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후원하기 나의후원

세상

    • 08-07-12

    (내딸을 백원에 팝니다) 함께 나누고 싶어 옮겨왔습니다 -여래화

본문

내딸을 백원에 팝니다.


장 진 성.


그는 초췌했다.

-내딸을 백원에 팝니다.

그 종이를 목에 건 채

어린 딸 옆에 세운 채

시장에 서 있던 그 여인은



그는 벙어리였다.

팔리는 딸애와

팔고 있는 모성을 보며

사람들이 던지는 저주에도

땅바닥만 내려보던 그여인은



그는 눈물도 없었다

제 엄마가 죽을 병에 걸렸다고

고함치며 울음 터치며

딸 애가 치마폭에 안길 때도

입술만 파르르 떨고 있던 그 여인은



그는 감사할 줄도 몰랐다.

당신 딸이 아니라

모성애를 산다며

한 군인이 백원을 쥐어주자

그 돈을 들고 어디론가 뛰어가던 그 여인은

그는 어머니였다.

딸을 판 백원으로

밀가루빵을 사 들고 어둥지둥 달려와

이별하는 딸애의 입술에 넣어주며

용서해라! 통곡하던 그 여인은



장진성(36)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나의 작가"라고 칭송되었던 시인으로 2004년 북한을 탈출,최근 한국에서 시집을 펴냈습니다.

이 시는 그가 북한의 어느 시장에서 목격한 실화를 바탕으로 쓴 작품으로 굶주림을 못 견뎌 결국 딸을 100원에 판 사연입니다.

그 100원으로 밀가루 빵을 사서 팔려가는 딸의 손에 주어주며 "미안하다"를 되뇌던 어머니를 보며 그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고 합니다.


오늘 JTS 소식지가 우편함에 배달되어 있는것을 출근길에 가지고 나왔습니다.

고유가라며 온나라가 아우성임에도 불구하고, 냉방장치가 잘 되어있어 시원하기 그지없는 지하철안에서 첫장을 펴보았을때 한눈에 들어온 시의 제목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한번을 읽고,두번을 읽고 세번을 읽었습니다.

그건 비극이었습니다.

어찌 이럴 수가 ...란 한탄이 나오기도 전에 눈물부터 나왔습니다.

머리로 이해하기전에 가슴이 먼저 알았다는 듯이... 안타까움에 가슴이먹먹해져 한동안 다른곳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더랬습니다.

이것은 먼 나라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단 두세시간만 달려가도 만날 수 있는 같은 피를 나눈 우리민족이 겪고 있는 생생한 현실이라는게 용납되질 않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념이니,정치니 하는 하찮은 논리는 가당치 않습니다.

다만 이것은 사람의 일입니다.

있어서는 안되는 현실의 일입니다.

배가 고파 생사가 걸린 사람들에게,그리고...

정치가 무언지도 모르고 굶주려 죽어가고 단돈 백원에 팔려가는 아이들에게

정치와 이념의 잣대로 분별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를 포기한 것입니다.



소식지를 꼼꼼히 읽다보니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습니다.

적게는 동전을 모은 저금통의 몇천원서부터 개인이 내기엔 엄청난 액수인 몇천만원까지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으신 많은 분들이 정성을 모아주심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의 조용하고도 조건없는 보시는 그 어떤 선지식의 법문보다 훌륭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회합니다.

진심으로 참회합니다.

그들에 비해 넘치게 가져도 만족할 줄 모르고 탐욕을 부리고 불평하는 제모습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습니다.

단 한끼의 식사도 할 수 없는 고통속에서 죽어가는 이들을 돌아볼 줄 모르고 제 욕심만 채우고자 동분서주했던 제 자신을 가슴깊이 뉘우칩니다.

미약한 혼자의 힘으로 애써봤자 뭐가 달라지겠어?라는 핑계거리를 변명삼아 그들의 현실을 외면했던 제 자신의 나약한 포기심과 무관심을 참회합니다.



요즘의 우리는...

물가가 오르고 금리가 오르고 주식이 떨어지고 국제정세가 심상치 않고 정부가 무능해서 살기 어렵다고 마음의 각을 세워 뽀쪽합니다.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입니다.

한민족,두나라로 나뉜 지금의 우리는 먹거리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남쪽에선 '안전한 먹거리'에 관한 것으로, 북쪽에선 '절대부족의 먹거리 확보'문제로 말입니다.

한쪽은 선택의 문제이고 다른 한쪽은 생존의 문제라는것을 상기한다면 어느쪽이 더 시급을 다투는것인지는 잘 아실겁니다.

이것은 어떤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의 문제가 아닌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말입니다.

우리는 어쨌던간에 밥은 먹고 살고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굶어죽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삼시세끼 밥을 먹고 아프면 치료받아야 살 수 있는 많은 어려운 이들이 이 시간에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 기막힌 현실을 남의 일이고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고 외면하고 내 주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음을 위안삼아 남의 집 불구경하듯 그냥 넘기시겠습니까?


(해뜨는 정원님 께서 쓰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