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재정사 봉사활동 하러 가는 날. 아침에 일어나 맨 먼저 베란다로 나가 하늘을 보았다. 하늘이 보이지 않도록 온통 구름으로 덮여 있어서 오늘은 덥지 않게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자재정사에 도착하여 일을 시작하려는데 구름사이로 햇님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덥다는 생각에 하늘을 쳐다보니 그 많던 구름이 어느새 사라지고 약 올리듯 햇님이 강한 햇살을 벌침 쏘듯 내리쬐기 시작했다. 어이구! 저 놈의 햇살. 해가 구름에 가려 땀이 흐르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수건도 걸치지 않고 밀집모자도 쓰지 않은 채 작업을 시작했는데... 구름을 믿은 순진한 내가 잘못이지. 그래도 지난달보다는 한결 약해진 햇살에 더위이다. 간간이 불어오는 찬바람 섞인 가을 바람이 이마에 흐르는 작은 땀방울을 식혀주며 지나간다. 그런대로 견딜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에 심은 양로원 앞 잔디밭에 그동안 빗물에 골이 많이 파였다. 오늘 일은 패인 골을 메우고 잔디에 흙을 입히는 복토 작업이다. 이 잔디들이 내년 봄에는 더욱 싱싱하게 자라 자제정사 뜰을 푸르게 만들어 주리라 믿으며, 흐르는 땀방울을 훔친다. 잠시 고개 들어 개울 건너 무밭에서 길게 줄지어 김을 메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보였다. 갈색 밭에 줄지어 파랗게 자라는 무와 가지가지 색을 입은 아낙의 옷 색깔이 너무 잘 어울린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즐겁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김메는 모습이 어릴 때 시골에서 본 농사짓는 농부들의 모습 그대로였다. 모든 것이 너무 잘 어울리는 광경이다. 작업을 하다 잠시 쉬는 시간이면 그 광경을 넋이 빠진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참 좋은 시골 풍경이었다. (여자분들은 모르셨죠? 제가 보고 있었다는 것을. 누가 게으름 피우는지 난 다 봤다.) 어머니의 손 맛에서 나오는 맛을 담아 정성스럽게 만든 팀장님의 비빔밥이 참 맛있었다. 욕심에 두 그릇이나 먹었더니 나중에 온 인화님이 못 드신 모양이다. (에구 미안혀라.) 신입회원이 두 분이나 새로 나오셨다. 모두 여자들이라 다음에는 남자들도 나왔으면 좋겠다. 나도 아직은 신출이라 기존 회원들의 이름도 모르고 지내지만, 시간이 약이라 몇 번만 함께 고생하면 모두 가족처럼 잘 어울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반가워요.) 잠깐의 휴식에 총무스님이 정하신 오후 작업시작이 되었다. 소화가 덜된 불룩한 배로 삽질을 하려니 허리가 굽히지 않는다. 씩씩거리며 운반용 손수레에 흙을 퍼 담으려니 "아이고 허리야"가 절로 나온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 쉬는 시간 간격이 점점 빨라졌다. 한 삽 두 삽 삽에 담기는 흙의 양은 줄어드는 만큼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은 굵어져만 간다. 언제 모두 담아 나를까 걱정하든 그 많던 흙 무더기가 누군가 요술 부렸는지 모두 사라지고 없다. 꺼진 배만큼 기분이 가볍고 홀가분하다. 한 가족이 오순도순 잔디를 심고 있었다. 아버지는 골을 파고, 어머니는 잔디를 잘라 정리하고 꼬마 소녀아이 둘은 일하는 것이 즐거운 듯 연신 깔깔대며 잔디를 서로 나르려고 경쟁이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에 부모님은 그저 흐뭇해 하시고 일하는 우리마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즐겁다. 심은 잔디가 죽을세라 물 한바가지 떠서 정성스레 주고 있다. 세숫대야에 든 물이 오는 도중에 출렁출렁 이리 흘리고 저리 흘러 심은 잔디에 주려니 흙에 가는 기별도 없다. 그러나 옷이 젖고 신발이 젖어도 마냥 신나기만 하다. 어머니는 아이들의 신발에 묻은 흙은 정성스레 떼어내고 우물에 깨끗이 씻어 다시 신겨준다. 하루 일과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작아지면서 끝이 났다. 굵은 땀방울도, 흙먼지도 모두 바람 따라 날아갔다. 시원한 맥주 한 잔에 하루해는 그렇게 넘어가고 있었다. 나무에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기러기떼 찾아 오 듯 우리도 자재정사에 또 모여 한바탕 난리를 부리겠지. 10월 둘째 주 그 날을 다시 기다려 봅니다. 2005. 9.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