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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 03-11-07

    흐린 업 맑은 업

본문

“재물과 이성을 바른 생각으로 대하라.


몸을 해치는 것은 이성보다 더한 것이 없고


도를 잃게 하는 것은 재물에 미칠 것이 없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계율을 마련하여


재물과 이성을 엄금하신 것이다.


‘이성을 대하거든 호랑이와 뱀처럼 보고,,,,(뱀...?..씨잉..뱀이 왜...꾸물꾸물~)


몸소 금이나 옥을 가까이할 때는 나무나 풀과 같이 보라‘ 고 하셨다.


비록 어둔 방에 있더라도 큰 손님을 대하듯 하고,


남이 볼 때나 안 볼 때나 한결같이 해서 안과 밖을 달리하지 말라.


마음이 청정하면 선한 신이 수호하고,


이성에 연연하면 천신들이 용납하지 않는다.


선한 신이 수호하면 험난한 곳에서도 어려움이 없고


천신들이 용납하지 않으면 편안한 곳에서도 불안이 따른다.


탐욕은 염라왕이 지옥으로 끌어들이고


맑은 행은 아미타불이 연화대로 맞이한다.


고랑 차고 지옥 가면 천가지 고통


배 위에 연꽃 피니 만가지 기쁨


- 자경문 -



한달 가까이 수련회 일로 여럿이서 어울려 사는 아랫절에 머물다가 돌아왔다.


서로 의지하고 함께 사는 즐거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10년이 넘게 혼자서 지낸 생활습관 탓으로,


둘레가 산만하고 어수선하고 시끄러워 조촐함과 맑음이 늘 아쉬웠다.



오늘 아침에는 샘물을 길어다가 오랜만에 차를 달였다.


홀로 마시면 그 향기와 맛이 신기롭다 했는데,


여럿이서 의례적으로 마시던 것과는 그 격이 다르다.


차를 들면서, 맑고 고요하고 한적함이 우리 삶에 어떤 몫을


차지하는 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시끄럽고 어지러운 세상살이기 때로는


맑고 고요하고 한적한 삶의 여백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여백을 통해서 시들해지기 쉬운 일상을 비춰봄으로써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고 개선할 수 있다.


개선과 개혁이 없는 삶은 한낱 타성이고 습관에 지나지 않는다.


타성과 습관은 사람을 찌들게 하고 시들게 한다.



자경문의 옛 거울에 우리 얼굴을 비춰보려고 한다.


예전 어른들의 가르침에 ‘재색財色의 화는 독사보다 심하다’ 는 말씀이 있다.


재물과 이성의 인력(引力, 끌어당기는 힘)은 그만큼 강인하기 때문에


거기에 일당 휘말리면 두고두고 헤어날 기약이 없다는 뜻이다.


독사에 물리면 현재의 몸만 희생되지만,


재물이나 이성의 그물에 걸리면 그 업연으로 인해


세세생생을 얽혀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벌써 2천년 전에 중국에서 번역되어 우리나라에도 불교의 전래와 함께


일찍부터 소개된 <사십이장경>에는 이런 가르침이 있다.



“사람들이 재물과 색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마치 칼날에 묻은 꿀을 탐하는 것과 같다.


한번 입에 댈 것도 못되는데 그것을 핥다가 혀를 상한다.


처자나 집에 얽매이는 것은 감옥에 갇히는 것보다 더하다.


감옥은 풀릴 날이 있지만, 처자는 멀리 떠날 생각조차 없기 때문이다.


정과 사랑은 그 어떤 재앙도 꺼리지 않는다.


설사 호랑이 입에 들어가는 재난이 있더라도 깊이깊이 빠져든다.“



단란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은 이런 말에 심한 저항감을 느낄 것이다.


독신 수행자에게는 위로가 되겠지만 건전한 생활인에게는


적잖은 오해와 의혹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그렇지만 근원적인 입장에서 볼 때 재색이 그만큼


강한 집착의 대상임은 누구에게나 다를 바 없다.


이 <사십이장경>도 초기경전에 속하는데, 초기경전에는 출가주의적인 경향이 짙다.


