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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 09-12-25

    오지랖이 넓다는 건...!

본문

오지랖의 사전적 의미는 우리말로서 윗옷의 앞자락입니다.


즉 오지랖이 넓다는것은 옷의 앞자락이 넓다는 뜻입니다.




오지랖의 또다른 사전적 의미는 어머니의 가슴 위에 입는 옷으로,


오지랖이 넓다는 것은 자기가 낳은 자식이나 남의 자식이나 자신의 젖을 먹인다는 의미입니다. 가리지 않고 받아준다는 의미로, 남에게는 선을 베풀지만, 자신의 젖을 나누어 주기 때문에 자신이 희생된다고 합니다.




웃옷의 앞자락이 넓으면 안에 있는 다른 옷을 감싸버릴 수가 있는 것처럼 보통 무슨일이나 말이든간에 앞장서서 간섭하고 참견하고 다니는 것을 비유하여 오지랖이 넓다고 말합니다.


남의 작은 어려움에도 마음이 아파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도와주고자 무던히 애 쓰는 사람이나, 남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해 자기 시간, 자기 돈 써 가면서 바쁘게 사는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살다보면 주변에 유난히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있습니다.


지나가다가 사고난 것을 보면 차에서 내려서 교통정리하고요.


누가 부당한일 당하면 부탁도 안했는데 앞장서서 따져주죠.


길 가다 모르는 사람끼리 싸우면, 무조건 말리는데 앞장서고,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노인을 보면, 들어주거나 행여 바빠서 안들어주면 미안한 마음이 생기는것등 많습니다.



오지랖 넓은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나친 남 걱정은 부작용을 일으킬 때가 많죠. 구설수에 오르기 쉽고, 늘 고생하고 힘들게 일해서 칭찬도 받기도 하지만, 미움이나 질투를 유발하여 “너 나 잘 하세요”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맑고 향기롭게 운동”은 ‘공동체 운동’입니다.


자신의 수행을 중요시 여기지만, 자신의 수행만을 고집해서는 안 되며, 남을 위한 삶, 나눔의 삶, 실천의 삶을 중요시 여겨야한다는 어른스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맑히는 일과 더 나아가 세상과 자연을 맑히는데 앞장서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맑음은 개인의 청정을, 향기로움은 그 청정의 사회적 메아리라는 법정스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맑고 향기롭게와 오지랖의 연관성을 따져볼 때


결국 이 오지랖이란 것도 자신이 수행이 되었는지, 맑아있는지 그걸 정확히 알고 난 후, 오지랖을 떨던지, 넓히던지 해서 타인의 일에 관여를 하거나, 관심을 가지거나, 도와주거나 해야 되는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신은 수행이 되어있지 않고, 맑아있지도 않으면서, 메아리인척 해서는 안된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려봅니다.




나 또한 그러합니다.




너무 오지랖이 넓어서, 나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있진 않은지, 다시 한번 생각하고 되뇌여 봅니다.


나 스스로 착한 것이 아니라, 착해 보일려고, 남에게 좋은사람으로 보일려고 또 외로워서 끊임없이 관심거리를 만들려고, 허전하니깐 나의 빈 마음을 채울려고, 관심을 받으려고, 잘난척 하기 위해서가 아니였는지 되돌아봅니다.




어쩌면 나의 오지랖은 혼자이지 않으려는 나만의 깊은 생존본능이 아니였는지,


결국 내 마음을 맑고 향기롭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타인을 이용한것이 아니였는지도 되돌아봅니다.




가장 친한 친구 한명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오지랖이 전혀 없는 친구입니다.


그냥 자기 하고 싶은데로 적당히 하는 친구입니다.


옆에서 보면 생각도 없는것 같고, 빈둥빈둥 노는것 같습니다.


예전에 다 얘기해주고, 다 알려준 것도 다 잃어버리고 필요할때마다 묻습니다.


그래서 때론 다투기도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단순한 친구입니다.

때론 내가 하는걸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따라서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서로 친합니다. 이유는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로 서로 얘기하다보면 결론은

"안되는걸 어떻게 하란 말이냐"라고 서로 웃으면서 끝냅니다.



그렇게 저마다 사람은 다릅니다.


100% 완벽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무조건 사람은 50대50으로 봅니다.



그런데 오지랖이 넓은 사람은 자기가 100인줄 아는 착각에 빠져

상대방의 모자라는 50%을 채워주기 위해 나의 것을 나눠주려다 보니,

결국 또 오지랖의 모순에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어쩌면 맑고 향기롭게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금씩의 오지랖이 있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개인적으로 느끼는 '만큼의 차이' 일뿐이겠죠.




오지랖도 팔정도의 가르침으로 잘 조절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잠 못드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