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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 03-08-19

    불교신문기사중에서 - 2002년 11월

본문

눈이 맑은 아이 김문환 지음


‘어린왕자’로 인연 맺은 스님의 친구


서울대 교수의 인생 길잡이

법정스님의 서신 부록으로 담겨


<법정스님의 서신이 부록으로 들어갔다.>


김문환(金文煥·58) 서울대 미학과 교수의 시문집 ‘눈이 맑은 아이’(삶과 꿈)에는 법정스님과 청년시절에 저자가 주고 받은 사신(私信) 20여편이 함께 수록돼 있다. 활발한 사회참여와 함께 수필로 문명(文名)을 떨치던 40대 법정스님의 면모를 볼 수 있는 편지와 엽서들이다. 법정스님과 김교수의 만남은 1970년대 크리스챤 아카데미에서 이뤄졌다. 당시 법정스님은 아카데미의 운영위원이었고 김교수는 대학을 졸업한 뒤 아카데미 대화모임의 뒷바라지를 돕고 있었다. 김교수의 제2생활시집 ‘개의 웃음소리’를 위한 ‘붙이는 말’에서 스님은 그 인연을 소개하고 있다. 1976년 가을의 글이다.


“어떤 도시에 대한 영상은 거기에 사는 친구의 존재로 해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가 있다. 이 전까지는 전혀 무연(無緣)한 고장이 친구가 그 곳에 있다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 그 하늘 아래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일에도 귀를 모으게 된다. 수유리가 이제 나에게는 단순한 행정 구역이 아니다. 그곳은 내 친구 김문환님이 살고 있는 정다운 주소다. 서울을 떠나 산에 살면서도 이 따금 생각하는 것은, 서울이 뭐 이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라거나 운동선수들의 카 퍼레이드를 심심치 않게 벌이는 이상한 도시라고 해서가 아니라, 김문환과 같은 순수한 젊음이 생활하고 있는 고장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공적인 만남을 넘어 더 가깝게 된 계기는 ‘어린 왕자’ 였다.


“요즘은 통 찾아 뵙지 못해 죄송스런 마음을 금할 길 없지만, 법정스님과의 인연도 이 ‘어린 왕자’로 인해 깊어졌다. 김요섭 시인이 주관하던 전문지 ‘아동문학연구’에서 스님이 쓰신 ‘영혼의 모음’이라는 어린 왕자에게 부친 헌사를 읽고 시를 보내 드린 적이 있었는데, 스님은 내게 흐뭇한 답신을 보내 주셨다.


“요즘 나는 ‘어린왕자’가 내게 찾아올까봐 두려워하며 살고 있다. 그가 싫어하는 ‘어른’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름다운 인연이 오래도록 계속되어야 할 텐데…”


1970년대 숨막히던 시절 불의의 세상을 향해 따끔한 일침을 마다않았던 스님의 모습이 크리스챤 아카데미 대화모임 참석여부를 묻는 엽서에 덧붙혀진 글에서 잘 드러난다. “세월이 나를 못가게 합니다. 요즘 거의 연금 상태입니다. 4~5인의 사복이 수문장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제기랄- 내가 무슨 솔제니친이라고.” 70년대 초반에서 말까지 산으로 들어가 점차 산승이 되어가는 스님의 변화가 흥미롭다. 74년 1월의 편지.


“내게 산이 있다는 것은 유일한 숨통입니다. 우리 선인들이 산을 찾아 살던 뜻을 오늘에야 알 것 같습니다. 산에서 살다가 산에서 흩어지고 싶습니다.” 다음해 5월5일에는 “어제까지 대강 터를 고르고 오늘부터 목수들이 나무를 다듬습니다. 늦은 가을 무렵해서 나는 내 그림자와 더불어 내 초암에서 살게 됩니다. 산이 좋습니다.” “산에 들어와 사니 그날이 그날만 같아 오늘이 며칠인지 잘 모르고 지냅니다. 신문도 없고 방송도 잘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산중에서 혼자 지내니 홀가분해서 참 좋습니다. 세상에서 치면 고생스런 일이 없지 않지만 그 걸 도의 낙으로 여기면 즐거움이 됩니다. 이 암자는 철저히 내 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우주입니다. 대숲을 지나는 바람소리와 새소리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75년 가을 불일암에서 보낸 편지중 일부다. 스님은 뒤에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산골에 토굴을 짓고 지금껏 살고 있다. 김동길 박사가 송광사까지 왔다가 스님을 만나지 못하고 간 사연이라든가, 꿈속에 옥중에 갇힌 김지하를 전화로 불러낸 이야기들도 있다.


김교수는 법정스님이 금년에 고희가 되신다는 소식을 접하고 보니 그간의 세월동안 내가 얼마나 세속에 물들었던가하는 느낌이 뼈져렸다. “불발로 그친 생활 시집에 대한 빚을 덜겸 나 자신을 추스리는 뜻으로 책자를 엮었다”며 “스님의 편지에서 1970년대 우리의 모습, 그 순수와 좌절, 소망이 떠올랐다. 그러한 것들을 거울삼아 오늘의 나를 채찍질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신의 공개를 허락하신 후의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2002-11-25 오전 11:33:03 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