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면 우리 모두 행복해집니다”
[조선일보 2004-04-18 18:45]
法頂스님 길상사서 법문
[조선일보 김한수 기자] “용서가 있는 곳에 신(神)이 계십니다. 본래부터 원수는 없습니다. 순간순간 업(業)을 쌓음으로써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크고 작은 허물을 들추고 꾸짖고 나무라서는 고쳐지지 않습니다. 사랑과 이해의 통로인 용서가 사람을 정화시킵니다.”
법정(法頂) 스님이 넉 달 만에 대중 법문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길상사와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 회주(會主) 자리를 내놓고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 칩거, 수행생활을 해온 법정 스님이다. 스님은 그때 “그동안 말이 많았다”며 “봄·가을로 1년에 두 번만 길상사 법회에서 법문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날 법회는 그 첫 번째 자리였다.
지장전(地藏殿)과 도서관 기공에 맞춰 열린 이날 법회에 참석한 3000여 신도 앞에서 스님이 풀어놓은 화두는 ‘용서’였다. 여느 때처럼 ‘탄핵’ ‘총선’ 등 현실사회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스님의 법문은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가슴에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다.
스님은 “꽃과 새 잎이 피어난 저 신록처럼 사람도 철 따라 맑고 투명하고 새롭게 피어날 수 없을까, 생각한다”며 법문을 시작했다.
그는 “봄날 만물이 소생하는 것은 훈훈한 봄기운 때문이요, 가을날 잎이 지는 것은 차디찬 서릿바람 때문”이라며 “인간의 허물은 훈훈한 봄기운처럼 용서하면 저절로 고쳐진다”고 말했다. 스님은 ‘남의 허물을 보지 말라. 다만 나 자신이 저지른 허물과 게으름만을 보라’는 법구경 구절을 소개하며 “허물을 가지는 것이 중생계의 속성이며 그것을 용서해 삶의 찌꺼기인 업을 맑히는 것이 또한 신앙과 수도생활”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지난 일은 모두 과거사이고 전생사(前生史)이기 때문에 어떤 과거사도 들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용서의 해법’을 불교의 ‘업(業)’과 ‘윤회(輪回)’사상에 비추어 설명했다. 인간이 죽을 때 재산, 육신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지만 영혼의 그림자처럼 죽음 이후에도 따라다니는 것이 바로 업이라는 것. 그러면서 스님은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은 ‘업의 놀음’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말했다. 용서하지 않고 과거의 허물을 들추면 상대방을 불행하게 하고 나 역시 불행하게 만들지만, 반대로 상대를 용서하면 상대방과 나 모두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총선 후 여야 모두 ‘상생의 정치를 하겠다’고 외쳤는데, ‘용서’야말로 상생(相生)으로 가는 키워드인 셈이다.
스님은 “이 봄날,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무엇이든 드나들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람이 꽃피어 나는 소식이 가득하도록 하자”며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업의 그물에서 벗어나자”고 강조했다. 그는 30여분간의 법문을 끝내며 “내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니, 나머지는 눈부시게 피어나는 저 나무들에게 들으시기 바란다”며 싱긋 웃었다.
(김한수기자 hansu@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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