠나면 그의 빈 자리를 지킨다.
“여기서 한 20년 지나고 보니까.
복잡해지고 또 번거로워지고 내 자신도 처음 들어왔을 때와 달리 신선한 맛이 없더라고
그래서 그냥 강원도 쪽으로 간거에요.
우선 거기있는데 나보고 언제까지 거기 있겠냐고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언제까지 기약이 있는 것이 아니거든.
있을 때까지 있는거고.
인연 따라서 거기가 무료하고 단순하고 신선감이 없으면 또 다른데로 가는거지.”
-언제나 깨어있고자 했던 스님은 나그네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어느 화전민촌에 빈 오두막을 빌려 은둔했다.
-아무도 그곳이 어디인지 모른다.
-오로지 나그네로 남기를 원하는 뜻이다.
“강원도 거기는 마을에서 거의 2㎞ 떨어져 있다고.
억지로라도 전기 끌어들이려면 할 수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고,
살아보니까 전기 없으면 좋은 점이 있더라고.
불필요한 가전제품, 물건 같은 것, 전기가 들어 온다고 가정해보아요.
텔레비, 냉장고, 빵굽는 기계, 무슨 잔뜩 들어올 것 아니오?
산중에 사는 맛이 없지.
그렇게 살라고 고집을 내는게 아니고,
주어진 여건을 그대로 수용하는거지. 만약 전기가 들어오면 받아들이는거고.
그전 같으면 내 필요한 것 억지로라도 끌어들이려고 했는데
지금은 주어진 여건을 받아들이며 사니까 훨씬 마음 편해요.”
-스님의 거친 손이 혼자 사는 삶의 고단함을 말해준다.
-그러나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홀로 있는 시간-.
-비로소 마음의 문이 열린다.
내가 외떨어져 살기를 좋아하는 것은
사람들을 피하기 위새서가 아니라
내 자신의 리듬에 맞추어 내 길을 가기 위해서다.
홀로 있어도 의연한 이런 나무들이
내 삶을 곁에서 지켜보고 거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에서)
"가끔 그런 질문을 받아요.
스님이 혼자 사는데 도대체 세상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런 소리를 듣고 스스로 많이 반성해요.
그렇겠구나.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세상에 어떤 의미가 있지.
가끔 나를 만난 사람들이 내 이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기뻐한다고 즐거워한다고.
그것을 볼 때 이런 식으로 살아도 세상에 큰 폐는 되지 않겠구나.
뭐 이런 생각을 해서 스스로 만족을 하지는 안지마는 우선 이런 식으로 살고 있고.
또 내가 세상을 모른체 하지 않고 내가 자연에서 얻어들은 삶의 교훈이라든가,
자연의 신비라든가 아름다움을 기회 있을 때마다 말로 글로 전하고 있는 것을 밥값의 일부를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요정이 절로 바뀌었다하여 유명한 길상사.
-두달에 한번 법정 스님은 산에서 내려와 길상사에서 법문을 한다.
이곳에서 스님은 일반 사람들과 만나고
맑고 향기롭게’라는 시민 모임에 참여한다.
4년전 이 자리에서 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 절과 교회가 거대하고 호사스럽게 치장하고 흥청거리는 것이
마치 이 시대의 유행처럼되고 있는 현실에서
길상사는 가난하면서도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었으면 하고 원했습니다.
-길상사와 ‘맑고 향기롭게’ 일은 허례와 허식,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는 스님의 유일한 사회활동이다.
-드러내지 않고 소외된 이웃과 함께, 자연과 함께 하며
향기를 주위에 전하는 삶이 ‘맑고 향기롭게’의 뜻이다.
- 요정 대원각의 소유주이던 김영한 할머니는
스님의 뜻을 따르고자 기부를 요청했고,
10년여의 거절 끝에 스님은 할머니의 뜻을 받아들였다.
-요정이 사찰로 바뀐 첫날,
-김수환 추기경이 길상사를 찾았다.
