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매의 낙루 어젯밤 저녁밥을 먹고 아내와 동네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비 개인 끝이라 공기가 청아한 가운데 소나무의 솔내음이 잔잔히 코 끝에 서려 운치를 더 했습니다. 말간 하늘에 초승달이 단아한 모습으로 눈가에 웃음 담고 다가왔습니다. 초하루 지난 지 닷새나 되어 엊그제 출장길에 뒤따르던 초승달보다는 정갈함이 다소 덜하지만 다소곳이 여유로운 모습이, 쪽머리의 외씨버선 고이신고 백의단장한 관세음보살 같았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노라니 담장 밑에 흰 점들이 흩뿌리듯 떨어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어요. 가까이 내려다보니 떨어진 모습들이 꽃잎 같아 위를 올려다봤습니다. 그 담장 위에 다소곳이 정갈한 매화나무 한그루 서있더군요. “아하! 매화님이 비로 인해 낙루落淚 하신거로군” “선경이 따로 있지 않구나!”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오감이 열려 풍류를 맛보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새벽녘에 법정어른스님께서 권하신 <선비답게 산다는 것>을 읽었습니다. 그 책 128쪽에 나오는 시를 대하고 엊저녁 매화의 낙루落淚가 떠올라 잠시 책을 덮고 오감을 다시 열어 자연이 주는 경이를 맛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느낌이 전해질지 모르겠는데요. 눈을 지그시 감고 귀를 여세요. 그 시를 낭송해 볼게요. 가인佳人이 낙매곡落梅曲을 월하月下에 비껴부니 양진樑塵이 날리는 듯 남은 매화 다 지거다 내게도 천금준마千金駿馬 있으니 바꾸어볼까 하노라 이시를 쓴 이정보李鼎輔(1693~1766)는 영조 때 대제학을 지낸 사대부로 역사상 가장 많은 시조를 남긴 사람 가운데 한사람이랍니다. 그의 시조 작품 100여 수는 지금가지 남아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 이시는 음악을 감상하고 쓴 시조죠. 달빛아래 아름다운 여인이 낙매곡을 연주하자 들보의 먼지가 날리듯이 매화가 절로 떨어진다는 내용인데요. 정말 옛 어른들의 운치가 흠씬 느껴지는 그런 시이죠? 오늘. 운치 있는 하루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