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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 02-01-20

    넘치는 폭력 속에서

본문

최종태 선생의 작품 전시회 <일흔의 시간, 얼굴>을 보고 왔다.

오랜만에 최화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지나간 백 년, 20세기의 세계미술사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 인간의 형상이 그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림에서 자연의 형상이 사라졌다고 한다.

인간과 자연의 문제가 20세기의 그림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이 말에 나는 귀가 번쩍 뜨였다.


극소수의 몇몇 예술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작품의 주제에서 인간과 자연을 관심 밖에 두었다는 것은 무언가 심상치 않은 암시를 주고 있다.

거리의 풍경을 많이 그린 어떤 화가는 집과 거리만을 그렸지만 거기 전혀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얼마나 삭막한 풍경인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상징한 모습인가.

예술가들이 인체는 더러 다루지만 그것은 그림의 도구로 쓰였지 인간에 대한 관심은 아니었다고 최화백은 말한다.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예술의 세계에서 인간이 사라졌다는 것은 적지 않은 충격이다.

인간 부재의 예술이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사람은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흙과 물과 불과 바람 그리고 나무와 새와 짐승 등 수많은 생물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커다란 흐름이 곧 이 세상이다.

산업사회 이래 탐욕스런 인간들이 이 생명의 흐름, 즉 공생 공존의 원리를 무너뜨려 생명의 위기를 불러 들였다.

부분에만 집착한 나머지 전체를 보지 못한 현대인들의 그 맹목이 자초한 함정이다.



균형과 조화로 이루어진 생명의 흐름을 무너뜨린 이와 같은 현상은 거친 폭력으로 나타난다.

자연스런 흐름에서 이탈된 변괴인 것이다.

세상은 지금 온통 폭력으로 뒤범벅이다.

가상세계가 곧 현실세계로 이어지고 있다.

사각 스크린 앞에서, 컴퓨터 게임에 열중하던 사람이 게임에서 번번히 패배하자 화가 나서 스크린 밖의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한 고등학생은 평소 자신을 괴롭히던 같은 반 친구를 수업 중에 살해한다.

그 학생은 폭력영화를 인터넷을 통해 40번이나 되풀이해 보면서 폭력의 불을 지핀 것이다.

이 땅의 저질 정치꾼들은 국민들의 혈세로 살아가면서

걸핏하면 욕지거리와 주먹다짐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마치 의정활동으로 착각하고 있다.

권력에 대한 야망을 채우기 위해 동과 서로 편가르기에 열중하면서 국민들에게 끝없는 상처를 입히고 있다.


뉴욕과 워싱턴의 테러사건을 계기로 세계는 지금 온통 폭력으로 넘치고 있다.

그리고 문명의 충돌을 들먹이면서 이쪽이냐 저쪽이냐 편가르기에 기울고 있다.

이와 같은 21세기의 '싹'을 양식있는 사람들은 우려하고 두려워한다.


우리 나라 극장가에서는 폭력물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쉬리>, <친구>, <조폭마누라> 등이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물론 나 같은 사람은 그런 폭력물을 관람할 시간도 관심도 없지만

폭력물이 성황을 이룬다는 것은 그 사회가 지닌 가려진 구석이 드러난 것이고

폭력에 억압된 사람들에게 어떤 대리만족의 배설기능도 할 것이다.


그러나 말짱한 사람들에게 끼칠 정서적인 영향을 소흘히 여겨서는 안된다.

눈알을 부라리며 내뱉는 거친 욕지거리와 치고 받고 쓰러뜨리고 죽고 죽이는 장면을 즐기면

그런 일들이 자기 자신도 모르게 기억의 필름에 찍혀 잠재의식을 이룬다.

우리 마음밭에 그와 같은 씨앗이 뿌려지는 것이다.

그 씨앗(固)이 어떤 상황(緣)을 만나면 예상하지 못했던 현실(果)로 드러난다.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사건과 사고는 일찍이 우리들 자신이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한 것들이 한 동안 뜸을 들이다가 그런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업(業)의 파장이고 그 흐름이다.


인간에게 예절과 신뢰와 품위가 사라져 가는 인간 부재의 시대에 그 인간이 제대로 서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 회복되어야 한다.

개체와 전체의 상관관계를 열린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우리가 순간순간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이

곧 우리들 자신을 만들고 우리 사회를 이룬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보지 않아도 될 것은 보지말고

듣지 않아도 될 소리는 듣지말고

먹지 않아도 될 음식은 먹지말고

읽지 않아도 될 글은 읽지 말아야 한다.

옷이나, 가구, 만나는 친구, 전화 통화 등도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적게 보고, 적게 듣고, 적게 먹고, 적게 걸치고, 적게 갖고 적게 만나고, 적게 말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권하고 싶다.

이 폭력과 인간 부재의 시대에 우리가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불필요한 사물에 대해서 자제와 억제의 질서가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법구경》폭력의 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거칠은 말은 하지 말라.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노기 서린 말은 고통이 된다.

그 보복이 그대 몸에 돌아온다.


그대가 깨진 종처럼

묵묵해서 말이 없다면

그대는 이미 평안에 도달한 것

성내거나 꾸짖을 일이

사라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