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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 05-10-20

    10월 16일 길상사 가을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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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길상사 가을법회 법문

[서울신문 2005-10-17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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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때로는 천천히 돌아서 가기도 하고, 길을 잃고 헤맬 필요도 있습니다. 이것이 삶의 기술이고, 인생이요, 곡선의 묘미인 것입니다.”

전 길상사 회주 법정(73) 스님이 16일 오전 서울 길상사 가을정기법회에서 법문을 통해 바쁘게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에게 필요한 ‘곡선의 묘미’를 화두로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1000여명의 신도들이 모인 가운데 법문을 시작한 스님은 “고속도로가 곡선 없이 직선으로만 이어진다면 질려서 운전할 맛이 나겠느냐.”고 묻고 “인생길도 이처럼 앞날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살 맛이 난다.”고 설했다.


스님은 “이전 세대들은 힘들어도 참고 기다릴 줄 알고 있었다.”면서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끝장을 보려고 해 나쁜 업을 거듭 쌓고 있다.”고 현대인들의 직선적인 삶을 탓했다.


스님은 특히 “곡선의 묘미를 삶의 지혜로 받아들이면 남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이 생길 뿐만 아니라 가정의 화목과 이웃사랑의 나눔도 실천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삶은 과거나 미래에 있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을 살 줄 알아야 한다.”며 “내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나와 관련된 가족이나 이웃들의 삶도 달라질 것”이라고 법문을 마쳤다.


법정스님 길상사서 법문

[조선일보 2005-10-17 03:05] 

인생의 길은 곡선… 끝이 보인다면 무슨 살맛이 날까요

모르기 때문에 살맛 나는 것이죠



[조선일보 김한수 기자]


“사람의 손이 빚어낸 문명은 직선입니다. 그러나 본래 자연은 곡선입니다. 인생의 길도 곡선입니다. 끝이 빤히 보인다면 무슨 살 맛이 나겠습니까? 모르기 때문에 살 맛이 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곡선의 묘미입니다.”


법정(法頂) 스님이 16일 오전 서울 성북동 길상사(주지 덕조 스님)에서 열린 가을법회에서 ‘곡선의 묘미’를 주제로 법문했다. 마당에 색색 코스모스가 곱게 핀 극락전에서 열린 이날 법회에서 스님은 현재 거처하는 강원도 산골 소식부터 전했다.


“가을엔 모든 것이 투명합니다. 햇살, 공기, 바람결, 물, 나무 모두 다 투명합니다. 산에 사는 저희 같은 사람은 귀가 밝아져 방 안에 있어도 낙엽 구르는 소리, 풀씨 터지는 소리, 다람쥐가 열매 물고 가는 소리까지 들립니다.”


스님은 이어 ‘곡선의 묘미’를 화두로 현대 사회의 조급증, 생명경시, 물질주의에 대해 경고하며 “직선이 아닌 곡선의 여유로 살자”고 권했다. 스님은 “직선은 조급, 냉혹, 비정함이 특징이지만 곡선은 여유, 인정, 운치가 속성”이라며 “오늘 우리가 여유롭게 사는 것은 전(前) 세대, 선인들이 어려운 여건을 참고 기다릴 줄 알았던 덕”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녀의 사랑도 서로를 길들일 시간, 뜸들일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요즘은 웬만한 식당에선 제대로 뜸들인 밥을 먹기 어렵다”며 “모든 것을 단박에 이루려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스님은 참을성 없는 세태가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많은 자살자, 하루 평균 1000명에 이르는 낙태 등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나쁜 업(業)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스님은 “내가 쌓은 업의 결과가 지금의 내 모습”이라며 “지진, 해일, 태풍 등 전 지구적 재앙이 잦은 것도 오만한 인류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정 스님은 또 일류대학을 나와 일류직장에서 30년간 ‘일벌레’로 살다 IMF외환위기로 졸지에 무일푼 실업자로 전락해 실의에 빠졌던 한 가장의 사연을 전했다. 그 가장은 요즘은 택시기사로 힘들게 생계를 꾸리면서도 생각을 바꿈으로 해서 온 가족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


스님은 “주어진 상황 안에서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그것 역시 곡선의 묘미”라며 “때로는 천천히 돌아가기도 하고, 어정거리고, 길 잃고 헤매면서 목적이 아니라 과정을 충실히 깨닫고 사는 삶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투명한 가을을 맞아 여러분 모두 투명하고, 따뜻하고, 어질고, 선량한 이웃이 되길 빈다”며 법문을 마쳤다.


(김한수기자 [ hansu.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