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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 08-06-19

    새터민의 애원 “남한이 식량지원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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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민의 애원 “남한이 식량지원 해주세요”

20여명 기자회견 “20만톤 긴급지원” 눈물 호소

“수많은 아사자 생긴 뒤에야 실상 겨우 드러날 것”

한겨레 이제훈 기자 신소영 기자


» 신동혁씨를 비롯한 새터민들이 16일 오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재단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대북 식량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신씨를 제외한 다른 새터민들은 신변 보호 차원에서 얼굴을 모자이크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우리 북한 주민들은 정치나 핵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습니다…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식량난의 실상이 어느 정도 공개되기까지 기다리려면 이미 많은 아이와 어른들이 굶어 죽고 난 다음일 것입니다. …제발 굶어 죽어가는 북한의 주민들을 외면하지 마시고, 그들에게 남한이라는 사회가 희망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지금이라도 어서 20만 톤의 식량을 북한에 조건 없이 뱃길이든 육로든 열차길이든 어디로든 시급히 전달해주기를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새터민 신동혁씨는 16일 목울대의 떨림을 억누르며 ‘이명박 대통령님께 간절하게 호소합니다’라는 대북 식량지원 호소문을 읽어 내려갔다. 그는 1982년 12월 평안남도 개천시 외동리 보위부 14호 수용소에서 ‘정치범 죄수’의 자식으로 태어나 20년 넘게 그곳에서 자랐다. 2005년 1월 수용소를 탈출해 이듬해 8월 한국으로 왔다. 그는 북한 당국자들이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데도 자기들의 잇속만을 채운다”고 비난하면서 고향에 남겨두고 떠나온 동포들을 도와줄 것을 남녘 동포들에 호소했다.


신씨를 비롯한 새터민 20여명이 이날 오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공개 활동을 꺼리는 이들이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나선 건, 사단법인 좋은벗들이 주최한 ‘북한 주민 아사를 막기 위한 정부의 20만t 긴급 식량지원을 호소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북에서 30년 넘게 살다가 조국에 ‘배반’이라는 두 글자를 남겨두고 딸아이 살려보자고 탈북해 2004년 남쪽에 왔다”는 새터민 장미옥(가명)씨는 북녘에 두고온 가족 소식을 전했다. “아버지는 군당 고위 관리였는데 98년에 영양실조로 돌아가셨다…얼마 전에 북쪽에 있는 엄마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대학생 조카는 못 먹어 얼굴에 눈밖에 보이지 않고, 그렇게 좋아 보였던 언니는 우리 아이 몸무게도 안 되고…옛날 대통령들은 다만 얼마라도 지원해줘서 먹고살았다고 (북녘에 있는) 언니가 그랬다. 많은 지원을 바란다. 이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장씨는 눈물로 얼굴이 범벅이 됐고, 옆자리의 새터민은 물론 회견장의 청중들도 흐느꼈다.


함께 나온 새터민 김현숙(가명)씨의 호소도 간절했다. “남쪽에선 몸까기(다이어트) 하느라 밥을 먹지 않는 사람들이 많더라. 미얀마나 중국 이재민을 돕자는 전화번호는 있는데, 왜 북한 주민을 돕자는 전화번호는 없냐? 북한에선 지금도 굶어 죽고 있다. 이제는 한 사람도 죽지 않게 도와 달라. 조국 통일 안 되어도 좋으니 (북녘 가족들이) 죽지 않고 전화 통화라도 할 수 있게 도와 달라.”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기사등록 : 2008-06-16 오후 06:23:16  기사수정 : 2008-06-16 오후 07:2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