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한라산, 지리산에 이어 남한에서 세번째로 높으며
백두대간의 중심에 위치해 북으로 금강산, 남으로 오대산에 이어진다.
봉정암은 모든 불자들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지.
소피 마르소가 사춘기 우리들에게 그러했듯이^^
올라가기 엄청 힘들다는 이야기는 수없이 들었다.
봉정암 답사 일정이 정해진 후, 우리의 생각은 똑같았다.
"그냥은 못 올라간다.
몸을 만들어서 가야한다!!"
그래 그때부터 주말마다 봉정암 순례를 위한 트레이닝을 했다.
팔공산을 시작으로 앞산, 포항 내연산, 경주 남산, 가야산, 화왕산과 관룡산,,
트레이닝에 꾸준히 참석한 후 봉정암에 오른 사람은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나만 느꼈다...)
트레이닝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 나는 도대체가 힘들지가 않았다.
하산길 마지막에 이런저런 일로 백담사 근처에서 영시암까지
2번정도 왕복을 했는데, 나는 촐랑촐랑 뛰어다녔다^^
이것이 바로 '실전같은 훈련'의 힘이다~
아, 물론 이산장(이성규 산악전문대장)에 비하면 깨갱이다..
지도책도 보고 컴퓨터도 찾고 하다가
결국 금요일 밤을 꼴딱 새고 택시타고 모임장소 가서 버스를 탔다.
5시30분 대구은행 본점 출발
7시 안동휴게소에서 아침밥
8시40분 치악휴게소
9시 강원도 횡성
9시 30분 강원도 홍천
버스 안을 왕왕 울리는, <카스바의 여인>
아, 애절한 트럼펫 연주
심금을 울린다.
누가 뽕짝을 유치하다고,
아저씨 아줌마들의 노래라고 치부해버리나.
이리도 사람 마음을 흔드는 것을.
시내 가서 함 찾아봐야지.
11시 20분 백담사에서 산행 시작
우리가 타고온 버스는 매표소에 세우고 거기서 백담사까지 셔틀버스로 이동한다.
좁은 도로, 옆엔 낭떠러지 계곡.
약 7km. 걸어 간다면 1시간반 거리다.
백담사에서 오세암을 거치지 않고
바로 봉정암으로 올라가는 길은
대체로 계곡 옆으로 이어지며 평탄하고
또 험한 곳에는 고무패드가 깔린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한낮에 밖으로 나와 겔겔~대는 박쥐,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다람쥐,
둘다 쥐 종류인데, 우째 느낌이 다를꼬..
설악산 계곡물은 정말 녹색이었다.
감탄에 감탄을 했다.
예전 청도 운문사 갔을 때, 거기 계곡물을 보고 떠오른 말은 바로 '비취색' 이었다.
여기 물 빛깔은 완전 녹색이다. 녹색 에머랄드.
흰수건 던져넣으면 쪽쪽 녹색이 물들것 같은.
우거진 짙은 녹음 아래로 투명한 녹색 물빛이 출렁대면
'아, 여기가 설악산이구나' 싶다.
어휴, 저 물. 저 물..
사진으로 찍은 것도 예쁘기는 한데, 사실 실제로 본 그거보다는 못하다..
올라가면 갈수록 계곡보다는 산악미가 드러난다.
삐죽빼죽 보다는 우람한, 날카롭기보다는 단단하고 꽉찬 느낌이다.
이래저래 넋을 쏙 뺀채 구경하다 봉정암 도착한 게 5시 정도.
앞서간 그룹은 벌써 도착하여 사리탑에 가거나 대청봉으로 갔다 하고..
일단 숙소에 배정받은 자리에 짐을 풀고,
국장님하고 세면장 가서 샤워를 한다고 물을 확 뿌렸는데,
'물이 영하2도' 라고 하던 성규 말이 확 떠올랐다.
물은 섭씨 0도에서 어는데, 이건 얼지도 않았으면서 얼음물보다 더 차가운 물.
어휴, 괜히 뿌렸다 싶고 후회를 하는데
국장님은 얄밉게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냥 세수만 한다.
흠.. 아, 맞다. 아까 샤워한다고 훌훌 옷 털어내니, 좀 놀라시두만..
아직 늦여름이라고 할 이 시기에 이런 한기를 느껴볼 수 있는게.. 흘흘..
몇시간 걷고 찬물 뿌리고 나니 상당히 멍~하다.
일단 줄서서 밥을 기다린다.
밥이 중요하다.
밥이 정말 중요하다.
우린 몇시간을 걸었고, 걷는 내내 사탕, 과자, 오이, 과일 등 각종 것들을 씹어댔는데
그랬지만 우리의 결론, 우리의 배가 원하는 것은 밥이었다.
밥!!
밥!!
봉정암의 저녁 배식은 6시부터 7시 반까지.
주말이라 줄이 길었지만 배식은 상당히 빨리 진행되었다.
대접에 밥과 미역국을 말아서 오이무침 몇개 얹은 건데
흠, 땀 흘리고 허기진 우리들에겐 얼마나 맛있었는지.
나, 성규, 국장님 사모님은 한 그릇씩 더 먹었다.
다들 용량이 상당하시다는..
법당에서는 저녁 예불과 법문이 진행되고,
나는 후레쉬 들고 사리탑으로 갔다.
윤장대, 산신삭을 지나 좀 더 올라가니 사리탑.
늘상 사진에서 보던 바로 그 탑이다.
처음 본 순간, 사실 어떤 사람이 떠올랐다.
가늘고 날씬하면서도 단단하던 그 느낌이.
절에는 보통 대웅전 앞 마당에 탑이 있다.