출가자를 대상으로 한 법문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재가자일지라도 그럴 줄 알고 올바르게 살라는 뜻도 함께 지니고 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비리와 갈등과 비극의 원천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재물과 색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가장 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빠져드는 사람을 범부라 하고,


거기에서 헤치고 나오면 티끌을 벗어난 장부라고 한다.


경전은 계속해서 이와같이 말한다.



“모든 욕망 가운데서 성욕보다 더한 것은 없다.


성욕은 그 크기의 한계가 없다.


다행이 그것이(그런 욕망이) 하나뿐이었기 망정이지


둘만 되었더라도 도 닦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이다.


출가 전 왕자의 신분으로 누렸던 세속적인 쾌락에 대해서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제자들 앞에서 솔직하고 간절하게 자신의 체험을


털어놓음으로써 경책을 삼으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성도 전에 겪었던 이런 이야기도 잇따라 하신다.



“어떤 악마가 내게 미녀를 보내어 내 뜻을 꺾으려고 하였다.


그때 나는 이와같이 말했다.


‘가죽 주머니에 온갖 더러운 것을 담은 자여,


너는 무엇하러 내게 왔느냐, 물러가라, 내게는 소용이 없다.‘


이와같은 내 굳은 결심을 보고 그 악마는 도리어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켜 도의 뜻을 물었다.


내가 그에게 설명해 주었더니 그는 곧 눈을 뜨게 되었다.“



이성을 보고 부정한 생각이 일어날 때에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라고 경전은 그 방법을 이야기한다.



“나이 많은 여인은 어머니로 생각하고,


손위가 되는 이는 누이와 같이 생각하며,


나이 적은 이는 동생으로 여기고,


보다 어린 이는 딸과 같이 생각하여 제도하려는 마음을 내면


부정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수행자는 마른 풀을 지니고 있는 것과 같아서


불을 가까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타이른다.



“수행인이 욕망의 대상을 보거든 마땅히 멀리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음란한 생각이 그치지 않음을 걱정한 나머지


자신의 생식기를 끊어버리려고 했다.


내가 그에게 이같이 충고한 적이 있다.


‘생식기를 끊는 것은 생각을 끊는 것만 못하다.


음란한 생각을 쉬지 않은 채 생식기를 끊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들은 애욕으로 인해 걱정이 생기고 걱정으로 인해 두려움이 생긴다.


애욕에서 떠나면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을 두려워할 것인가.“



중국의 유마거사로 불려진 8세기의 방거사는 아주 인색한 부호였다.


어느 날 집안에서 기르고 있던 소와 말이 서로


‘나는 전생에 이 집에서 빌린 돈을 갚지 않았기 때문에


금생에 이런 몸을 받아 빚을 갚고 있다‘ 고 말하는 걸 듣고


방거사는 큰 충격을 받는다.


그는 생각하던 끝에 전 재산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조그만 오막살이에서 딸 하나를 데리고 살면서 재가불자의 조촐한 삶을 이룬다.


대나무로 조리를 만들어 장에 내다 팔아서 그날그날의 생계를 이어간다.


그 많은 재산을 바다에 내던지려고 할 때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면 그들이 잘 쓸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재산을 남에게 넘긴다면 그들도 언젠가는 자신처럼


인색한 부호가 될지도 모른다는 뜻에서 결연히 바다에 내던진다.


자신에게 원수가 된 재물을 누구에게 떠넘기겠냐는 뜻에서다.



<조당집> 제 15권 끝에는 그의 임종에 대한 기록이 실려있다.


딸을 시켜 물을 데우게 하여 목욕하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평상에 단정히 앉아 뒷일을 부탁했다.


“해가 한나절이 되면 내게 알려다오.”


딸이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더니 말했다.


“지금 오시午時가 된 듯한데 일식을 하고 있습니다.”


거사는 이상히 여겨 직접 보러 밖으로 나갔다.


이때 딸이 얼른 평상 위에 단정히 앉아 숨을 거두었다.


거사가 이를 보고 말했다.


“장하다! 내가 말은 먼저 했지만 떠나기는 나중이 되었구나.”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세속적인 욕락을 떠나 청정한 업을 닦았기 때문에


죽고 사는 일을 마음대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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