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해냈어요!
노숙인들이 해외자원봉사를 한다? 놀라운 일이다.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이 자원봉사를, 그것도 해외자원봉사를 한다는 것은 상상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냈다. 우리 센터의 노숙인들이 필리핀에 가서 자원봉사를 한 것이다. 어떤 자원봉사일까? 폐자전거를 고쳐 필리핀의 가난한 주민들에게 나누어준 것이다. 그것도 자그마치 400대나!
그동안 우리 센터는 노숙인들의 자활을 돕고자 방치된 폐자전거를 고쳐서 재활용하는 일을 해왔다. 고친 자전거를 작년에 300대, 올 봄에는 250대를 용산구의 가난한 공부방의 아이들과 노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일 년에 한번하는 행사라서 안정된 자활사업이 못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이런 일을 연중 지속적으로 하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바 사회적 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노숙인들에게 안정된 일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고치는 일에 숙달되기 위해서는 교육훈련기간이 필요했다. 여기에는 돈이 필요했다. 그것을 어떻게 마련하지? 기업의 사회공헌지원을 통해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기업에서는 그런 일이 가능한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것같았다. 노숙인들은 꾸준히 일을 하기 어렵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그러한 의문을 해소하는 것이 필요했고 그 일환으로 추진한 것이 해외자원봉사였던 것이다. 다행히 이 일을 위해서 기업은행과 나눔평화재단에서 지원을 해주었다. 그것이 마중물이 된 것이다.
이렇게 고친 자전거를 필리핀의 까부야오에 있는 가난한 고등학생에게 나누어 주었다. 까부야오는 가난한 지역일 뿐만 아니라 한국이 빚을 지고 있는 곳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떤 빚일까?
까부야오는 최근에 형성된 집단 이주지역이다. 말이 집단 이주지역이지 인구가 4만 명 가량 되는 웬만한 도시규모이다. 이주한 사람들은 원래 마닐라 시내의 철도변에 살았다. 정부에서 기찻길을 확장을 하자 철거대상이 되어 집단 이주해 온 것이다. 이 사업에는 한국이 관련되어 있었다. 사업자금을 한국에서 차관을 해준 것이고, 공사도 한국의 대우인터네셔날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업을 시행하면서 이주민에게 보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한국이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이 까부야오는 마치 70년대 초 청계천 일대에서 철거된 주민을 이주시킨 성남대단지의 모습이 상상되는 곳이다. 땅은 유상으로 불하되었기 때문에 주민들은 토지대금을 내는데 허덕였다. 대부분의 집들은 블록으로 얼기설기 지어져있었는데 비만 가리는 정도였다. 전기는 공급되고 있었지만 민영이라서 두세 개 정도의 전기불로 생활하고 있었다. 상수도도 민영이라서 식수만을 사서 먹고 있었다. 현지에서 우리 일행이 샤워를 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하수도는 방치되어 악취가 나고 있었다. 인구 4만의 지역에 초등학교가 한곳밖에 없었다. 현지답사를 위해 방문을 했던 지난 3월에 이제 막 고등학교 한 곳을 새로 지었을 정도이다.
이곳의 주민들은 대부분 마닐라나 마카티에서 생업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마닐라나 마카티로 출근을 하기 위해서는 버스로 두 시간이나 걸린다. 그런데 교통비가 비싸서 이른 새벽부터 걸어서 또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하루에 6시간에서 8시간이나 걷는다고 했다. 우리는 바로 이곳의 고등학생들에게 자전거를 나누어 주기 위해 계획을 세웠다.
계획을 구상한 것은 년 초였다. 그런데 난관이 많았다. 해외에 재활용자전거를 운송해 본 경험이 없어서 막막했다. 그러나 이런 난관은 난관도 아니었다. 일을 하던 노숙인들 중에는 벌금을 내야 하는데 납부를 하지 않고 있다가 한참 일하던 도중에 구속이 되어 구류를 살아야 했던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대부분 주민등록이 말소되어 여권을 발급받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주민등록을 먼저 살려야 했다. 대부분의 노숙인들은 자전거 고치는 일을 할 줄 몰랐다. 그래서 기초부터 배우며 일을 해야 했다. 자전거 고치는 일이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무척 정교하고 경험이 많이 필요한 일이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폐자전거를 수거하는 일이었다. 막상 수거를 하려고 하니 고철값이 올랐다. 그러자 아파트 부녀회에서는 그 많던 폐자전거를 고물상에게 판매를 했기 때문에 쉽게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필리핀에 공급하기로 한 400대의 자전거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애를 태워야 했다.
우리 노숙인들은 성실하게 일을 했다. 출발하기 두 달 전부터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더러는 입술이 터지고 몸살이 나기도 했다. 난관이 많아서 약속한 400대를 다 마련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목표를 달성했다. 정말 놀라웠다. 그런데 비행기 값과 환율은 왜 자꾸 오르던지!
마침내 12월 14일 우리 일행 10명은 비행기를 타고 마닐라로 갔다. 그렇지만 현지에서도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필리핀은 건기라서 날씨가 선선하다고 했지만 평균 28도였다. 우리나라의 한여름인 셈이었다. 그 뙤약볕에서 우리 노숙인들은 자전거를 조립을 해야 했다. 왜 다시 조립을 하느냐는 의문이 생길지 모르겠다. 자전거를 배편으로 운송을 했는데 부피를 줄여 운송비를 절약하기 위해 수리한 자전거를 다시 해체를 했던 것이다.
게다가 세관통관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우리의 일정은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통관이 늦어져 하루를 쉬고 이틀 동안 조립작업을 해야 할 일을 하루 만에 조립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노숙인들은 28도를 웃도는 무더위에 쉬지도 않고 우직하게 일을 했던 것이다. 이런 모습에 현지주민들은 혀를 내둘렀다.
이 일을 끝낸 우리의 노숙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비록 자신도 가난한 사람들이지만 또 다른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그리고 이런 어려운 일을 함께 해내고 보니 자신감도 생겼다고 했다. 또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난관을 해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일을 계기로 나에게는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처음 계획을 했던 사회적 기업을 만드는 일이 현실적인 숙제가 된 것이다. 꽤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나에게도 자신감이 생겼다. 우리의 노숙인이 성공적으로 자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출처 임영인 신부 블로그 / 선한마음의 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