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모음

<상면 相面>
누군가를 아느냐고 할 때
“오 그 사람, 잘 알고말고. 나하곤 막역한 사이지.”
하면서 자기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듯 으스대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남을 이해한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다양하고 복잡한 심층(心層)을 지닌 인간을
어떻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법정스님께서 적연선사(寂然禪師)를 뵌 적은 없지만
남들이 전한 말만 듣고 그 스님이 머물던 암자에 가셨을 때입니다.
한 문도(門徒)가 간직하고 있던 줄이 다 해진 거문고와
손 때가 밴 퉁소를 보고 문득 선사의 걸걸한 음성과 서글서글한 눈매를
상면(相面)하게 되셨답니다.
그 전까지는 항상 누더기를 걸치고 생식을 하시며
하루 세시간밖에 안 자고 참선만 하셨다는 말에
물기없는 고목처럼 꼬장꼬장한 수도승,
인간적 탄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고집불통이었으리라고
오해를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날의 상면(相面)으로 인해 스님께서는 일면식도 없던 선사에게서
훈훈한 친화력 같은 걸 느끼게 되셨다고 합니다.

법정스님께서 입적하신지 15년
10월 19일 맑고 향기롭게 길상사에서는
학술세미나를 통해 법정스님을 상면(相面)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길상사 주지이시며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이신 덕조스님 말씀처럼
’무소유’라는 한 마디 말씀 속에 담긴
한 생(生)의 진실을 다시 새겨 보며
따뜻한 마음과 맑은 이성을 함께 지니신,
가장 인간적인 삶을 사셨던 스님을
상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가장 단순했기 때문에 가장 깊었고
가장 고요했기 때문에 멀리 울림이 있었던,
말보다 삶으로
가르침 보다 실천으로
향기와 울림이 되어 아직도 곁에 계시는 스님.
그 날의 상면(相面)으로 우리는 다시금
법정스님의 명직한 가르침과 마주 할 수 있었습니다.
도량에 깃드는 추색(秋色)조차 단아하지만 고요한 모습으로
스님을 맞이하는 듯
맑고 향기로운 날이었습니다.

<지혜와 자비는 둘이 아니다.
자비가 없는 지혜는 냉정하고
지혜가 없는 자비는 맹목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