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후원하기 나의후원

대구

    • 03-10-22

    수류화개실 다담 水流花開室 茶談

본문

언젠가 한 젊은이가 찾아와 뜰에 선 채 불쑥


수류화개실(水流花開室)이 어디냐고 물었다.


아마 내 글을 읽고 궁금했던 모양이다.


나도 불쑥, 네가 서 있는 그 자리라고 일러주었다.


15년 전 옛 절터에 집을 새로 짓고 들어와 살 때였다.


삼칸집 네 기둥에 달까 해서 간단한 주련(柱聯, 기둥에 장식으로 붙이는 글씨)을


이것저것 헤아리다가 불화가인 석정 스님의 권유로,


중국 송대의 시인이며 화가인 황산곡의 글을 골랐다.



구만리 푸른 하늘에


구름 일고 비 내리네


빈 산에 사람 그림자 없이


물이 흐르고 꽃이 피더라.



‘수류화개실’ 이란 내 거처의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몇자 안된 글귀에 푸른 하늘과 구름과 비, 산과 사람과 물과 꽃이 들어있다.


단순하고 소박하고 명료한 것을 좋아하는 직선적인 성미에 맞는 글이다.


황산곡의 서체처럼 활달하고 기상이 있는 내용이다.



그 무렵 뉴욕에 가 계시던 운여(蕓如) 김광업 선생께서 예서체로 글씨를 써 보내주셨는데


아직도 빈 기둥인 채 살아오고 있다.


조촐한 집에 주련을 해달면 호사스러울 것 같아 지금까지 글씨로 간직하고 있다.


무슨 일을 저질러 하지 않고 미적미적 미루는 네 게으른 성격 탓도 있긴 하지만.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살든


그 속에서 물이 흐르고 꽃이 피어날 수 있어야 한다.


물이 흘러야 막히지 않고 팍팍하지 않으며 침체되지 않는다.


물은 한곳에 고이게 되면 그 생기를 잃고 부패하게 마련이다.


강물처럼 어디에고 갇히지 않고 영원히 흐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꽃이 피어나는 것은 생명의 신비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특성과 잠재력이 꽃으로 피어남으로써


그 빛깔과 향기와 모양이 둘레를 환하게 비춘다.


그 꽃은 자신이 지닌 특성대로 피어나야 한다.


만약 모란이 장미꽃을 닮으려고 하거나 매화가 벚꽃을 흉내내려고 한다면,


그것은 모란과 매화의 비극일 뿐 아니라 둘레에 꼴불견이 되고 말 것이다.


사람은 자신답게 살 줄 알아야 한다.


자기 나름대로 눈빛과 목소리와 성격과 특성을 지녔다는 것은,


그 눈빛과 목소리와 성격과 특성대로 살라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그 개인의 삶이 우주적인 조화를 이룰 때,


이 말이 너무 거창하다면 사회적인 조화를 이룰 때,


그 삶의 의미는 사회적인 시야에 의해서 평가될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이니까.



우리 같은 괴물은 여럿 속에서 섞여 있으면 도무지 사는 것 같지가 않다.


한마디로 해서 따분하고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어쩌다 아랫절에 내려갔다가 지쳐서 이내 올라오거나 어디로 훌쩍 길을 떠나는 것도


홀로 있고 싶어서다.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다’ 는 토마스 머튼의 말에 나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누구와 함께 있을 때 (물론 사람의 유형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나는 전체인 내가 아닌 부분적인 나밖에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아주 이기적인 괴물이다.


홀로 사는 사람치고 ‘이기적’이 아닌 사람 보았는가.



간혹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혼자 지내기에 적적하거나 무섭지 않으냐고.


천만의 말씀.


혼자 있을 때 나는 가장 넉넉하고 충만하다.


그야말로 내 안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고 향기로운 꽃이 피어난다.


적적하다는 것은 그만큼 맑고 투명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이 적적함을 모르면 흐리고 무디어진다.


이 흐리고 무디어짐이 이어지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인생이 붕괴되어 간다.


그럼 어디 한번 반문해 보자.


여럿이 어울려 함께 살아가면서 적적한 적은 없던가?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도 있지만,


치수가 맞지 않는 (뜻이 다른) 사람끼리 마주하고 있을 때


우리는 얼마나 무료하고 답답하던가.


자리에서 선뜻 일어서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던가.



사람은 홀로 있을 때 발가벗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일상인은 항ㅅ아 그렇게 살 수 없는 처지에 있기 때문에,


때로는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홀로 있는 그 시간 속에서 일상에 매몰되어 까맣게 잊어버린


순순한 자신의 모습을, 자신의 현존재를 점검해 보자는 것이다.


