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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 10-03-16

    ‘장례식 없는 다비식’ -현장스님 (중앙일보 3.13)-

본문

속가·불가의 조카 현장 스님의 편지 ‘장례식 없는 다비식’



11일 입적한 법정 스님을 가까이서 모셨던 현장(54) 스님이 법정 스님의 유언인 ‘장례식 없는 다비식’의 의미를 되새기는 편지를 중앙일보에 보내왔다. 현장 스님은 법정 스님의 속가(俗家)와 불가(佛家)의 조카다. 법정 스님이 수행했던 송광사 불일암에서 출가하며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았다. 현장 스님은 현재 전남 고성군 대원사 티베트박물관장으로 있다.


부처의 길을 따르는 사람은 두 가지를 버리고, 두 가지를 소유해야 한다고 합니다. 버려야 할 두 가지는 탐욕과 무지이며, 소유해야 할 두 가지는 무아와 무소유입니다. ‘나 없음’을 체험한 수행자는 청정과 청빈의 맑은 삶을 꽃피우고, ‘내 것 없음’을 깨달은 불제자는 나눔과 관용의 향기로운 삶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법정 스님의 생전 소원은 ‘보다 단순하고 보다 간단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사는 곳이 번거로워지면 ‘버리고 떠나기’를 통해 당신의 초심을 잃지 않았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통해 사후 장례절차까지 철저하게 당부하셨습니다.




법정 스님(오른쪽) 생존 시에 함께 자리했던 현장 스님. 현장 스님은 법정 스님의 속가 조카이자 절집 조카이다. [대원사 제공]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극히 싫어하셨던 스님은 묘하게도 폐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본의 아니게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치게 된 것을 무척 거북해하셨습니다. 담배도 안 피우고 심심산골 맑은 공기 속에 사는 스님이 왜 폐암에 걸리셨는지 많은 분이 궁금해합니다. 사실은 스님 나이 네 살 때 세속의 아버님이 폐질환으로 돌아가신 집안 내력이 있습니다.


스님의 병이 위중하단 소식이 언론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통해 안타까움을 표현했습니다. “스님, 법정 스님! 병만큼은 절대 무소유하십시오” 하는 팬들과 불자들의 바람을 뒤로한 채 스님은 ‘육신 무소유’의 세계로 건너가셨습니다. 한 사람의 임종 과정은 살아온 삶의 총 결산이라고 합니다.


병상의 스님께서는 병수발 드는 시자에게 말씀하셨지요.


“지금 내 소원이 뭔지 알아.”

“뭔데요.”

“사람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하루빨리 다비장 장작으로 올라가는 것이야!”


보다 단순하고 보다 간소한 삶을 추구하셨던 스님께서는 허례허식의 장례절차가 이뤄진다면 죽은 시신이라도 벌떡 일어나 그만두라고 소리칠 테니 내 뜻에 따르라고 거듭 당부하셨습니다.


입적 하루 전날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씀을 남겼습니다.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 드린다. 내가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하여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 일체의 번거로운 장례의식은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를 마련하지 말라. 화환과 부의금을 받지 말라. 삼일장 하지 말고 지체 없이 화장하라.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하고 사리를 찾지 말고 탑, 비도 세우지 말라” 당부하셨습니다.


저는 스님께서 불일암을 짓기 시작할 때 송광사에 출가하여 불일암 낙성식(1975년 9월 2일) 때 수계하여 불일암과 출가 나이가 같습니다. 스님은 불일암 부엌에 ‘먹이는 간단명료하게’라는 글을 붙여놓고 세 가지 이상 반찬을 놓지 못하게 하셨지요. 사람들은 갖기 위해 애쓰다가 갚기 위해 고통 받습니다. 욕심을 줄이고 단순하고 간소하게 평생을 살아온 스님. 무소유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를 살피는 일이라던 스님. 스님께서 저에게 써주셨던 한 구절 게송(偈頌)을 다시 스님 영전에 올립니다.


“산이건 물이건 그대로 두라

하필이면 서쪽에만 극락세계랴

흰구름 걷히면 청산인 것을”


천 개의 구름이 되어 이 강산을 지켜주시고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이 백성을 살펴주소서


스님 앞에 부끄러운 제자

현장 분향 삼배,



사진=조문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