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사 식생문화탐사>
글쓴이 : 엄경숙
활동일 : 2007년 10월 11일 목요일
참가자 : 김석우선생님, 한정갑선생님, 배윤진, 박미호, 조고희, 서은영, 엄경숙, 이수진팀장
탐사지 : 인천 강화군 갈상면 온수리 전등사 일대
우리 일행은 이른 아침 전등사로 향하였다
가는길에 김포대교의 주변에 가냘픈 몸으로 하늘거리면서 울 일행에게 반갑다고
방긋 윙크하는 코스모스의 모습에 그만 일찍 서둔 피곤이 사라졌다
기러기떼 또한 우리 일행을 반겨주었다.
기러기는 금실이 매우 좋다고 한다.
원앙새는 반면에 일부다처제라한다. (지금까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차창 너머로 억새, 흰뺨 검둥오리도 볼 수 있었다.
전등사는 서울에서 쉽게 갈 수 있는 곳이지만 김포를 지나 강화에 이르는 길이 만성적인 정체가 심하여 시간선택을 잘해야 한다.
전등사는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아도화상이 창건, 진종사(眞宗寺)라 하였으며 정화구주(貞和宮主)가 승려 인기에게 부탁하여 송나라 대장경을 가져와 이 절에 두고 옥등(玉燈)을 시주하여 전등사라 개청하였다 한다.
그리고 절을 짓던 목수의 사랑을 배신하고 도망친 여인의 죄를 경고하고 씻어주기 위하여
나여상(裸女像)을 나무로 깎아서 대웅전 네 귀퉁이에 세워 평생 지붕 추녀의 하중을 받치게 한 전설로 유명한 절이기도 하다.
전등사 매표소를 지나면 성문이 나타나는데 여기에 연결된 성이 삼랑성(三郞城)이다.
전설에 의하면 단군이 세아들 (三郞) 부여·부우·부소가 쌓은 토성이며 그 후 돌로 쌓아 오늘에 이르렀다 한다. 해발 222m인 정족산을 둘러싼 산성으로 전등사는 그 산성 안에 들어 앉아 있다.
<삼랑성과 성문>
성문을 들어서면 전등사까지 숲길이 이어지는데 그 옆에 양헌수 장군의 승전비가 서 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을 물리친 공적을 기린 비석이다.
비목나무와 서어나무가 있었으며 쇠솔새가 노래를 하고 있었다.
비목과 서어나무, 쪽동백, 때죽나무, 고로쇠, 무개암나무 숲길을 걷다보면 전등사 건물들이 보이는데 왼편으로 먼저 보이는 건 ''윤장대''이다.
윤장대란 불교경전을 넣어놓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윤장대를 한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은 것과 같다고 하니 공부하기 싫은 사람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윤장대 바로 위에는 휴식을 하며 차한잔을 할 수 있는 찻집이 있다.
전체적인 모습이나 조경등이 제법 세련되어 보였다.
일행은 각자 정성스럽게 가져온 도시락을 들꽃과 노란색으로 갈아입은 느티나무의 잎과 비목나무들과 가을의 정취을 흠뻑 머금으면서 맛나게 먹었습니다.
이보다 훌륭한 부페식당은 없을 것입니다
죽림다원에서의 따끈한 차 한 잔이 추웠던 우리 일행의 몸을 싹 녹여 주었다.
전등사에는 일주문이나 불이문 등이 없다.
성문이나 산성을 지나, 숲길을 걸어 올라오면 절집으로 들어서기 전에 2층 누각의 아랫쪽 건물이 바로 ''대조루''이다.
밖으로는 ''전등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안으로는 ''대조루''라 쓰여 있는데 전등사의 불이문 구실을 하는 건물이다.
대웅전을 바라보면 약 25도쯤 상향으로 부처님을 존경하며 보게 된다 하고, 멀리 발아래로는 일명 ‘염하’라고도 부르는 강화해협이 한눈에 내려다 보일만큼 전망이 좋다고 한다.
<대조루...몇칸의 계단을 올라서서 아랫층으로 들어서야 절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안쪽에서 본 대조루...2층은 불교서적을 파는 곳이다>
전등사 대웅전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다. (보물 178호)
육중한 기둥을 안전하게 보이게 하기 위하여 배흘림기둥으로 시각적 안정감을 주었다.
그래서 전체적인 아름다움과 내부 장식의 화려함은 가히 최고의 건축공예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도망친 죄(?)로 평생 지붕을 이고 살아야하는 벌거벗은 여인상..네 귀퉁이 마다 새겨져 있다>
<명부전>
전등사에는 종루가 2개 있다.
하나는 보물 393호 범종인데 송나라 때 만든 중국종이며 또 하나는 평소 예불 때 쓰는 보통 鐘으로서 보물은 종각, 보통 鍾은 종루라고 달리 부르고 있다.
<보물 범종이 있는 종각>
원래 보물 범종이 있었으나 종각으로 옮기고 사용하는 보통 종을 매단 종루.... 대조루 옆에 있다.
대조루와 종루가 어우러진 모습이 아름다운 풍경화로 보인다.
전등사의 식생은!
소나무가 적당히 자리 잡고 있으며 서어나무가 많아 작은 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으며 어린 비목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산성 옆에 수문이 있던 흔적이 있었다.
산성의수문은 큰 역할을 했다고 하며 서울의 수문은 동대문 수문이었는데 현재는 없다고 한다. 습지가 있기에 새들의 놀이터 같다. 새솔새가 퍼드득 인사하며 날아간다.
보라색꽂 향유에 사뿐이 앉은 나비의 모습과 무리 지어있는 이삭여뀌
찻집 앞 산딸나무의 빨간열매,
꽃이 지고 있는 꽃무릇
예뿐 옷으로 갈아입으려는 단풍나무
느티나무와 말채나무 등 많은 식믈 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모두들 각자의 자기의 자태에 의미을 부여하면서 뽐내느라 바쁜 것 같이 느껴졌다
*선원사*
인천 광역시 강화군 신원면 지산리
선원사는 고려 문화를 꽃 피운 가장 대표적인 사찰로써 우리 민족 뿐 아니라 세계의 찬란한 문화유산이자 한국 불교의 성보인 팔만대장경의 판각을 위한 대장도감이 설치되었고 보관 되어온 성지다.
지금은 그 팔만대장경은 해인사에 봉안되어 있으며 현재 선원사지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다.
<선원사지 지은 옛 선원사의 모습>
<꿈에 본 맷돌>
<동자스님 조심하세요>
<연잎차-선원사엔 연잎차가 유명하다>
<선원사 주지 성원스님>
이 절에는 특이한 것이 있었다. 목탁 치는 (목탁소리를 내는)소가 있었다.
마치 사람이 혀를 움직여 타악기 소리을 내듯 누런 소가 혀를 움직이자 탁! 탁! 목탁 치는 소리가 들렸다. 신기하였다.
처음 들어가니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혓바닥을 움직이자 탁! 탁!거리며 목탁소리를 내었다.
너무도 신기하였다. 작은 우리 속에 있어 조금은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우리들은 허기짐을 약간의 새우소금구이로 달래고 배움의 뿌듯함을 가슴 가득 안고 운전하시는 김선생님께 많은 미안함을 느끼면서 서울까지 왔다.
두 분 선생님께 감사드리면서 모두들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