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운동 90주년, 겨레 혼을 깨운 한용운스님을 돌아본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 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에 일이되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 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님의 침묵’이다. 만해 한용운 스님이 쓰신 ‘님의 침묵’은 한국 사람들이 가장 즐겨 낭송하는 애송시 가운데 하나다. 올해로 삼일운동으로 일컬어지는 기미독립선언 90주년을 맞는다. 삼일절. 만해 한용운스님을 떠올린다. 만해 한용운 스님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으나 실패하자 1896년 설악산 오세암 등지로 유랑하듯 흘러들어가 1905년 설악산 백담사에서 연곡連谷스님을 스승으로 삼아 출가, 만화스님에게 법을 받았다. 법명은 봉완奉玩, 법호는 용운龍雲, 자호와 필명이 만해卍海이다.
1910년 일본이 강제로 우리나라 국권을 빼앗자, 울분을 참을 길 없었던 스님은 1911년 가을 행장을 수습하여 표연히 만주로 떠났다. 그 뒤 두 해 동안 만주를 유랑하며 독립운동을 모색하다가 1913년 다시 국내로 돌아와 불교학원에서 교편을 잡고 1914년 <불교대전>을 저술하고, 1918년 불교잡지 월간 <유심>을 창간했다. <유심>을 펴내면서 세계정세 흐름을 제대로 읽을 수 있었던 한용운스님은 최린과 독립에 관해 숙의하다가 마침내 삼일운동을 기획한다. 일본 식민지로 전락한지 십년이 다 되어가던 그때, 독립운동 추진 과정에서 월남 이상재 같은 이는 ‘독립선언’ 대신에 ‘독립청원’으로 하자는 미지근한 주장을 했다. 하지만 만해 스님은 처음부터 독립선언을 강력히 주장하며, 시종일관 독립선언을 주창하면서 독립청원이란 당치 않다고 설파했다. “조선 독립은 부당한 침략에 대한 정당한 항거인데 청원이 웬 말이냐, 겨레 스스로 결사 힘으로 나가지 않고 독립을 청원한다는 것은 마치 비복婢僕이 상전에게 선처를 바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드세게 외쳤다. 결국 만해 한용운 스님 주장을 따라 삼일운동은 독립청원이 아니라 독립선언으로 길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더구나 한용운 스님은 1919년 삼일운동을 조직하고 독립선언서에 ‘공약삼장’을 덧붙여 자칫 관념으로 흐를 수 있었던 육당최남선이 쓴 독립선언서를 실천을 담보한 선언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공약 삼장은 독립선언서 ‘눈동자’뿐만 아니라 만해 사상·신념 ‘축소판’이다.
1. 오늘 거사는 정의, 인도와 생존과 영광을 갈망하는 온 겨레 요구이니, 오직 자유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 감정으로 바름에서 벗어난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1. 마지막 한 사람, 마지막 한순간까지 겨레가 품은 정당한 뜻을 시원하게 발표하라
1. 모든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며, 우리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스님은 백용성白龍城스님과 함께 불교계를 대표하여 삼일독립선언 겨레대표로 참여한 뒤 일제경찰에 체포되어서 서대문형무소에서 세 해 동안 복역했다. 옥중에서 변호사는 물론 사식과 보석을 거부할 것을 결의하고 일본 검사 신문에 대한 답변으로 〈조선독립이유서〉를 집필하며 결코 타협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출옥한 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간해 저항문학에 앞장선다. 그 뒤 1927년 좌우 합작 독립운동을 주창한 신간회에 들어간 만해 한용운 스님은 지조 있게 독립운동 노선을 견지했다. 1936년 신채호의 묘비건립과 정약용 서세100년기념회 개최에 참여했다. 그 뒤 1937년 불교 항일단체인 만해사건 배후인물로 피검되기도 했던 스님은 1940년 창씨개명 반대운동과 1943년 조선인 학병출정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일제의 극심한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비타협적인 독립사상을 견지하다가, 광복 한해 앞선 1944년 6월 29일 안타깝게도 그토록 염원하던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기 싫다며 북향으로 지은 성북동 심우장에서 입적하셨다.