보살님들은 법당 부처님 뿐만 아니라 작은 절의 부서지고 초라한 석탑에도
공경스레 합장을 하고 절을 하고 중얼중얼 기원을 하고 그러신다.
난 여태까지 탑에 절대 합장하거나 절하지 않았다.
그런 보살님들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뭔가 이상하게 하여튼 내가 그분들보다
훨씬 낫고 우월한 듯한, '나는 절대 저러지 않는다' 라는 그런 생각을 가졌었다.
그런데 봉정암에 와서 5층 사리탑 마주해서 절하고 앉아 있었는데,
탑이란 게 그냥 탑이 아니겠더라.
탑이 처음 생겨났을 당시, 그것은 부처님의 존재를 대신하는 것이었다.
직접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육신의 부처님이 떠나가고 난 후,
상견중생相見衆生들에게 있어서 부처님의 유골을 봉안한 탑은
법당의 불상보다 오히려 더 직접으로 부처님의 현존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그게 탑이겠더라.
법당에서도 사리탑에서도 철야정진이 이어졌지만
우리들은 8시에 숙소로 들어갔다.
다리도 못 펼 정도로 좁고 시끄러웠지만,
억지로라도 자둬야지, 내일 또 움직일 것이기에.
새벽 대청봉에 몇명이나 갈지^^
밤이 늦도록 사람들은 부산스럽게 들락거리고
형광등과 랜턴이 꺼졌다 켜졌다하고,
그 와중에 성규는 코 골며 잠들고
나도 12 넘어서 잠든 것 같다가
몇번 깨다가
결국 2시에 일어났다.
세수해서 눈꼽이라도 뗄려고 하다가
도저히 엄두가 안나서 (어제 그 차가운 물..)
그냥 배낭과 복장만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후레쉬 들고 사리탑 올라가서 참배하고
커피 몇잔 빼먹고 하다보니
3시 반, 국장님과 보살님 등 탐험대가 모인다.
모두 7명.
훌륭하다.
어제의 피곤을 무릅쓰고 제각각 후레쉬 챙겨들고
7명이 모였다.
야간산행의 묘미는 후레쉬 불빛에 의지해 한발한발 더듬어 나가는 재미.
비를 맞는 것은 원초적인 즐거움이 있다.
그래서 여학생들은 갑작스런 소나기를 맞으면 깔깔 웃으면서 뛰쳐간다.
어둠을 더듬어 가는 건, 묘한 긴장감과 야릇한 스릴이 있다.
함께 하는 일행들과는 공동의식이나 동료의식 같은 걸 느낀다.
벌써 하산하는 사람도 뜨문뜨문 있다.
소청봉을 지나고 얼마 후 여명이 시작된다.
한쪽 (아마 동쪽이겠지) 하늘에 가로로 빛줄기가 생겨난다.
중청대피소에서 잠깐 쉰다.
성규가 어디선가 라면국물을 얻어와 일행들에게 돌리고^^
빠다코코낫 2봉지 사서 맛나게 먹고, 다시 나오니
흰 빛줄기는 점점 커지면서 노란색과 붉은 빛으로 변해가고
새카만 하늘도 점점 파란색으로 변해가고
여명이 점점 밝아지면서 대청봉의 윤곽이 점점 뚜렷해진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져서
사실 일출보다는 그전의 붉은 여명이 더 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늦을 거 같아서 뛰어간다.
그리고 대청봉에서의 여명, 일출, 기념사진, 푸른빛으로 물든 산하,
그 푸른 빛이 참 좋다.
여명의 산에서 본 풍경은 세가지 푸른빛이다.
밟고 있는 땅은 짙은 푸른 색이고, 저 멀리 산들은 그냥 푸르고, 하늘은 밝은 푸른 색이다.
온통 푸르고 푸른 데서 나 역시 푸르고 싶다.
나는 항상 푸르고 싱싱하고 생기발랄하고 싶다.
대청봉에서 내려오면서 초롱꽃과 용담을 보았다.
둘다 새파랗다.
온통 푸르구나!!
하산하면서 설악의 산악미를 만끽하였다.
역시 산 이름에 '악' 자가 들어간 산은 육체미 보다는 골체미가 있다.
이소룡 가슴팍 같이 단단하게 솟아난 돌산들과 골짜기들, 그리고 운해..
봉정암으로 돌아와 잠깐 주먹밥을 먹고는
그 뒤로는 계속 하산의 연속이었다.
봉정암에서 오세암까지의 코스는 경사가 심하고 오르내리막이 많아서
마치 톱니바퀴 내지는 물리 교과서에 나오는 무슨 파동 그래프 같은 그런..
세시간 걸어 오세암에 도착하니 11시 쯤.
동자전에는 동자상을 중앙에 모셨는데, 보는 순간 얼마나 똘망똘망하고 초롱초롱하고 귀여운지
사진으로 찍어왔지만 도저히 처음 봤을 때의 그 느낌이 안 난다.
정말 불단 올라가서 그 머리 한번 슥슥 쓰다듬고 싶더라.
^^
백담사까지는 금방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역시 2시간 넘게 걸리더라..
그날 참 다들 원없이 걸으셨을 게다.
특히 대청봉 팀은 새벽 3시반부터 오후 2시 넘게까지 걸었다.
행사를 준비하고 계획한 사무실은 사무실대로
참석한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다들 즐겁고 또 아쉬운 점들이 있었겠지만
나는 참으로 즐겁고 다리에 힘이 느껴져 든든했다.
설악산의 정기~ 봉정암의 기운~ 사리탑의 가피력~
그 세가지를 받은
살아있는 기도처인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