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오늘 최선 다하는 삶이 아름다운 생” ‘삶의 이정표’ 담은 56편 수필집 4년 만에 출간
법정스님이 <홀로 사는 즐거움> 이후 4년 만에 수필집을 냈다. 새 책 이름은 <아름다운 마무리>다. 제목이 스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울컥하게 만든다. 스님의 올해 세납이 77세다. 지난 한 해 병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 뒤 나온 책이다. 그래서일까 죽음 이야기가 꽤 나온다. 하지만 통상 말하는 두려움 회한 무상함이 아니다. 오히려 삶을 더 진지하고 아름답게 받아들인다.
‘만인의 스승’임에도 마음 가다듬는 모습 ‘숙연’
‘아름다운 마무리’ (법정스님/문학의 숲)
죽음은 곧 삶이다. 법정스님<오른쪽>은 삶을 배우듯 죽음도 배워야한다고 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고유한 삶의 방식이 있듯이 죽음도 그 사람다운 죽음을 택할 수 있도록 이웃들은 거들고 지켜보아야한다”며 “일찍부터 삶을 배우듯이 죽음도 미리 배워 둬야할 것”이라고 했다.
죽음은 또한 기약 없이 불현듯 찾아온다. 후회 없는 삶만이 ‘오늘 죽어도 여한 없는’ 삶이다. 아름다운 삶은 바로 오늘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생로병사란 순차적인 것만이 아니라 동시적인 것이기도 하다. 뜻밖의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죽음은 차례를 거치지 않고 생에서 사로 비약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순간 순간의 삶이 중요하다. 언제 어디서 인생을 하직하더라도 후회 없는 삶이 되어야한다.”
후회 없는 삶이란 무엇인가. 책 제목으로 채택된 ‘아름다운 마무리’ 속에 들어있다. “그때 그때 바로 그 자리에서 나 자신이 해야 할 도리와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긴다.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긍정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에 대해 이 존재계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다.”
스님은 계속해서 아름다운 마무리는 초심을 회복하는 것이며, 비움이며, 지나간 순간과의 작별이고 용서며 이해 자비라고 했다. 즉 진정한 자유인에 이르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인 것이다. 진정한 자유란 곧 무소유이기도 하다. 불필요한 것을 소유하지 않고 얽매이지 않을 때 비로소 자유를 얻고 아름다운 마무리도 가능한 것이다.
‘이웃과 나누는 일을 통해서 나 자신을 수시로 가꾸어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고 , ‘행복할 때는 행복에 매달리지 말며, 불행할 때는 이를 피하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자신의 삶을 순간 순간 지켜보는’ 삶을 살며, ‘어느날 내가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이 나를 만난 다음에는 사는 일이 더 즐겁고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때 후회없이 살았노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56편의 산문은 계속해서 ‘아름다운 마무리’란 무엇이며,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이는 삶의 이정표를 잃어버리고 표류하는 현대인들에게 스님이 던져주는 빛이다. 우리들로 하여금 지나온 날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잃어버렸던 나를 찾도록 일러준다. 줄곧 울림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 스님이 먼저 당신을 참회했다. 우리 시대 수행자로 만인의 존경과 따름을 받는 스승이면서도 늘 반성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모습에서 숙연함 마저 감돈다. “병을 치료하면서 나는 속으로 염원했다. 이 병고를 거치면서 보다 너그럽고 따뜻하고 친절하고 이해심이 많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고자 했다. 지나온 내 삶의 자취를 돌이켜 보니 건승으로 살아온 것 같았다. 주어진 남은 세월을 보다 알차고 참되게 살고 싶다. 이웃에 필요한 존재로 채워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리가 언제 이같은 진솔한 모습으로 반성한 적이 있었을 까. 이웃을 원수 보듯 하고, 더 갖기 위해 남을 헐뜯기를 밤낮없이 하며, 이기심에 가득차 모든 악행을 정당화하는 우리들에 비하면 허물이라 여길 것도 없을 노스님이 ‘남은 세월 보다 알차고 참되게 살고 싶다’고 한다. ‘이웃에 필요한 존재로 채워져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한다. 소리 높여 공개적으로 참회해야할 인간들은 따로 있는데 허물없는 스님이 오히려 고개를 숙였다.
더 나아가 스님은 지금껏 당신은 인색했다며 이제 주는 일이 즐겁다고 한다. 평생 중생들에게 더 할 수없이 많은 것을 주었으면서도 준 것이 없다고 한다. “나는 요즘에 이르러 받는 일보다 주는 일이 더 즐겁다. 이 세상에서 받기만 하고 주지 못했던 그 탐욕과 인색을 훌훌 털어내고 싶다. 한동안 내가 맡아 가지고 있던 것들을 새 주인에게 죄다 돌려 드리고 싶다. 누구든지 나와 마주치는 사람들은 내게 맡겨 놓은 것들을 내가 먼 길을 떠나기 전에 두루두루 챙겨 가지 바란다. 그래서 이 세상에 올 때처럼 빈손으로 갈 수 있도록 해주기 바란다.”
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불교신문 2480호/ 11월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