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시론] 아름다운 마무리
기사등록일 [2010년 03월 16일 15:16 화요일]
무소유 정신을 실천하시며 바른 정진의 길을 보여주신 법정 스님께서 지난 11일 입적하셨다. 슬픔과 아쉬움이 너무도 크지만 스님의 책 제목처럼 ‘아름다운 마무리’로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감동을 남겨주신 삶의 교훈에 깊은 감사를 올린다. 스님의 법어를 다시 새겨보며 우리도 언젠가 이 생을 떠나는 그 날, 후회 없이 아름답게 마무리하게 되길 희망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일의 과정에서 길의 과정에서 잃어버린 초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불자라면 누구나 초발심 때를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생활과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얼마나 자주 그 마음을 잊어버리고 놓치고 살고 있는가.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자신의 마음을 바르고 아름답게 가꾸는 일을 게을리하곤 한다. 깨달음에의 발심과 열정, 정진의 의지로 가득한 동자같이 순수하고 밝은 그 마음을 다시 찾아야 한다.
“나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이다.” 출가 전 이미 모든 것을 갖추셨던 부처님은 어떠한 외적 조건으로도 결코 영원한 마음의 행복과 평화를 성취할 수 없음을 알려주셨다. 그 깨달음을 따라 자신의 영혼에 귀기울이고 내면의 부처님 마음을 찾아, 지혜와 자비를 일상의 삶에서 일치시키려는 노력이 진정 가치있는 것이다.
“너무 좋아할 것도 너무 싫어할 것도 없다. 사랑을 하되 집착이 없어야 하고, 미워하더라도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사랑이 오면 사랑을 하고, 미움이 오면 미워하되 머무는 바 없이 해야 한다. 인연 따라 마음을 일으키고, 인연 따라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집착만은 놓아야 한다.” 사성제를 머리로 알면서도 오늘 또 우리 마음은 어떤 허상에 얼마나 집착하며 괴로워하고 있는가. 무심, 무소유가 최상의 상태인 줄 알면서도 막상 비우고 버리기는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모른다.
“가슴은 존재의 핵심이고 중심이다. 가슴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 생명의 신비인 사람도, 다정한 눈빛도, 정겨운 음성도 가슴에서 싹이 튼다. 가슴은 이렇듯 생명의 중심이다.” 언제부턴가 자기 가슴의 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정직한 감정을 느끼기 어려워하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도 못한다. 무엇이 진실인지, 자연과 우주의 생명의 소리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사람들이 있다. 서로 믿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고, 그래서 주위에 사람은 많아도 여전히 외로워한다. 회식자리와 대화에 시간을 허비해 보지만 진정하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도반은 드문 것이다. 자기의 생생한 가슴의 소리를 찾아야 한다. 가슴 안에 자성부처님의 살아있는 미소가 있다. 사랑하는 의미, 삶의 에너지도 가슴 속에 들어있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꽃이 피어서 봄이 오는 것이다.” 자기 중심의 탐진치에 물든 중생심은 춥고 어두운 무명(無明)의 겨울과 같다. 언제 따스한 햇빛이 비출 것인가. 깨달음의 씨를 뿌리고 정진의 밭을 갈아 청정하고 자비심 가득한 자성의 꽃을 피우는 그 날이 바로 봄날이다.
스님은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고 가르쳐주셨다. 스님이 남겨주신 소중한 법어처럼, 우리도 세상의 가치에 굴복하지 않고 오로지 법(法)의 최상[頂]을 향해 정진할 수 있기를 기원 드린다. 세상의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부처님 마음의 꽃을 맑고 향기롭게 피워내어 일체 중생 마음 속에 환하고 밝은 봄, 불국정토를 이루고자 삼가 향을 사르며 엎드려 발원 올린다.
황수경 동국대학교 강사
1040호 [2010년 03월 16일 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