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고맙습니다”
가톨릭 춘천대교구장 장익 주교 본지 특별기고
유럽 수도원과 불일암 등 추억 새로워
샘물 같은 말씀들 마음에 더욱 새겨야
기사등록일 [2010년 03월 11일 19:25 목요일]
법정 큰스님과 선연(善緣)을 맺은 지는 어느 덧 한참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봉은사 다래헌에 계실 적부터였습니다. 자주 뵈옵지는 못했고, 또 뵈어도 서로 몇 마디 가벼운 담소만 나누었으면서도, 처음부터 마음이 통하는 그런 귀한 만남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청학 스님을 대동하고 로마로 찾아오시어, 파리와 서울에 길상사를 짓기에 앞서, 유럽 수도승의 뿌리를 탐방하시자기에 몇몇 유서 깊은 옛 수도원으로 모시고 다니는 행복도 누렸고, 93년 여름 참신한 '맑고 향기롭게' 운동을 펼치기 시작하시는 모습도 가까이에서 뵈오며 기뻐했습니다.
좀 더 친근하게는, 불일암에 묵으면서 툇마루에 호젓이 함께 앉아 저무는 날을 조용히 바라보던 때나, 남녘 어느 차밭에 자리를 깔고 햇찻잎에 쌈을 싸먹으며 흐뭇한 반나절을 지내던 추억도 새롭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에 갓 지은 법련사에서 종교와 삶에 관한 진심어린 대담을 나눈 보람된 일, 더 나아가 성북동 길상사를 세상에 여는 법요식에 김수환 추기경께서 친히 봉축사를 하신 종교간 미증유의 경사도 있었습니다. 이에 화답하여, 큰스님께서 명동 대성당을 가득 채운 천주교 신자들을 깊이 감동시킨 성당 초유의 법문을 하신 일 등은, 앞으로 종교인들이 마땅히 가야할 길을 내어준 참으로 뜻 깊은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어렵고 어지러운 시대를 사는 이들이 참다운 깨달음을 찾아 얻어 모두가 함께하는 맑고 향기로운 삶의 길에 눈뜨게 해 주시던 법정 큰스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것을 누구인들 애석해하지 않겠습니까. 이 시대의 스승이요 빛이시던 그 어른을 진정 기리는 마음에서, 우리 모두 큰스님의 샘물 같은 말씀을 마음에 더욱 새로이 새기며 하루하루를 참되이, 고맙게 살아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천주교 춘천교구 장익
법정 스님과 30여 년간 교우한 장익 주교는 제2공화국 수반이었던 장면 총리의 아들이자 고 김수환 추기경의 비서를 10년간 역임했다. 1994년 12월 춘천시 천주교 춘천교구장에 착좌한 뒤 15년 만인 3월 25일 춘천교구장에서 물러난다.
1040호 [2010년 03월 11일 1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