만해 한용운스님은 단재 신채호, 심산 김창숙과 더불어 근대 지조인물 삼절로 불릴 만큼 곧고 강직한 성품을 지녔다. 삼일운동을 주도한 겨레 대표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변절하지 않은 독립투사 모범으로 잘 알려져 있는 스님은 일본 검사와 경찰 심문과정에서 자기주장을 펼치기 위해 <조선독립이유서>를 작성, 독립 당위성을 대내외에 천명하기도 했다. 이 명문장은 무더운 여름, 옥중에서 참고문헌 하나 없이 썼다. 3·1운동 당시 선생이 기초한 <독립운동이유서>라는 긴 논문은 육당 독립선언서에 비해 시문時文으로써 한 걸음 나아간, 조리가 명백하고 기세가 웅건한 명문이다. 본디 일본 검사 심문에 대한 답으로 작성된 이 글은 만해 옥바라지를 하던 제자 김상호를 통해 비밀리에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1919년 11월 4일 상해 임시정부에서 발간되던 <독립신문> 25호 부록에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라는 제목으로 전문이 게재되어 세상에 알려졌고, 상해 임시정부 기초를 다지는 데도 큰 힘이 되었다.
만해스님에게 ‘자유’는 우주 행복 근원이며,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기품에도 구애받지 않고 인욕人慾에도 가려지지 않는 절대 존재다. <조선독립이유서>에서 만해스님은 “자유는 만유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 행복이다. 그러므로 자유가 없는 사람은 주검과 같고 평화가 없는 사람은 가장 괴로운 자이다. 압박을 당하는 사람 언저리는 무덤으로 변하고 쟁탈을 일삼는 자 둘레는 지옥이 되는 것이니, 가장 최고 행복 바탕은 자유와 평화에 있다. 그러므로 자유를 얻으려고 생명을 터럭처럼 여기고 평화를 지키려고 희생을 달게 받는 것이다. 이것은 인생 권리이며 또한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유 규범은 다른 사람 자유를 침해하지 않음을 그 경계로 삼는 것으로, 침략하는 자유는 평화를 깨뜨리는 야만이 된다. 평화 정신은 평등에 있으므로 평등은 자유 대등개념이 된다. 그러므로 참된 자유는 반드시 평화를 보장하고, 참된 평화는 반드시 자유가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는 <기미독립선언서 ‘공약삼장’ 집필자에 관한 고찰>에서 “자유에 대한 기초 관념을 심어 준 것은, 엄복(嚴復 1853∼1921)이 1899년에 번역한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이 쓴 고전 《자유론(On Liberty)》이었을 것이다.”고 말한다.
만해스님은 여러 분야에서 일제에 드러내놓고 저항한 유일무이한 독립투사였다. 후대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크게 치면 칠수록 더 큰소리를 울려 역사와 겨레를 지킨 범종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만해 한용운스님은 <조선불교유신론>을 통해서 실천하는 종교가로서 진면목을 유감없이 펼쳐보였다. 그는 <조선불교유신론>에서 칸트로 대표되는 유럽 사상과 불교 사상을 견주어 불교사상 우월성을 입증했다. 이 논설은 당시 조선불교가 가진 현상을 비판하고 당면과제를 지적하면서 자유평등주의 사상에 따라 개혁안을 제기한 실천 지침서였다.
우리 겨레가 처했던 암흑같은 현실을 넘어서 그것을 인류 보편성문제로 끌어올렸던 만해스님. 시, 문학, 실천노력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만해 한용운스님은 파란만장한 근대기 이 땅에서 나라와 겨레가 가야할 가시밭길과 같은 현실을 헤쳐 가며 처절하게 그 길을 걸어간 위대한 한국 사람이었다. 만해스님은 불교, 문학, 독립운동, 사상, 문화, 예술을 두루 아우른 커다란 산맥 같은 존재다. 제 살 길만 찾아 이리저리 해매는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살려거든 기꺼이 고난 칼날 위에 서라”고 일갈하는 만해 한용운스님. “걷잡을 수 없는 슬픈 힘을 옮겨서 새 희망 정수배기에 들어부었습니다.”라고 <님의 침묵>을 통해 이 난세를 헤쳐 갈 힘 있는 메시지로 잠든 우리 영혼을 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