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의 유훈을 어찌할꼬
법정 스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지 어느덧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지난 달 28일, 송광사 법당 앞마당에서 모셔진 스님의 49재에는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만여 명의 추모객들이 스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눈물로 배웅했다. 스님께서 우리 곁을 완전히 떠나셨다는 게 아직은 실감나지 않아, 지금이라도 서울 성북동 길상사 행지실로 찾아가면 그 모습, 그 목소리, 만나 뵐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하는데, 그러나 이제 법정 스님은 이 세상 우리 곁에는 계시지 않는다.
스님께서는 평생토록 말씀과 글을 통해서, 삶을 통해서, 스스로 선택한 맑은 가난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당부하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비록 추하고 더러운 오탁악세일지라도 맑고 향기로운 연꽃처럼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무염(無染)의 삶’을 살라고 누누이 당부하셨지만 아직 어리석은 우리 중생들은 한번 돈에 눈이 뒤집히면 ‘오염(汚染)의 삶’에 빠져, 추한 모습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이제 우리는 스님의 그 그윽하신 눈빛, 그 다정한 목소리, 자비롭던 헤아림을 육신으로 다시 만날 수는 없다. 그러나 스님의 마지막 당부의 말씀만은 우리들의 가슴 속에 두고두고 살아남아 이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가꾸어가는 밑거름이 되어 주실 것이다.
스님께서는 지난 2008년 4월 20일 병마에 시달리는 노구(老軀)를 이끌고 길상사 봄 정기법회에 나오셔서 전에 없이 강경한 목소리로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계획을 신랄하게 힐난하셨다. 그리고 2008년 5월 ‘맑고 향기롭게’ 회지(會誌)에도 ‘한반도 대운하 안된다’는 제목으로 기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사업으로 은밀히 추진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계획은 이 땅의 무수한 생명체로 이루어진 생태계를 크게 위협하고 파괴하려는 끔찍한 재앙이다. 우리 국토는 오랜 역사 속에서 조상 대대로 이어 내려온 우리의 몸이고 살이고 뼈이다. 이 땅에 대운하를 만들겠다는 생각 자체가 우리 국토에 대한 무례이고 모독임을 알아야 한다. 물류와 관광을 위해서라고 하는데, 몇 푼어치 경제 논리에 의해 이 신성한 땅을 유린하려는 것은 대단히 무모하고 망령된 생각이다.”
그동안 법정 스님께서는 ‘맑고 향기롭게’를 이끄시면서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말씀을 삼가셨고 개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으셨다. 그러나 우리의 국토, 산을 깎아내리고 산에 구멍을 뚫고 강을 막고 강을 파 뒤집는 자연 훼손에 대해서만은 비장한 각오로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스님은 계속해서 힐난을 퍼부으셨다.
“강은, 살아있는 강은 굽이굽이마다 자연스럽게 흘러야 한다. 이런 강을 직선으로 만들고 깊은 웅덩이를 파서 물을 흐르지 못하도록 채워놓고 강변에 콘크리트 제방을 쌓아 놓으면 그 것은 살아있는 강이 아니다. 갈수록 빈번해지는 국지성 호우는 토막 난 각 수로의 범람을 일으켜 홍수 피해를 가중시킬 것이 뻔하다. (중략) 무모한 국책 사업이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면 커다란 재앙이 될 것이다. 이런 일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다면 우리는 이 정권과 함께 우리 국토에 대해서 씻을 수 없는 범죄자가 될 것이다. 이런 무모한 구상과 계획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우리가 사전에 나서서 막아야 한다. 이는 신성한 우리 의무이다. 이 문제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중대한 사안임을 길이길이 명심하기 바란다.”
그로부터 2년 후, 법정 스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셨고, 스님의 그 강경하고 비장한 목소리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한반도 대운하’는 ‘4대강 사업’으로 이름만 바꿔 무지막지한 삽질을 계속하고 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막아야한다”는 법정 스님의 이 유훈을 어찌할꼬!
윤청광 방송작가
1048호 [2010년 05월 10일 1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