길상사의 개원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평소에 마음으로부터 존경해마지않던 법정스님께서 회주이신 길상사가
도심에서 멀지않은 곳에 이렇게 새들이 노래와 물소리 수려한 경관 속에
조용히 자리하게 되어 참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열흘 뒤에 스님은 화답으로 명동성당에서 강연을 하셨고
두분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다.
이 성당이 축성된지 올해가 100돌되는 해에
저와같은 사람을 이 자리에 서게해주신 천주님의 뜻에 대해서 거듭 감사드립니다.
"종교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종교의 본질에 접근하는 거예요.
종교로부터 자유롭지 않고 지말에 표현에 걸리는 거죠.
마하트마 간디가 한 비유인데 히말라야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가지라는 거예요.
동서남북으로 뻗은 길,
정상에 이르면 하난데 길은각각 다른데 이 길만이 가장 옳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아니라는거다."
-12월초, 조용한 길상사 앞에서 작은 소란이 벌어진다.
매년 이 즈음이 되면 교회보다, 성당보다 먼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한한다.
-술을 마시고 고기를 굽던 요정은 맑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그 모습을 바꾸었다.
-그 인연이 씨앗이 되어 이곳에는 지금도
종교를 벽을 넘는 새로운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길상사 한켠에 조용히 서있는 관음 보살상.
-사람들은 이 보살상이 마리아의 얼굴을 닮았다고 말한다.
-본래 마리아상을 주로 조각하던 작가의 작품이었고,
법정스님의 뜻이 합해졌다.
관음보살상은 그렇게 신비한 미소로 바라보는 이를 머물게 한다.
"어떤 종파의 종교라도 좋은 점을 내가 받아들인다면
내가 믿고 행하고 있는 종교 자체가 아주 건전하게 될 거에요.
개체로부터 시작해서 전체에 도달할 수 있어야 그것이 종교지,
개체에 머물러 있다면 온전한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삶에 하나의 커다란 원동력이 되어서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에게도 따뜻한 온정이 두루 나누어져야 합니다.
개인으로부터 시작해서 세상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은
사랑의 실현이에요.
이웃에 대한 보살핌.
이웃에 대한 보살핌은 자선이 아닙니다.
보시가 아니에요.
자기 확대에요.
몸무게 얼마짜리 어떤 목소리 어떤 눈빛깔 어떤 성미를 지닌 개체가
이웃에 대한 보살핌을 통해서 무한하게 확대되어 가는 것이지요."
-지난 2002년 10월,
미국 뉴욕에 있는 불광선원에서 법정스님의 법회가 있었다.
-좀처럼 외부 법회를 하지 않는 법정스님이고 보면
이번 법회는 이레적이다.
-형식적인 자리에 얼굴 보이는 것과 일 벌이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천막 속에서 불상도 없이 이루어지는 작은 법회였지만
-많은 사람이 모여 법문을 들었다.
저의 이름은 법정스님입니다. 법정 큰 스님이 아니에요. 분명히 알아두십시오.
-스님이 미국까지 와서 법회를 한 이유는 달리 있었다.
-테러와의 전쟁 중인 미국 사회를 바로 보기 위함이었다.
-법회가 끝나고 스님은 곧바로 ‘그라운드 제로’를 찾았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이곳에는
아직도 그날의 상처가 생생히 남아있다.
참혹했던 당시의 증오가 지금까지 이어져 전쟁이라는
또다른 증오를 부르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이는 이로써는 안되잖아요.
그렇게되면 간디의 말처럼 다 눈멀게 된다는 거예요.
증오의 눈으로 대하면 다 눈멀기 때문에
다른 차원에서 끌어안는 차원에서 변화가 있지 않고는 해결이 안된다는 거예요.
이라크 몇 번 두들겨 패고 초토화시킨다하더라도
그런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지구상에서 테러는 사라지지 않아요.
어떤 집단에 의해서든."
