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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 03-10-19

    파블로 카잘스

본문

지난 한 해 동안 읽은 몇권의 책 중에서 아직도 내 마음 속에


생생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나의 기쁨과 슬픔, 파블로 카잘스> 다.


앨버트 E.칸이 카잘스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를


그 나름의 생동감 넘치는 문장으로 엮어놓은 카잘스의 초상이다.


카잘스는 단순한 첼로 연주가만은 아니다.


작곡과 지휘도 함께 했지만, 93년의 그의 긴 생애를 통해


파시즘에 핍박받는 동족들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세계평화를 추구한 위대한 인류의 양심이었다.


오래 전에 로맹 롤랑이 쓴 <베토벤의 생애>를 읽을 때의 그런 감동이었다.



이화여대 부속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규호네 어머니가 지난 가을 이 책을 보내주었다.


그때 나는 일손이 바빠 '저자의 말'만 읽고 덮어두었다가 차분한 기회에 읽으려고 했는데


그만 빨려들어 잡은 참에 읽고 말았다.


좋은 책에는 그와 같은 빨아들이는 힘이 있는 모양이다.



"지난 생일로 나는 93세가 되었다.


물론 젊은 나이는 아니다.


그러나 나이는 상대적인 문제다.


일을 계속하면서 주위 세계의 아름다움에 빠져든다면,


사람들은 나이 라는 것이 반드시 늙어가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사물에 대해서 전보다 더욱 강렬하게 느끼며 나에게 있어서 인생은 점점 매혹적이 되고 있다."



그 책은 이런 말로 시작되어 있다.


나이는 상대적인 문제라고 했다.


옳은 말이다.


나이 들어 하는 일 없이 골방이나 양로원에 들어앉아


TV나 보면서 소일을 하고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나이 든 노인이다.


그러나 할 일이 있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뜻을 순간순간 펼치면서 살아간다면


나이와는 상관없이 그는 영원한 젊음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해가 바뀌면 우리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이 육신의 나이를 하나씩 보태게 된다.


어린이나 젊은이는 나이가 하나씩 늘어가는 것이고


한창 때를 지난 사람들에게는 한 해씩 빠져나가는 일이 된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자연현상이다.


빠져나가는 세월을 아쉬워하고 허무하게 생각할 게 아니라


주어진 삶을 순간순간 어떻게 쓰고 있느냐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



카잘스는 '나의 작업이 바로 나의 삶' 이라고 한다.


은퇴란 말은 낯설고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것.


내 정신이 남아 있는 한 은퇴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은퇴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죽기 시작한다는 것을 뜻한다.


일을 하며 싫증을 내지 않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가치있는 것에 대하여 흥미를 가지고 일하는 것은 늙음을 밀어내는 가장좋은 처방이다.


나는 날마다 거듭 태어나며 날마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93세의 노인이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그는 날마다 거듭 태어나며 날마다 다시 시작하고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날들을 거듭거듭 창조하려는 의지로 충만한 그의 삶에


늙음이 어떻게 다가설 수 있겠는가.


위대한 예술가는 모두가 살 줄을 안 사람들이다.



코카서스 지방에는 이런 오케스트라가 있다고 <런던 선데이타임즈> 의


보도를 인용하면서 이 책 서두에 소개하고 있다.


그 악단의 단원들은 모두가 백살이 넘은 나이라고 했다.


단원은 30명 가량으로 규칙적인 연습을 하고 매번 정기연주회를 갖는다.


그런데 그들의 직업은 대부분 농부로서


아직도 들녘에 나가 계속 농사일을 하고 있다는 것.


그 악단의 최연장자인 아슈탄 슐라르바는 담배 재배자이고,


때로는 말을 길들이는 조련사이기도 하다.


그들은 모두 당당한 체구를 지녔으며 활력이 넘쳐 보였다고 했다.



백살이 넘는 노인들이 들녘에 나가 농사일을 하면서,


악단을 만들어 그 투박한 손으로 규칙적인 연습을 하고


정기 연주회도 갖는다니 얼마나 멋진 인생인가.


