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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 10-05-14

    법정스님과 에크하르트 -김재홍 (독서신문 5.11)

본문

법정스님과 에크하르트

가난은 부(富)보다 고귀하다

독서신문


법정스님은 입적 전날 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는 말을 남겼다. 무소유를 내세우신 법정스님은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법정스님은 조주선사가 말했다는 방하착(放下着)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다. 본래 방하착은 ‘손을 내려 아래에 둔다’는 뜻이다. 방(放)은 ‘놓는다’는 뜻이며, 착(着)은 ‘집착’을 의미한다. 이 말 속에는 이 세상의 것이 ‘본래 공(空)한 이치를 알지 못하고 온갖 것들에 걸려 <내 것>에 집착하는 마음’인 <착심>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집(我執)을 놓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부처님은 공양에 집착하는 마음까지도 다 내려놓으라는 의미로 그렇게 쓰셨다고 한다.


조주선사를 찾아 간 한 선사가 말하길,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을 때는 어찌합니까” 하니 조주 선사께서는 <방하착하라>고 말했다. 의아해서 되물으며 “이미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또 무엇을 내려놓으란 말입니까” 하자, 조주선사께서 “그래 내려놓으라니까”라고 말했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자 “그럼 내려놓지(방하)말고 다시 지고 가라”고 했다고 한다.


탐욕, 지나친 소유욕, 집착을 악(惡)으로 간주했던 법정스님은 이와 비슷한 말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함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조차 벗어나라.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일에 묶여있지 말라.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지나가라.”


독일의 13세기 신비주의 철학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7)는 “덕(德)의 최고의 단계는 가난”이라고 말했다. ‘가난이란 부인’(donna poverta)을 열심히 사랑했던 에크하르트에겐 <가난>이란 ‘버리고 떠나 있음(Abgeschiedenheit)’을 의미한다. 인간이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것이 바로 ‘버리고 떠나 있음’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이것은 조주선사가 말하는 ‘방하착의 정신’이고, 법정스님이 말하는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조차 벗어나라”는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말로 이해될 수 있겠다.


에크하르트는 말한다. 주께서 많은 일을 걱정하는 마르타에게 권고한 한 가지 필요한 것(henos estin chreia, 누가복음 10장 41절)이 바로 ‘버리고 떠나 있음’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 대단히 고귀한 것인데, 인간과 신을 하나로 이끌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크하르트의 설교 주제 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버리고 떠나 있음’은 ‘인간은 자기 자신과 모든 사물로부터 떠나서 자유로워져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게 그가 의미하는 가난 곧 정신적 가난이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덕의 최고 단계’인 것이다.


에크하르트가 말하는 가난은 내적인 가난이며 영적인 것에 바탕하는 가난이다. 그는 말한다. “어떤 것도 원하지 않고, 어떤 것도 알지 않고, 어떤 것도 갖지 않는 사람이 바로 가난한 사람이다.” 이기적 지배, 지적인 교만, 온갖 소유의 방식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있는 것, 이 세 가지를 우리에게 설교한다.


결국 에크하르트는 이 가난의 최고의 단계에서 신과 인간이 하나가 될 수 있다고 <가난의 설교>를 하고 있는 셈이다.


에크하르트의 이러한 설교 내용은 앞서 언급한 선가(禪家)의 화두 중에 방하착(放下着)이란 말을 떠올리게 만든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인데, 인간은 살면서 끝없이 재물을 붙잡으려 발버둥치고, 명예, 지위, 권력, 지식, 사랑을 붙잡으며 아둥바둥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보통 모습이다. 이런 집착된 삶 속에서 괴로움이 생겨나기 시작한다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돈이 되었든, 명예가 되었든, 사랑이 되었든 우리의 욕망을 다 채워주지는 못한다.


외형적인 것에 매달려 살면, 욕망은 점점 커져만 가기 마련이다. 욕망에 집착하는 한 자족의 상태인 ‘행복’에 이르지 못한다. 차라리 욕망을 비워야 한다. 그 집착하는 마음까지도 버리라는 것이 부처의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하고 실천하신 분이 법정스님이시다. 법정스님은 길상사 창건 법문에서 ‘가난한 절’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병들기 쉽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이루게 하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합니다.”(1997년 12월 14일 <길상사 창건 법문>)


/ 김재홍 관동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