-스님은 그라운드 제로를 지나 19세기의 한 평화주의자,
자연주의자가 살았던 곳으로 향했다.
-월든은 둘레가 1킬로미터 정도에 불과한 조그만 호수다.
그러나 스님이 이곳에 갖는 애착은 특별했다.
-150년전 ‘월든’이라는 책을 쓴 작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
가 살았던 오두막 터이기 때문이다.
나는 삶의 본질과 대면해 내뜻대로 살기위해
숲으로 왔다.
만약 숲이 가르쳐준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내삶이 헛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소로우)
-소로우는 이 숲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
이곳에서 움튼 소로우의 사상은 스님의 삶과 맞닿아 있다.
2년 2개월밖에 안살았어.
(2년 2개월이 길면 길지만 한생애에서 보면 짧은데요)
"한 생애에서 보면 그리 긴 기간은 아닌데
2년 2개월 산 기간이 소로우의 생애에서 가장 아름답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여기 들어올 때는 학생으로 들어왔다가 스승이 되어서 나갔어요.
(누가 스승이 되게 했나?) 자연이 가르쳤지. 자연."
-숲에서 자급자족하며 홀로 살았던 소로우-.
-생전에 그는 자신이 쓴 글로 그 어떤 명성도 얻지 못했다.
-그러나 호숫가에 오두막을 지어 간소한 삶을 살았고
그 경험을 기록한 책『월든』은 19세기 출판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약초를 가꾸듯 가난을 가꾸어라.
헌옷은 뒤집어서 다시 짓고 옛 친구에게 돌아가라.
사물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우리들이다.
(월든 중에서)
"여기 와서 소로우의 사상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간소하게 살라는거에요.
간소하고 간소하게.
한 두가지로써 만족하라는거지 백 가지나 천가지 늘어놓지 말라는거에요.
간소하면 간소할수록 우주의 원리를 더 투철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거에요.
그때는 가난은 가난이 아니고
외로움은 외로움이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있어요.
한마디로 소로우의 사상은 간소하고 간소라는거.
너무 많은 것을 지니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훌륭한 메시지에요."
- 이곳에서 아이들은 소로우가 말했던 인간과 자연,
자유와 평화의 메시지를 듣는다.
- 그러나 소로우가 숲을 떠난 지금 그의 말과 삶은
공허한 메아리였을까?
- 전쟁 중인 미국 한가운데서 스님은 그 답이 궁금했다.
"톨스토이 글에 보면 이런 글이 나와요.
당신네 미국 사람들은 소로우 같은 사람의 말을 듣지않고 정치가나 군인의 말만 듣느냐.
톨스토이의 말은 현재에도 유효하다고.
소로우 같은 사람들의 말과 사상에 귀를 기울인다면
저렇게 침략전쟁이라든가 이런 것을 감히 생각하지 않을 거에요.
그런 점에서 톨스토이 말이 아주 의미심장하다고."
- 스님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간디와 소로우를 꼽는다.
- 월든 호수 앞에서 스님은 그들과 함께 서 있었다.
무심히 귀를 기울이라
-8월말, 여름 정진인 하안거가 끝나고
스님은 다시 불일암을 찾았다.
(산에 들어서면 스님의 걸음은 더 빨라진다.)
(그래서 스님들 보고 축지법 쓰신다고 하나봐요. 걸음이 빠르세요.?)
산에 사는 사람하고 마을에 사는 사람하고는 걷는 것이 달라요.
천천히 다니면 더 피곤하다고.
자기 리듬을 타면 안 피곤해.
-이맘때 암자의 주인은 하늘과 바람, 그리고 새들이다.
-물과 한 줌의 빵부스러기-.
스님이 만든 헌식대에 조촐한 밥상이 차려졌다.
헌식은 산 속에서 살아온 스님의 오랜 습관이다.
산에는 맑은 이웃이 있습니다.
