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앞에서
法頂(회주스님)
이제 겨울철 살림 동안거도 끝났으니 내 겨우살이 이야기나 해볼까. 지난 겨울에는 눈이 참으로 많이 내렸다. 특히 영동 산간지방은 거의 날마다 눈이 내렸다. 눈이 귀한 곳에서는 내리는 눈을 반기지만 눈고장에 사는 사람들은 눈이 자연의 커다란 위력이며 재해임을 실감한다.
수형이 잘 잡혀 보기 좋던 소나무가 내려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허망하게 꺾이는 것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손쓸 수 없는 무력함을 통감했다. 오두막 둘레에서 솔바람 소리를 전해 주면서 하현달을 받쳐 주던 소나무가 이번 겨울에 한 쪽 가지를 잃었다. 안타까웠다.
한 번은 볼일로 밖에 나갔다가 연일 쏟아지는 폭설에 갇혀 오두막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밖에서 떠돌다가 며칠만에 돌아와 집 둘레에 허리께까지 쌓인 눈을 치우느라고 기진맥진, 기도 다하고 맥도 다 빠졌다.
아궁이에 군불을 지펴도 불이 타지 않았다. 웬일인가 싶어 굴뚝을 쳐다보았더니 연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새 고래가 막혔나 아니면 구들장 어디가 내려앉았나? 이 궁리 저 궁리를 해 봐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무력감을 거듭 실감했다. 우선 추위를 녹이기 위해 마루방 난로에 불을 지폈다. 그날 밤은 난로가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밤을 지새다시피 했다.
날이 밝자 햇살이 설원에 내려 눈이 부셨다. 아궁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다시 불지피기를 시도해 보았다. 어제나 다름없이 타지 않았다. 난감했다. 이 산중에서 방을 뜯어고칠 일을 생각하니 막막했다.
이 자식이 영 말을 안 듣네. 아궁이에 대고 잇달아 거친 욕설이 쏟아져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면서 마른 불쏘시개를 한 아름 안아다가 성냥을 그었다.
이번에는 빳빳한 부채를 가져와 힘껏 부쳐댔다. 한참을 부채질했더니 조금 타는 듯싶더니 부치기를 멈추자 다시 불길은 잦아들어 연기만 피어냈다. 이 때 문득 지피는 게 있어 굴뚝 쪽으로 뛰어가 보았다. 연기가 조금 나오다 말았다. 내 괄괄한 성미를 굴뚝이 알아차렸는지 비로소 연기를 조금 내비친 것이다.
아하, 그랬구나. 아궁이가 불길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내가 집을 비운 사이 연일 폭설이 내린 끝에 강추위가 몰아 닥치는 바람에 덮개가 없는 굴뚝 안으로 들어간 눈이 쌓였다가 그게 얼어붙은 것이다.
이와 같이 굴뚝이 얼음으로 막혔으니 아궁이도 배는 고팠겠지만 불길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마치 심한 변비로 항문이 막히면 음식을 소화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원리다. 원활한 순환은 흡수와 배설의 균형이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성미 급한 중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죄 없는 아궁이에 대고 투덜대면서 애를 태운 것이다. 이렇게 되었으면 일단 퇴각해야 한다. 그 전 같으면 그 자리에서 끝장을 보기 위해 총돌격을 감행했겠지만 이제는 나도 생각이 달라져 그 현장에서 작전상 후퇴를 한다.
헛수고를 하면서 들이지도 않는 불을 지피느라고 공연히 연기만 잔뜩 쏘였다. 눈알이 시그러워 자꾸 눈물이 났다. 안팎으로 묻은 먼지를 씻어내려면 더운 물이 필요했다. 이 눈속에 더운 물이 어디 있겠는가.
생각하던 끝에 다시 눈 속을 헤집고 내려갔다. 차를 몰아 38선을 넘었다. 38선을 넘어가야 거기 온천이 있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동해변의 겨울 바다를 보니 속이 휑 뚫리는 것 같았다. 집채같은 파도가 허옇게 속살을 드러내면서 기슭에 와 부딪히는 그 기상은 겨울바다에서나 볼 수 있는 장관이다. 온천에 가기 전에 겨울바다의 파도를 보니 아궁이에서 뒤집어쓴 연기가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바다다운 기상을 보려면 단연 겨울바다 앞에서야 한다.
정월 보름 해제를 마치고 다음 날 법회 일로 길상사에 나갔다가 ‘봉순이’를 데리고 왔다. 단정한 얼굴에 단발머리, 노란색 웃옷에 목에 두른 보라빛 스카프, 그 모습이 첫눈에 들었다. 박항률 화백이 나를 위해 그려준 소녀상인데 한 쪽 벽에 걸어 두자 오두막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눈길을 보내는데 바른 쪽 옆모습으로 앞만 바라보면서 말이 없다. 더러는 두런두런 말을 걸어 본다. 처음에는 굳은 표정이더니 사흘이 되면서부터 부드러운 모습으로 조금씩 자기 속을 열어 보이고 있다.
봉순(鳳順)이란 이름은 내가 지어 주었다. 옛스런 이 이름이 나는 좋다. 그 애하고 이야기를 나누려면 이름을 불러야 돌아보며 다가설 것이기 때문이다.
화가가 봉순이를 내게 보내준 고마운 뜻을 이모저모로 생각한다. 혼자서 지내면서 무료할 때 더러는 말벗이 되어주라고 해서였는지, 또는 차시중이라도 들어주라고 해서였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봉순이가 내 곁에 온 후로 내 속뜰이 더 부드러워지고 넓어져 가는 것 같다.
한편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만약 봉순이가 지금처럼 고즈넉이 앞만 바라보지 않고 틀에서 내려와 실제로 내 둘레에서 움직이면서 세수도 하고 밥도 함께 먹고 설거지도 거들고 얼음 풀린 개울가에 나가 빨래도 하면서 시중을 들어준다면?
얘얘, 그만두어라. 너는 내 눈길만으로도, 두런두런 이야기를 건넬 때 말없이 들어주기만 해도 이 오두막에서 함께 지내는 의미가 있다.
봉순아, 네가 실제로 행동하는 소녀라면 나는 너를 부담스럽게 여길지도 몰라. 그리고 때로는 주책을 부릴 지도 모른단 말이야. 그러니 너는 그 자리에 지금 그대로 가만히 있으면 돼. 나는 더 이상 너에게 요구할 게 없다고.
눈이 녹고 개울물이 풀리고 봄바람이 이 산천을 찾아와 여기저기서 꽃이 피어나면 나는 진달래를 한 아름 꺾어다 우리 봉순이의 품에 안겨 주고 싶다.
============================================
▷◁ 대구지하철 희생자를 추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