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의 인연
2010년 03월 18일 (목) 정운현 대표 webmaster@idomin.com
근자에 우리는 종교계의 두 큰 별을 잃었습니다. 지난해 2월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과 며칠 전에 입적한 법정 스님이 바로 그 분들입니다. 세속적으로 보면 두 분 모두 한국 남자의 평균수명을 넘겼으니 천수를 다 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 두 분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많은 이들은 두 분의 예사스럽지 않은 삶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2월 87세로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에 '바보'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천진성을 지닌 분이었습니다. 지난 3월 11일 입적한 법정 스님은 '무소유'의 상징으로 불릴 만큼 일생을 청빈하게 살다가 가셨습니다. 지난 2월 김 추기경 1주기를 맞아 유품 전시회가 열렸는데요, 언론보도에 따르면 직무 관련 문서 이외에는 안경, 보청기, 필기구, 그리고 미사 전례 때 사용하던 성작, 성합 등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공수래 공수거를 보여준 두 종교 지도자
일생을 통해 '무소유'를 강조해온 법정 스님의 경우에는 그나마도 없이 책 몇 권이 전부였다고 전합니다. 두 분 모두 '공수래 공수거'를 몸으로 보여주신 셈입니다.
종교지도자이자 이 시대의 큰 스승이셨던 두 분은 '차이'도 없지 않습니다. 우선 두 분은 천주교, 불교로 서로 신앙하는 종교가 다르며, 나이는 김 추기경이 10세나 많습니다. 고향도 영-호남으로 다릅니다. 김 추기경은 대구 출신이며, 법정 스님은 전남 해남 출신입니다. 또 한두 가지 경우엔 정치적 견해차도 있었던 것으로 전합니다.
그럼에도, 두 분은 마치 한 길을 가는 길동무처럼 오랜 세월 교감하며 각별한 인연을 쌓아왔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두 분의 친교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한국사회에서 종교 간의 벽을 허무는 마중물 역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지난 1997년 12월 14일 법정 스님이 길상사 개원법회를 열었을 때 김수환 추기경은 이 자리에 참석해 축사를 해주었습니다. 이는 분명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법정 스님은 그해 성탄절 때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발행하는 <평화신문>에 성탄메시지를 기고하였습니다. 다시 이듬해에는 명동성당에서 특별강론을 하기도 했습니다. 법정 스님은 이날 강론을 "김 추기경의 넓은 도량에 보답하기 위해 찾아왔다"며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인연'과 '천주님의 뜻'에 감사한다"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작년 봄, 법정 스님은 이미 그때 폐암이라는 병마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김 추기경이 선종하자 스님은 한 매체에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제하의 추모사를 기고하였습니다. 스님은 추모사에서 "가슴이 먹먹하고 망연자실해졌다"며 "지금 김수환 추기경님은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우리 마음속에서는 오래도록 살아 계실 것이다. 위대한 존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며 추모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반대로 스님이 먼저 입적하셨다면 김 추기경께서 아마 이와 비슷한 추모사를 쓰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한국사회 종교 벽 허문 시대의 큰 스승
법정 스님의 입적을 계기로 새삼 스님이 남긴 저서들이 서점가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대표저서랄 수 있는 <무소유>는 74년 4월 출간 이후 그간 180쇄를 찍었다고 합니다. 베스트셀러중의 베스트셀러인 셈이지요. 엊그제 뉴스에 따르면, 스님은 출판사로부터 받은 인세 대부분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거의 익명으로 기부해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수환 추기경도 <무소유>의 독자였던 모양입니다. 김 추기경은 생전에 이 책을 두고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항간의 장삼이사도 마지막 가는 길엔 새로 수의 한 벌을 얻어 입고 가는 게 보통입니다. 그러나 스님은 생전에 입었던 승복 그 차림 그대로, 대나무 평상에 뉘어 불길 속으로 육신을 맡겼습니다. 다비식장엔 만장도 화려한 꽃상여나 연화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스님의 육신은 이제 우리 곁을 떠났지만 스님이 말과 글로 남긴 영혼의 가르침은 오래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삼가, 법정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정운현(㈜다모아 대표)