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 농부의 마음으로 살아야 행복
"농업은 기초산업이자 생명산업입니다. 농업은 결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대지의 은혜입니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법정(法頂) 스님이 농업의 중요성과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15일 서울 성북구 성북2동 길상사에서 열린 가을 정기 법회에서 법정 스님은 "우리나라 전국 토지 중
84%가 실질적으로 농민들이 관리하는 땅"이라며 "농업은한 나라의 생명산업"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길상사는 1년에 두 차례 열리는 법정 스님 법문을 듣기 위해 몰려온 불자 1000여 명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법정 스님은 당나라 중기 향존암을 창건하여 선풍을 일으킨 백장 선사(720~814년) 고사를 들려주고
대지의 참 가치를 일깨웠다.
"농사짓는 사람들이 흘린 땀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야말로 백장 선사께서 가르쳐주신 큰 법문입니다."
중국에 처음으로 불교 수도원을 세운 백장 선사는 반선반농(半禪半農)의 가르침으로 유명했다.
사찰 방장이었던 백장 선사는 손수 농사를 지어가며 가르침을 실천했다.
어느 날 그의 제자가 노스님의 딱한 모습을 보고 쟁기를 감춰 일을 못하게 하자, 그는 공양을 받지 않고 참선에만 몰입했다.
법정 스님은 "스스로 갈고 뿌린 다음 먹어야 곡식 낱알 하나를 아깝게 여길 줄 안다"며 "
현재 한국 불교에서 눈 밝은 수행자가 나올 수 없는 이유도 농사일을 통한 공동체 정신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산에서 농사를 짓고 살다 보면 생태계와 일체를 이룰 수 있게 된다"며 "자연과 이웃과 일체감을
나누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수행"이라고 무소유의 삶을 강조했다.
이어 그는 향존암에서 내로라하는 선사들이 많이 배출됐던 까닭을 "농사짓는 사람들이 흘린 땀으로
공양된 시주물건을 무섭게 여겼던 분위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ㆍ미 FTA협상에 대해서도 생태계 중요성을 이유로 반대했다.
"우리나라 전 국토 가운데 산지가 64%, 농지가 20%입니다. 전체 면적 중 84%가 사실상 농민들이
관리하는 땅인데 농업이 죽어버리면 이 생태계를 관리하는 사람이 사라지게 됩니다."
법정 스님은 "한ㆍ미 FTA 협상은 단순한 통상협상이 아닌 사회전환 프로그램이기에 농민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며 "한ㆍ미 FTA에는 생태계를 보전하는 농민들을 위한 장치가 없다"고 말했다.
법정 스님은 농업을 일개 산업으로 접근하는 정부 시각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얼마 전 대통령이 '한ㆍ미 FTA로 농민들이 피해를 보면 농민들에게 생활보조비를 줘 먹여 살리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국정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나라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휴대전화와 자동차는 먹을 수 없지만 곡식과 채소를 먹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며
"농사를 짓고 살아간다면 모든 생명에게서 상생을 배우게 된다"고 농업에 대한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끝으로 법정 스님은 법회에 참석한 신자들에게 환경학자 우석훈 씨가 펴낸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를 꼭 읽어볼 것을 권했다.
[이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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