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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 09-03-04

    "착하고 복되고 향기 나는 순간을 사세요"(2009년 봄 동안거해제법문)

본문


법정스님 "착하고 복되고 향기 나는 순간을 사세요"

법정 스님 동안거 해제법어



2월 9일 동안거 해제의 날. 전 길상사 회주 법정(法頂, 77) 스님이 서울 성북동 길상사(주지 덕조)에서맑고 향기로운 해제 법문을 펼쳤다.


다음은 이날 스님의 법문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불기 2553년 2월 9일 전 길상사 회주 법정(法頂 77) 스님이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해제 법문을 펼쳤다.



#복 짓는 한해 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셨습니까?

삶에서 복이 왜 중요합니까?

험난한 세상에서 복이 받쳐주지 못하면 못 삽니다.

복이 우리를 받쳐주기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복을 받고자 하는데 그 복은 어디서 옵니까?


부처님 하나님 같은 절대존재가 거저 주는 것도, 주고 싶은 사람에게만 선별해서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대상을 가려서 선별해서 준다면 그것은 편애이고 또 절대존재도 아닙니다.


결국 복은 스스로 지어야 합니다. 복 받을 행동, 복 받을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내 순간순간의 삶이 복을 받을 만한가를 스스로 살펴야 합니다.


 이날 법문에서 법정 스님은 검소한 생활의 중요성과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매 순간 복을 지으며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



#착하고 복되고 향기나는 순간을 사세요


새해가 벌써 한 달 아흐레가 지났습니다. 한 해의 7분의 1이 이미 지나간 것을 보니 세월의 덧없음을 느낍니다.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은 세월의 흐름을 보며 몹시 짧다는 것을 느낍니다.


저는 평소 시간의 덧없음을 관념적으로 알았고 또 건성으로 들었는데 지난 겨울 눈병을 앓으며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했습니다. 안약을 처방받았는데 한 가지의 약은 1시간 간격으로 안약을 넣어야했습니다. 안약 넣는 시간을 챙기다 보니 1시간이 어찌나 빠르던지 모래를 손에 쥐었을 때 손사이로 모래가 빠져 나가는 것처럼 술술 빠져나갔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인식하지 못한 채 시간의 덧없음을 인식했으나 시간과 몸을 부딪혀보니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남은 시간의 잔고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시간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똑같이 24시간이 주어지고 또 쏜살같이 빠져나갑니다. 순간순간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순간을 어떻게 맞이하며 살고 있는지에 대해 깊은 반성을 해야겠습니다.

일일일야 만사만생(一日一夜 萬死萬生)이라고 했습니다. 하루 밤과 하루 낮에 만 번 죽고 만 번 산다는 뜻입니다.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진짜로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친구를 만나 유익하고 정다웠다면 시간을 살린 것이 됩니다. 또 다른 사람을 험담하며 시간을 보냈다면 그것은 시간을 죽인 것입니다. 주어진 시간을 잘 산다면 시간을 살리는 것이 되는 것이고, 무가치하게 보내면 시간을 죽이는 것이 됩니다.


한해의 시작부터 연쇄살인과 용산참사로 피로 얼룩 새해 첫 아침을 맞았습니다. 끔찍한 뉴스를 되풀이해서 맞이하다보면 삶이 얼룩집니다. 끔찍한 소식을 반복해서 들으면 의식 속에 어두운 잠재의식이 생깁니다.


오고 가는 것들을 선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정보 속에서도 볼 것은 보고, 들을 것은 들어야 합니다. 또 말에서도 할 말과 할 필요 없는 말을 잘 가려서 해야 할 것입니다. 어둡고 끔찍한 뉴스 대신 밝고 아름답고 착한 소식으로 착하고 복된 순간을 이룰 수 있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습니다.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도록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습니다.


 앞으로 몇번 없을 법문을 강조하며 해제법어를 마치고 실상사 극락전을 나오시는 법정 스님.



#세상살이가 나아질 때까지 불사는 중지돼야


그동안 맺힌 것을 맺은 것을 푸는 날인 해제날인 만큼 풀려고 합니다. 또 건강이 예전 같지 못해 앞으로 여러분들을 이렇게 법회자리에서 자주 만나보지 못할 것 같아 오늘 한마디 더 하겠습니다.


지금 이곳(성북동 길상사)에 처음 절이 만들어졌을 때는 어설프기 짝이 없었습니다. 여러 신심 있는 불자들과 주지 스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노고로 지금의 번듯한 도량이 세워졌습니다. 그 밖에도 설법전, 종각, 지장전, 뒷간 등이 만들어졌습니다.

(해우소라는 말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원래는 ‘정랑(淨廊)’이라고 했어요. 이 해우소라는 말을 앞으로는 정랑이라고 바꿔 말하길 바랍니다.)


저는 절이 앞으로 가난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흥청망청하는 절보다는 결손(缺損)한 절이 돼야합니다. 지금 절은 넘치기 직전의 절이 돼 버렸습니다. 법문의 마지막에 이렇게 항상 돈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너무 괴롭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 불사 얘기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방법을 달리해야합니다.


절에 있는 게시판이나 소식지를 이용하세요. 법회를 돈 이야기로 먹칠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도들이 말합니다. ‘절에 와서 짐을 부리고 가려고 했는데 도리어 짐을 가지고 갑니다’고 말이에요.

법회(法會)는 법다운 모임이 돼야 합니다. 법문을 듣고 법문의 내용을 차분히 음미하면서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법회 끝에 하는 돈 이야기는 법회에 대한 모독입니다. 이 점은 반드시 시정돼야할 것입니다.


경제 위기로 세상이 어려워졌습니다. 힘들어서 갈팡질팡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직장에서 쫓겨나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부지기수입니다. 절이나 교회에서 도와줘야할 때입니다. 세상살이가 나아질 때까지 불사는 중지되어야 합니다.


종에 금이 가도 종은 소리가 납니다. 종소리에 간절한 염원이 있나 없냐가 중요합니다. 간절한 염원을 담는다면 금이 간 종에서도 그 염원은 울려 퍼질 것입니다.

이상언 기자 | un82@buddha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