무심한 나무들이 있고,
다람쥐와 꿩 과 토끼와 노루같은
선한 이웃들이
나를 정결하게 만들어줍니다.(서있는 사람들 중에서)
"좋은 말씀으로부터 해방되라는 거에요.
이런데 오면은 모든 것으로부터 놓여나서 홀가분하게 자연의 품에 안기라는 거에요.
입다물고 바람 소리 귀를 기우리고 하늘도 보고,
또 나무도 바라보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렇게 한순간 있다가 가는 것이
좋은 말씀 듣는 것보다 몇곱 이로우니까 그렇게 하라고 하거든,
그것은 내가 겸허해서 하는 소리도 아니고 사실이에요.
너무나 우리는 자연과 격리돼 살기 때문에 자연 속에 오면
그동안 잃어버리고 잊어버렸던 자연을 마음껏 되찾고 누리고 가라는거지.
이런데 오면 사람말이 시시해진다니까.
그냥 대숲을 바라보거나 하늘을 바라보거나 맑은 바람소리만 들어도
사람이 맑아지고 깨끗해지고 차분해지잖아요.
그게 필요해요.
텅비우라는 거예요.
이런 데까지 와서 뭘 채우려고 하지 말라는 거에요."
-땅을 파서 만든 작은 연못에 하얀 연꽃이 피었다.
-지난해 옮겨 심은 백련이 드디어 꽃을 피운 것이다.
-탐스럽게 핀 연꽃 한송이-.
-자연에 어울려 살기 때문에 누리는 소박한 즐거움이다.
- 하늘과 산, 자연 속에는 사람들이 놓치고 사는 것들이 숨어있다.
"우리가 이제 세끼 밥먹고 일하고,
여러 가지 일중에 달을 본다든가 별을 본다든가 이것도 살아가는 일가운데 중요한 몫이라니까.
현대인들이 그걸 놓치고 있다니까.
그러니까 자꾸 삭막해지지.
그런 자연을 접하면서 삶의 리듬을 지닐수 있다고.
도시에서는 그게 안된다고.
머리만 빠르지 산만하다고.
바람소리를 듣는다든가 시냇물 흐르는걸 본다든가,
이게 중요한 일과예요.
참선이나 독경 못지않다.
그걸 통해서 자기 나름의 시들지않는 뜰을 가꾸는 거예요."
어떤 때는 이 조계산 상봉 이쪽에서 공이 굴러넘어 오는 것처럼 뜰 때가 있어요.
오늘 저녁 달이 좋겠어. 달 보러 갑시다.
-스님은 작은 차나무 한 그루를 보여주었다.
차나무에 새순이 돋은 것이다.
-스님은 말씀 중에나 움직이는 중에도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의 작은 움직임을 알아 보았다.
물소리 바람소리에 귀 기울여보라
소리없는 소리로 깨우쳐줄 것이다.
- 물소리 바람소리 중
-여름밤, 앞산으로 떠오른 달은
어느새 불일암 마당으로 굴러 들어온다.
-이 시간, 마당에서는 달맞이 꽃이 한창이다.
꽃이 피고 지기 또 한 해,
평생에 몇 번이나 둥근 달을 볼까.
밤하늘에 떠있는 달을 무심히 지나치고 싶지 않다.
- 버리고 떠나기 중
-찬바람이 불면 불일암에는 장작 패는 소리가
공기를 가른다.
산중에서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다.
-가을바람 소리에 수행도 깊어진다.
-참선에 들어간 상좌스님을 대신해
정갈한 다기가 산사를 지키고 있다.
올겨울 들어 처음으로 푸짐한 눈. 적설 20센티미터.
산은 적적하고 왕래가 끊어지다.
군불 지피고 밥해먹고 눈 치우고 방안에 들어앉아
없는 듯이 살아갈 것.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에서>
-겨울, 불일암도 눈에 갇혔다.
-정진 중이던 상좌스님이 헌식대에 물을 놓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이 순간 어느 것이 자연이고 인간인지 알 수 없다.
