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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 10-03-16

    아미타 세상서도 ‘빛’ 돼주시길 -소설가 한승원(경향신문 3.11)-

본문

[법정 스님 입적 추도사]아미타 세상서도 ‘빛’ 돼주시길


하루 전에 몰려왔다가 사라진 꽃샘추위로 말미암아 얼어 시들어지고 오그라들어버린 매화·동백꽃·산난초꽃·산수유꽃들을 둘러보며 안타까워하다가 스님의 열반 소식을 듣고,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거기에 시퍼런 허공이 있었습니다.


법정 스님, 철쭉나무·영산홍나무·살구나무·진달래나무 등 모든 푸나무들이 바야흐로 향기로운 봄꽃들을 화사하게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는 이때 어디로 떠나고 계십니까?


서재로 들어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스님의 열반 소식을 듣고 쳐다본 그 시퍼렇게 깊은 허공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스님께서 가시는 곳은 아마 그 허공일 터이지요. 우리들이 생겨난 그 시원인 허공 말입니다.


스님께서는 저에게 있어서 하나의 거대하고 그윽한 거울이었습니다. 헐거운 옷차림을 한 채 환혹에 취하여 비틀거리며 살아가는 저의 얼굴과 몸짓을 늘 비추어보고 저를 바로잡는 그윽한 거울 말입니다.


스님께서는 저를 비롯하여, 세상의 모든 풀같이 연약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따가운 햇살을 막아주는 꽃그늘 같은 막이었습니다. 군사독재가 세상을 흉흉하게 했을 때 스님께서 기고한 글들은 불안한 저를 늘 안도하게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군사독재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의 가슴에 생명의 존엄성을 심어주려고 애를 썼습니다. 책잡히지 않을 글들로써 하실 이야기들을 다 하셨습니다. 명동성당에 김수환 추기경이 계셨다면 산사에는 법정 스님이 계셨으므로 겁 많은 우리들은 움츠러든 가슴을 펴고 숨을 돌릴 수 있었고, 희망을 가지고 저항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의 무소유의 정신, 버리고 떠나기의 삶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탐욕으로 인해 앙당그러지고 방황하는 삶을 바로잡아주는 길라잡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누군가가 화분에 담겨 있는 값비싼 난을 선물하자 그것을 되돌려 주었다고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그 말은, 저의 정수리를 철퇴로 내려치는 듯했습니다. 종내 책임지지도 못할 인연을 함부로 맺고,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자기를 잃어버리는 삶을 살아온 저는 스님을 스승으로 여기고 저를 교정하며 살아왔습니다.


스님 생전에 저는 감히 스님을 직접 친견하려고 들지 않았는데, 그것은 스님께서 제 속에 들어와 계시는 비로자나부처님처럼 늘 저의 속에서 빛이 되곤 했기 때문입니다. 함부로 인연을 맺으려 하지 않는 스님의 고결한 순수를 외포(畏怖)스럽게 여긴 때문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종교와 종교 사이의 갈등대립의 벽을 넘어 다른 종교인들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고 화해하는 맑고 향기로운 삶을 내내 실천하셨습니다.


저는 지금 저를 그윽하게 비쳐주는 항성 같은 깨달음의 빛과, 늘 비쳐보면서 제 비뚤어진 삶을 바로잡곤 하던 거대한 거울을 잃어버렸으므로 슬픕니다. 지금 이 세상에는 저와 같은 슬픔 속에 빠진 사람이 한없이 많을 터입니다.


평생 무소유를 실천하던 스님은 이승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갔습니다. 그렇지만, “님은 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하고 노래한 만해 선생의 시 구절처럼 저는 스님을 보내드리지 않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아미타 세상에 가서도 이승의 고달픈 중생들을 위하여 그윽하고 향기로운 빛이 되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스님, 부디 열반 잘하시고, 극락에서 편히 쉬시옵소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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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 | 소설가

입력 : 2010-03-11 17:36:54ㅣ수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