또 산중에서 혼자 지내면 무섭지 않더냐고?


무섭다는 것은 무엇인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관념적인 것이기도 하다.


자연은 결코 무서운 것이 아니다.


낮과 밤이 교차되어 단지 조명상태가 밝았다 어두웠다 할 뿐이다.


사람의 생각이 어두우면 밝은 대낮에도 무서워지고


생각이 매인데 없으면 깜깜한 밤중이라도 무서울 게 없다.


그러니 우리가 무서워하는 것은 마음의 장난일 경우가 지배적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린 것.



무서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해야겠다.


출가하기 전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무서움을 많이 탔다.


옛날 시골집 변소가 다 그랬듯이 본채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어둠이 내리면 혼자서 변소에 가기가 아주 무서웠다.


더구나 어린 시절에 들었던 도깨비며 귀신 이야기가 자꾸 떠올라


혼자서는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그 때마다 할머니를 뒤따르게 하고 겨우 볼일만 보고 후딱 뛰어나오곤 했다.



지리산 쌍계사 탑전에서 지낼 때였다.


중 된 지도 얼마 안되어 산중생활에 익숙하기 전이었다.


함께 지내던 사제 한 사람이 그때 문득 긴요한 일이 생겨,


자기 대신 나더러 자신의 속가에 좀 다녀와 주었으면 했다.


그때가 아마 섣달 그믐께였을 것이다.


그의 속가를 찾아갔다가 어디론지 이사를 가버려 허탕을 치고


선걸음에 돌아와 화개장터에 내리니 칠흑 같은 밤이었다.


별빛도 달빛도 없이 부슬부슬 찬비마저 뿌리는 겨울밤이었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는 15리길.


동구에서 절까지는 다리를 건너 한참을 더 올라가야 하는 어두운 숲길이다.


30여년 전이라 화개를 비롯한 산촌에는 전기가 전혀 들어오지 않는 때다.


화개에 길벗도 없이 내리니 달랑 나 혼자뿐이라 참으로 난감했다.


그러나 어찌하랴.


허리띠를 졸라매고 주먹을 불끈 쥔 채 뚜벅뚜벅 어둔 밤길을 걸어나갔다.


물론 그 시절에는 손전등도 없던 때다.


처음에는 뚜벅뚜벅 걸었지만 자꾸만 머리끝이 오싹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려 관세음보살을 외며 내닫듯 뛰었다.


절에 닿으니 진땀으로 속옷이 촉촉이 젖어 있었다.


이야기가 좀 길어졌지만,


이때를 고비로 내게서는 무서움이 아주 떠나가고 말았다.


밖에 나갔다가 밤이 늦어 돌아왔을 때라도,


큰절에서 자지 않고 꼬박꼬박 산길을 걸어 올라와 씻고 갈아입고


내 보금자리에서 혼자서 쉬는 것이 내 삶의 질서로 되어 있다.



사람은 자신이 겪는 경험을 거쳐서 새로운 눈이 열리고,


실수를 통해서 배우는 것 같다.


이 산에 들어와 몇 번이고 느낀 바다.


이 암자를 새로 지을 때 한 평 반쯤 되는 조그만 골방을 다실(茶室)로 만들었다.


그때 생각으로는 공부하다가 목이 마르면 그 방에 들어가 차를 마실 요량이었다.



소창다명 사아구좌(小窓多明 使我久坐),



조그만 창에 햇볕이 밝아 나를 오래 앉아 있게 한다는 말이 있는데,


겨울철 오후와 초봄에 이 방에 앉아 있으면


서쪽 창으로 스며드는 햇볕이 참으로 아늑하고 포근하다.


응접실이 따로 없으니 찾아오는 사람들이 두서넛일 때는 이 방에서 맞아들인다.


지금 생각으로는 처음 집을 지을 때 부엌을 좁히고


방을 좀 키웠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머리 무거운 일을 벌여 가면서까지 더 키우지는 않을 것이다.



혼자 있을 때 나는 가장 넉넉하고 충만하다고 했는데,


조그만 방이지만 이 방에 겨울 철 햇살이 들어오는 오후 한때


혼자서 차를 마시면서 다기를 매만지고 있으면


참으로 넉넉하고 충만한 내 속뜰이 열린다.


이 속뜰에서 나는 세상의 소리를 듣고 인간사를 바라보면서


내 자신을 들여다본다..


차는 이래서 고맙고 향기로운 벗일 수 있다.


이제는 건너가 차를 한잔 마셔야겠다.



- 89.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