-새들이 가고 암자는 소리없이 적막하다.
-새들이 깨어나는 시간
-스님의 하루는 예불로 시작된다.
누구의 간섭도 허락하지 않는 경건한 시간.
-새벽 예불은 혼자 살면서도 흐트리지 않는
스님의 엄격한 질서다.
입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생각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
(법구경 중에서)
"내 화두는 ‘나는 누구인가’(웃고)
근본적인 명제고 물음이라고.
이것을 이 무엇인가.
육조스님 때부터 그러는데, 요샛말로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사전에서 해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어디에 있는것도 아니고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물음이예요.
근본적인 물음이지,
그것을 통해서 자기를 꽃피우는 거예요.
그런 근본적인 물음을 가지고 있어야해요. 저마다.
수행자가 아니더래도.
그렇게 되면 아무리 복잡한 세상, 어지러운 세상을 살더라도 중심이 잡혀요.
흔들리지 않고.
근원적인 사유의 명제가 있기 때문에.
(해답?) 물론 해답은 깨달음을 통해서 하루아침에 갑자기 해답이 나올 수도 있지만
순간순간 궤변같지만 순간순간 그 물음을 통해서 그렇게 살고 있는거예요.
나는 누구인가 라고 할 때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그것도 동시에 연관된다고.
그래서 함부로 살수 없는 거예요.
그리고 순간순간의 삶이 자기를 형성하고 자기를 펼쳐 보이는 일이기 때문에"
-예불이 끝나고 암자에는 평범한 일상이 돌아온다.
-손수 밥을 짓듯 빨래는 매일 해야 하는 일과다.
문을 열면 먼산이 방안으로 들어오는 산사.
모든 것이 적막하다.
- 스님이 그나마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이 책이다.
책을 아끼고 즐겨하지만 동시에 (책에서 자유롭고자 한다.)
책 버리는 일을 수 없이 되풀이 하며 간소한 삶의 질서를 지킨다.
"삶의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닐 거에요.
우리같은 사람은 어떻게 하면 보다 단순하게 간소하게 살 것인가.
이게 제일 과제라고.
왜냐하면 모든 것이 다 넘치기 때문에 넘치는 것을 다 받아들이다 보면
자기가 다 산산이 해체가 되고 말아요.
물건의 노예가 되고 만다니까.
조직의 노예가 되고 말고,
관계의 노예가 되고 말고.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보다 단순하게 간소하게 살 것인가 이것이 내 뜻인데.
이것은 본질적인 삶일 거에요.
물론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 속에 살면서도
자기 중심이 없다면 스스로 다 해체되고 말거에요.
보다 간소하게 단순하게 살고자하는 알맹이 때문에
이 복잡하고 어수선한 살벌한 세상을 살면서도 크게 요동하지 않고 그럴 거에요.”
-스님이 상좌스님과 찻물을 다리고 있다.
“어떤 카톨릭 수도원에서는 한 달에 두 차례씩 사물을 스스로 공개하는 규칙이 있다네.
그러니까 그 말이 무슨 소리냐 하면 남한테 내놓기 전에 스스로 알아서 가질 것만 가지라는 것이지.
(출세간에서는 갖지 않는 것이 부자거든. 많이 가질수록 가난한 것이고.
그런 도리를 알아야하는데. 그래야 자유롭지,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누구 주려면 살아있을 때 줘야되요.
물건이라는게 그래.
물건을 가졌던 주인이 죽게되면 그 물건도 같이 죽더라고 빛을 잃어.
누가 죽은 스님들 물건 가지라면 섬뜩해서 안가진다고.
살아있을 때 주면 모두 갖는데
물건도 그 사람이 죽으면 같이 따라 죽기 때문에.
주고싶으면 살아있을 때 줘야돼.”
단순하고 더 소박하게
적게 가질수록 더 사랑할 수 있다.
