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정 스님 가을 법문 나들이
“농사 지키기 시급한 당면과제”
FTA, 농업 말살 정책… “대통령 권한 많아 횡포 부린다”
법상이 마련된 길상사 극락전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법정 스님이 한 어린이와 인사를 나눴다.
지난 봄 ‘행복은 지금 이순간에 있다’는 법문으로 일반 대중에까지 공감을 불러일으킨바 있는 법정 스님(전 서울 길상사 회주)이 가을을 맞아 대중법회에 나섰다.
지난 10월 15일 서울 길상사(주지 덕조 스님) 극락전에서 열린 가을 정기법회에서 스님은 ‘농사의 소중함’을 주제로 법문하며 한미 FTA 협상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날 법회에는 2,000여명의 사부대중이 함께 했다.
법문내용을 요약했다.
오늘은 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구한말 내장산에 살았던 큰 선지식으로 학명 스님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반은 참선 반은 농사짓는 것을 수행으로 삼고 ‘농사가 곧 참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스님이 주창한 내장선원 청규에 보면 “이 선원의 목표는 반농반선에 있다”고 했습니다.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이 수행이 아니고 생산을 위한 노동이 곧 수행이라면서 오전에는 간경(看經), 오후에는 농사, 밤에는 좌선을 일과로 삼았습니다.
구한말 불교가 세속화되면서 놀고먹는 풍조가 만연할 때 학명 스님 같은 선지식이 농사짓는 일이 진짜 참선이라 말한 것은 그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큰 교훈을 던져 줍니다. 경전만 보고 기도·참선에만 열중하면 시주물 고마운 줄 모릅니다. 울력은 일차적으로는 생산적인 측면이 있지만, 이차적으로는 그것을 통해 일체감을 갖게 합니다.
농사는 흙이 지닌 덕(德)과 질서를 가르쳐줍니다. 농업은 기초산업이자 생명산업입니다. 농업은 결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대지의 은혜입니다. 휴대전화, 컴퓨터, 자동차는 먹을 수 없지만 땅에서 나는 곡식과 채소를 먹지 않고는 살수 없습니다.
요즘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로 농업이 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한미 FTA는 말은 ‘자유무역’을 하자는 것이지 실상은 ‘강자의 보호주의’입니다. 미국의 기업과 투자자를 위한 협정에 불과합니다.
“한국은 무조건 개방하라”고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대외무역의존도가 70%를 넘었습니다. 미국은 20%를 개방했고, 일본은 22%를 개방했는데 우리나라 대외무역의존도는 이들 나라의 3배가 넘습니다. 우리 경제가 취약한 것은 내수가 약하기 때문인데, 마저 다 개방해야 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대외무역의존도가 높은 것은 자랑이 아닙니다.
FTA가 체결되면 고급 공무원, 재벌언론사 등 몇몇은 이익을 보겠지만 대다수의 서민들, 특히 토지에 기반해 살아가는 농민들은 큰 어려움에 부딪칠 것입니다. 농업은 서로 돕고 함께 하는 ‘상생’을 기본으로 하는데, 미국의 농업은 기업농으로 농업의 기반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립니다.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FTA는 일단 ‘농업은 없다’고 전제하는 ‘사회전환프로그램’입니다. 다시 말하면 온세계를 미국의 시장으로 만드는 세계화의 물결이라는 뜻입니다.
법정 스님의 가을법문을 듣기 위해 2천여 불자들이 모였다.
-관련기사-
법정 스님 가을법문서 대정부 성토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FTA로 농민들이 피해를 보면 농민들에게 생활보조비를 줘 먹여 살리면 된다”고 말했다는 기록을 읽었습니다. 펄펄한 농사꾼이 생활보조비나 타먹으면서 살아가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삶의 터전과 의욕을 잃은 채 식물인간이 되라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국정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나라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국토 가운데 산지가 64%, 농지가 20%입니다. 전체 면적 중 84%가 사실상 농민들이 관리하는 땅인데 농업이 죽어버리면 이 생태계를 관리하는 사람이 사라지게 됩니다.
한미 FTA에는 생태계를 보전하는 농민들을 위한 장치가 없습니다. 일본과 중국은 미국과 FTA를 맺지 않았습니다. 자국 국민을 위한 보호장치가 준비되지 않았기에 맺지 않은 것입니다.
《세계연례보고서》에 의하면 FTA에는 미국형과 유럽(EU)형이 있는데 미국형이 가장 잔인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농민은 전체 인구의 7%인 350만명으로 그나마 모두 60세 전후의 노인들입니다. 농촌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은 지가 오래 되었는데 이것은 미래가 없다는 증거입니다. 농업문제를 농민에게만 맡길 수는 없습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숙제 하나를 내드리겠습니다.
우석훈 교수가 녹색평론에서 펴낸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를 꼭 읽어보십시오. 제 인격을 걸고 추천합니다. 그 책에 의하면 ‘FTA가 체결되면 4인가족 기준으로 1년에 수입이 6천만원 미만인 사람은 빨리 이민을 가야 한다’고 합니다.
지금 5년 단임의 대통령제는 너무 막강한 권한이 있어 문제가 많습니다. 1987년 독재정권을 견제하기 위해 개헌하면서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부여해 국회도 손을 쓸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그런 정치적 횡포를 부리고 있습니다. 우리 현실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정리=김윤미 기자
사진=윤승헌 기자
발행일 : 1998-10-21
작성일 : 2006-10-20 오후 10:24:32
작성자 : 김윤미 / yums@manbulshinm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