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님 오셨네…" 3000여 불교신자 환호
[조선일보 2005-05-16 09:31]
길상사 음악회서 불교·천주교 뜻깊은 만남
[조선일보 김한수 기자]
“어! 진짜 추기경님이네!” “와~와~” 부처님 오신 날인 15일 저녁 서울 성북동 길상사(주지 덕조 스님). 대웅전과 앞마당은 물론 온 사찰을 꽉 메우고 있던 3000여명의 불자들은 뜻밖의 손님을 뜨거운 박수로 맞았다.
이날 불자들이 기다리고 있던 행사는 ‘길상음악회’.
매년 부처님 오신 날 저녁에 열어온 음악회다. 해마다 우리사회의 소외된 이웃을 테마로 정해 이들을 돕기 위한 음악회를 열어온 길상사는 올해의 지원대상으로 천주교가 운영하는 성가정입양원(원장 윤영수 수녀)을 택했다.
성가정입양원은 국내 미혼모 자녀 등을 국내에 입양시키기 위해 세워진 기관. 서울 성북동 내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덕에 길상사와 성가정입양원은 평소 부처님 오신 날과 성탄절·부활절에 서로 방문해 축하인사를 나눠왔다. 그러다 올해 길상사가 이날 접수된 시주와 연등값의 일부를 성가정입양원을 위해 내놓기로 한 것. 사실 김 추기경의 음악회 참석은 이날 오후까지만 해도 불확실했다. 요즘 김 추기경의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 그러나 김 추기경은 오후에 휴식을 취한 후, 약속대로 참석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지난해까지 길상사 회주(會主·모임의 어른 스님)였던 법정 스님은 반갑게 합장하며 김 추기경을 맞았다.
뜻밖의 귀한 손님을 맞아 음악회는 더욱 뜻 깊게 진행됐다. 하늘을 덮은 오색연등은 조명이 됐고, 봄바람에 살랑이는 풍경(風磬)소리는 반주가 됐다.
법정 스님이 이끄는 시민단체 ‘맑고 향기롭게’ 회원인 국회의원 이계진씨의 사회로 진행된 음악회에서 김 추기경과 법정 스님, 원불교의 박청수 교무 등은 나란히 관람석 앞줄에 앉아 흐뭇한 미소를 띤 채 팝페라 가수 임형주의 ‘아베마리아’를 함께 감상했다. 주지 스님은 전통 불교식 ‘발원문’을 읽는 대신에 이해인 수녀가 보내온 시(詩) ‘부처님 오신 날’을 낭송했다.
음악회 도중 사회자의 권유로 인사말을 한 김 추기경은 “천주교 기관을 돕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초대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한다”며 “하느님의 축복이, 부처님의 은덕이 여러분에게 가득하길 빈다”고 말했다. 법정 스님은 “해외 여행 때 입양아들이 현지 공항에 도착해서 아주머니들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을 보면서 가슴 아픈 적이 많다”며 입양에 대한 인식전환을 촉구했다.
(김한수기자 [ hans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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