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 모처럼 아내와 산책을 했습니다. 둘이서 호젓이 약주 한잔 걸치고 돌아오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어, 그렇지 않아도 몸이 으스스하다던 아내는 그만 감기가 들었나 봅니다. 오늘 아침 코를 심하게 훌쩍이며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마음이 아립니다. ‘2월 바람에 김칫독 깨진다.’더니 문뜩 샘터 3월호에서 읽은 바보 이반 농장주 최성현님의 바람이야기가 생각나 옮겨봅니다. 뉴질랜드의 원주민 마오리의 전설에 따르면, 최초의 어머니는 파파투아누쿠이고, 아버지는 랑기누랍니다. 그들은 서로 너무 사랑한 나머지 24시간 꽉 끌어안은 채로 살았다고 해요. 그 상태로 다섯 명의 사내아이들을 낳았구요. 바람의 신인 타히리마테아도 그 가운데 하나였답니다. 이 다섯 명의 자식들은 자라면서 부모 몸 사이에 갇혀 있는 것을 갑갑하게 느끼기 시작했데요. 그들에게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겠죠. 전설에 따르면, 부모를 떼놓으려는 형제와 현 상태를 유지하자는 형제간의 격렬한 싸움이 있었답니다. 특히 바람의 신인 타히리마테아는 부모를 떼어놓는 것에 강력히 반대했다더군요. 천둥과 번개와 벼락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지금도 타히리마테아가 그 일에 화가 나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바람의 신 타히리마테아가 때로 천둥과 번개를 치며 세상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부모가 그랬듯이 서로 부둥켜안고 하나가 되라 이르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바람 부는 날에는 그렇지 않은 날보다 무엇인가 따뜻한 것을, 함께 가까이 있을 사람을 바라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사랑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깊이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지구상의 온 존재는 24시간 떨어질 수도 떨어져서는 안 될 운명의 원래 한 존재였던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바람의 신 타히리마테아는 원래 하나였던 생명체들이니 갈라져 있더라도 한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줍니다. 온 생명체와 대지가 한 몸이 되게 하는 사랑의 메신저 바람의 신 타히리마테아가 호통을 칩니다. “너희가 뭔데, 고개를 쳐들고 오만하게 굴어!” “너희끼리는 물론, 우주의 온 존재와 소통하고 사랑해야지!” “그러니 고개를 숙이란 말이야!” 사랑하려면, 사랑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절에 가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하심下心’입니다. 이 말은 늘 겸손한 마음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법당이나 승방, 객실의 신발 벗는 자리에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주련을 볼 수 있는데요. 발아래를 비춰 자신의 자리를 잘 살피라는 뜻으로 ‘하심’과 통하는 말이지요. ‘조고照顧’는 관조고려觀照顧慮의 약자로 ‘조심하다’ ‘주의하다’는 뜻이고, ‘각하脚下’는 각근하脚跟下라고도 하는데 ‘발밑’이라는 뜻입니다. 신발 벋는 선돌에 자기 발뿌리를 내려다보라는 것이죠. 신발을 바르게 벗으라는 뜻도 되지만 더 깊은 의미는 자기가 서 있는 자리를 항상 살피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삶의 매 순간을 놓치지 말고 마음을 열어 사랑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데서 출발합니다. 스스로를 낮추지 않고서 사랑할 수 있는 도리가 없지요. 시 한 수 같이 읊어보죠. 샘물은 강물과 하나 되고 강물은 다시 바다와 섞인다 이 세상에 혼자인 것은 없다. 만물이 원래 신성하고 하나의 영혼 속에서 섞이는데 내가 왜 당신과 하나 되지 못할까 보라, 산이 높은 하늘과 입 맞추고 파도가 서로 껴안는 것을 햇빛은 대지를 끌어안고 달빛은 바다에 입을 맞춘다. 허나 이 모든 달콤함이 무슨 소용이리 그대가 내게 키스하지 않는다면 - ‘사랑의 철학’ 퍼시 B, 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