그것마저도 다 버리고 갈 우리 아닌가
-버리고 떠나기 중
"수행자를 일명 운수라고 하는데 구름과 물은 한군데 고여있지 않다.
늘 움직이는거에요.
깨어있으라는거지.
운수행각이다 운수납자라고 하는데 구름과 물처럼 늘 살아서 움직이는거에요.
한군데 고여있으면 물이 아니고 구름이 아니다.
썩어요.
구름과 물처럼 살아 움직이는거라는 거에요.
그것은 수행자뿐 아닐걸.
일상사람들도 똑같은 되풀이지만 뭔가 새롭게 뭘 시작하거 나 시작해야 되고
일상 속에서도 뭔가 신선미가 있어야 된다니까.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시들해요. 찌들고.”
- 깊은 산속의 암자에는 어둠이 일찍 찾아온다.
- 새와 풀벌레 소리도 잦아들면 산사는 밤을 준비한다.
- 등잔에 불을 밝히고 책상에 홀로 앉으면
텅빈 방에 두꺼운 침묵이 내려 앉는다.
꽃은 날마다 새롭게 피어난다.
겉모습은 어제의 그 꽃같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어제의 것이 아니다.
새로운 빛깔과 향기로 그날을 활짝 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안락한 삶이 아니라 충만한 삶이다.
(버리고 떠나기 중에서)
"처음에는 한밤중에 일어나면 밤이 두려웠다구요.
기침이 나오니까
그런데 요즘에는 오히려 그걸 즐기고 있는 것같은 내가 스스로 ‘밤의 고요를 즐기고 있구나.
기침이 아니었더라면 한밤중에 자다가 깨어나서 이런 시간을 누리지 못할텐데
기침 때문에 일어나서 맑고 투명한 시간을 갖는구나’ 해서
때로는 기침한테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기침이 아니면 누가 나를 깨워줄 것인가해서.
그러니까 나이 들어가는 탓인가봐요.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돼요.
거부하지 않고.
그전 같으면 거부하고 짜증내고 했는데 있는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또 그러다보면 언젠가 나에게 올 죽음까지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겠구나 이런 생각이 나요."
다음 생에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앞뒤가 훤칠하게 트인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자
원을 세웠다.
그 원이 이루어지도록 오늘을 알차게 살아야 겠다.
- 버리고 떠나기 중(?)
"쌍둥이라고 하더라도 특성이 있다고.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그러니까 각자의 그런 모습으로써 이 세상에 초대받은 나그네들이에요.
각자 삶의 몫이 있지 않아요.
누구도 닮아서는 안됩니다.
이 정보화 산업사회에서는 모두 닮으려한다고.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에서 살기 때문에
가구도 비슷비슷하고 음식도 비슷비슷하고
출퇴근 시간이며 또 여러 가지 똑같은 프로를 보고
거의 사람이 자기 특성 자기 빛깔을 잃고 닮아간다고
. 그런데 그 흐름에 그대로 편승해서는 안돼요.
닮아 가면서도 깨어있어야돼요.
깨어있으면서 자기 빛깔과 자기 향기와 자기 나름에 특성을
세상에 펼쳐 보일 때 세상에 나온 보람이 있는 거라고.
전체적인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거에요.
그렇지 않으면 사계절이 없는 세태처럼 삭막할 거에요.
저마다 자기 몫을 이것이 개인의 삶에도 플러스가 되고
사회적으로도 건강한 조화의 한 몫을 할 수 있는 삶이 된다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살더라도
그것은 값있는 인생이 될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그 어떤 사람도 되고 싶지 않다.
그저 나 자신이고 싶다.
바람이 있다면, 어제보다 오늘을 더 단순하게 소박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중에서)
-스님은 다시 산을 떠난다.
우리는 스님이 가는 곳이 어디인지 묻지 않았다.
대신 스님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
그대는 지금 어디있는가?
말을 듣고 있는 그대는 어디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