전문적인 혹은 직업적인 음악가도 아니고


손수 흙을 일구고 씨뿌려 가꾸며 거두는


그 농부들의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백살도 넘는 농부들의 연주라 세련미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 대신 대지에서 익힌 강인한 생명력이 묻어 있을 것 같다.


이런 연주야말로 삶을 위한 예술이고, 삶과 음악이 한가락에 엉겨 있을 것이다.



카잘스는 자기도 한번 그들의 연주를 듣고 싶고,


만약 기회가 닿는다면 직접 지휘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카잘스는 자신의 오케스트라가 이룩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연주회가 열릴 때마다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한가지 있다고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우리의 음악은 제한된 청중(여유있고 유복한 사람들)에게만 혜택이 간다고 느껴졌다.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은 연주회 입장권을 살 수가 없었다.


간신히 돈을 모든 소수의 사람들은 맨 꼭대기층의 가장 싼 좌석에 앉았다.


나는, 그들의 호사스러운 정면의 일등석이나 로얄박스에 앉은 상류계층의 사람들을 내려다볼 때


음악과는 전연 무관한 다른 생각에 잠길 것 같았다.


나는 공장과 상점과 부두에서 일을 하는 남녀들이 우리의 음악을 듣고 즐거워할 수 있기를 원했다.


결국은 그들이 우리 고장에서 대부분의 부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인데,


어째서 그들이 문화적인 부를 나누어 가지는 일에서는 제외되어야 한단 말인가."



이 구절을 읽으면서 한 나라의 문화정책이 어떻게 세워져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걸핏하면 문화민족이 어떻고 하는 자긍심에 도취된 소리를 듣는 수가 있는데


우리가 진심으로 문화민족일 수 있으려면


그 문화도 각 계층에 고루 분배되도록 두루 손을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2차 대전 중 나치 점령하의 한 시골에서 그는 어려운 날들을 보낸다.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독일 국민을 위해 연주해달라고


나치의 당국으로부터 수차 종용을 받지만 그는 단호히 거절한다.


어째서 독일에 안 가려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독일에 가는 것은 스페인에 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카잘스는 프랑코와 그가 표방하는 것들에 단연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스페인에 자유가 있다면 돌아가겠지만,


자신이 옳다는 것을 말하면 투옥되거나 그보다 더 나쁜 상황에 놓여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가지 않았던 것이다.


88세 되던 1962년 초 그가 전쟁 중에 작곡한 오라토리오 "베들레헴의 구유"와 함께


개인적인 평화와 십자군으로 나서려는 결의를 이렇게 말한다.



"나는 먼저 한 인간입니다.


예술가는 그 다음입니다.


인간으로서 나의 첫번째 의무는 나와 같은 인간들의 안녕과 평화입니다.


음악은 언어와 정치와 국경을 초월하므로


나는 하느님이 내게 주신 이 방법으로 내 의무를 수행하고자 합니다.


세계 평화에 내가 기여하는 바는 미약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성스럽게 생각하는 이상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그 연주에서 얻어지는 수익금은 전부 자신이 설립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과 박애정신과 평화의 증진을 도모하기 위한 기관의 기금으로 쓰여질 것이라고 했다.



예술가이기 이전에 한 인간임을 밝히고,


인간적인 의무를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를 말하고 있는 이 메시지는,


같은 시대인인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어떤 일터에서 무슨 일을 하며 살건 간에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이 이토록 고귀한 인간적인 의무에 힘을 기울인다면,


이 세상은 훨씬 살기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카잘스가 백안관에서 연주한 녹음으로 '새들의 노래'를 몇차례 들었다.


1961년 11월 13일 케네디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연주.


이 '새들의 노래'는 그의 고향 카탈로니아의 민요라고 한다.


이 곡은 스페인 망명자들의 노래이며,


카잘스가 그의 동포를 위한 자유를 염원하는 심경을 가장 잘 표현한 음악이라는 것.


아름답고 잔잔한, 조금은 슬프게 들리는 소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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